톨게이트 2

씨바둥 작성일 17.07.10 21:5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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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속이 뭔가 맞
은 듯한 충격으로 멍해졌어요.
전날 밤 받은 피묻은 그 표가 바로 L 톨게이
트로부터 온 것이었어요...”
그 여자를 얘기를 듣고 있던 나는, 갑자기
담배 생각이 났다.
이런 믿기지 않는 얘기를 들을 때는 담배라
도 한 대 피면서 듣고 싶었다. 담배를 꺼내며
재원이의 눈치를 살폈지만, 고개를 가로젖는
모습에 다시 주머니에 담배를 집어넣었다.
묶여진 채로 고개만 움직이며 얘기를 하고
있는 그 여자와, 의자에 앉아 이상한 얘기를
듣고 있는 우리 모습이 기묘하게 느껴졌다.
재원이가 누워있는 그녀에게 물을 먹여주었
고, 그 여자는 아직도 할 얘기가 많은 지 숨돌
리기가 무섭게 얘기를 계속했다...
“너무 놀란 저는 전날 밤 제가 경험했던 얘
기를 해 주었어요.
소장님은 좀 심각하게 받아들였지만, 나머
지 직원들은 반신반의했어요. 사실 다들 비슷
한 경험들을 해봤거든요. 받은 표와 돈에 피가
묻어있었던 적도 있고, 숙자 언니는 자기가 받
아든 표에 어떻게 된 일인지 냄새가 고약한 대
변이 묻어져 있는 적도 있었대요.
그러니 내가 봤던 그 사람이 살인범이라는
얘기는 잘 믿겨지지 않나 봤어요.
소장님이 경찰에 전화해 신고해서 제가 받
은 피묻은 표와 돈을 가져갔지만 피를 닦아내
고 밤새 말려졌기 때문에 희미한 핏자국만 남
아있는 상태였어요.
이번 사건을 담당하고 있다는 젊은 형사가
직접 그 표를 가지러 왔어요. 그 형사 말로는
그 피가 살해당한 피해자의 피인지를 밝혀내
는 것이 제일 먼저 할 일인데, 이 정도 핏자국
으로는 밝혀내는데 일주일 이상 걸린다고 했
어요. 무슨 DNA 검사도 해야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 형사가 살해당한 검표원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 줬는데, 정말 끔찍했어요. 살해
당한 시체의 모양을 보면, 차를 몰고 톨게이트
로 들어온 살인범이 표를 받기 위해 손을 내민
피해자의 손을 잡아당긴 다음에 날카로운 칼
로 얼굴과 목을 난자했데요. 그리고 발버둥치
던 그 불쌍한 피해자의 팔을 잘라버렸데요.
범행 현장을 보면 피가 사방으로 튀어 정말
끔찍하다고 했어요. 피해자는 즉시 죽지 않고,
죽음의 공포를 느끼면서 출혈과다로 서서히
죽어 갔데요.
저는 그 얘기를 듣고 내가 받았던 그 표에
묻어있던 피가 그런 끔찍한 살인의 자취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치고,
다리 힘이 쫙 풀렸어요.
그래도 곧 범인을 잡을 것이라는 자신감 넘
치는 그 젊은 형사의 말에 나름대로 안심을 하
고 퇴근했어요.
집에 가서도 그 얼굴 없는 사람의 악몽에 시
달렸어요.
그리고 아무 일도 없이 며칠이 지나갔어요.
저도 처음에 느꼈던 공포심도 점차 사라지
고, 일상적인 일로 돌아가게 되었어요. 하지만
경찰은 아직 그 톨게이트 살인범의 단서조차
못 잡았다고 했어요. 제가 준 표에 묻은 피검
사 결과도 나오지 않았고요.
그래도 며칠 동안 무서워 야간 당직을 피했
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해 당직을 계속 바
꿨던 거예요.
며칠은 그런 식으로 당직을 안 했지만, 결국
내 차례가 돌아왔어요.
야간 당직에 대한 두려움도 별로 없어지고
해서 그냥 하기로 했어요.
저녁 먹고, 톨 게이트로 나서는데 비가 한
두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비가 오니 괜
히 불길한 기분마저 들었어요.
번잡한 퇴근 시간이 지나자, 금새 톨 게이트
는 적막이 흐르기 시작했어요. 가늘던 비는 더
굵어졌어요.
비가 오는 밤이 되니, 괜히 그날 밤이 생각
났어요.
어둠을 헤치고 나타나는 헤트라이트만 보면
가슴이 괜히 철렁해졌어요. 우습게 생각하시죠.
톨 게이트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자동차 불
빛만 보면 무서워한다는게.
몇 번을 마음을 졸이면서 빨리 밤이 새기를
바랬어요.
시간은 참 느리게 갔어요.
밤 3시쯤 되서 같이 당직을 서게 된 경수엄
마와 교대를 했어요.
몇 시간만 버티면 차도 많아지고 날도 밝아
올 것 같았어요.
하지만 아직 주위는 칠흙 같은 어둠에 둘러
쌓여있고, 비는 점점 거세지고 있는 거예요.
두려움과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라디오를 켰
어요.
한 30동안 차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았아요.
시간이 좀 지나자 아무 일도 없을 것 같아
서,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어요.
그때 갑자기 정산소 전등이 지지직거리고
깜박거리기 시작했어요.
몇번을 지직거리다가 전등이 나갔어요.
동시에 라디오도 꺼졌어요.
갑자기 그날 밤 생각이 나서 겁이 덜컥 났어요.
죽음 같은 적막과 어둠이 정산소 주변을 덮
고 있었어요.
단지 빗소리만 들렸지만, 그 빗소리는 다른
소리들을 차단하고 있어 더욱 무서워졌어요.
어디서 뭔가가 나타날지 몰랐어요.
손전등과 촛불을 켜야 하는데, 손이 덜덜 떨
려 제대로 켤 수 없었어요. 마음 같아서는 길
건너편에 있는 사무실로 뛰어들어가고 싶었지
만 어둠 속으로 뛰어나가는 것도 무서웠어요.
그때였어요.
저 멀리 고속도로쪽에서 헤트라이트 불빛이
하나 다가오는 것이 보였어요. 그 불빛을 보는
순간 온몸이 얼어붓는 듯한 두려움이 느껴졌어요.
점점 다가오는 그 자동차 헤트라이트는 마
치 악마의 눈처럼 느껴졌어요. 왠지 모르게 사
악한 기운을 뿜어내는 불빛 같았어요.
그 불빛을 보고 있으려니, 온 몸에 힘이 풀
리고 너무 무서워서 손하나 움직일 수 없었어요.
정말 무서워서 미칠 것 같았어요.
빗속을 뚫고 그 차는 미끄러져 왔어요.
이윽고 톨게이트로 진입했어요.
그리고는 내가 있던 정산소 앞에 차를 세웠
어요.
저는 덜덜 떨면서, 간신히 그 차쪽을 바라보
았어요.
직감적으로 그날 밤 그 차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어두워서 차 색깔은 구분이 되지 않았지만,
검은 색이나 어두운 색같았어요. 차속은
아무 것도 안 보이고...
창문이 열리고, 표와 돈을 든 손이 나왔어요.
그날 났던 그 뭔가 썩는 듯한 기분나쁜 냄새
가 확 났어요.
저는 무서워서 손을 내밀어 그 표와 돈을 받
을 수 없었어요.
그냥 그 차가 지나가길 간절히 바랬어요.
하지만 그 차는 시동을 건 채 그냥 서 있었어요.
손에 그 표와 돈을 든 채.
마치 저를 기다리는 죽음의 사신같았어요.
두려움으로 미칠 것 같았어요.
갑자기“빵”하고 그 차가 경적을 올렸어요.
빨리 표와 돈을 받아가라는 명령같았어요.
이상하게도 저는 그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
어요. 내 의지와 관계없이 손을 뻗어 그 표와
돈을 받았어요.
저는 자동차 안 어둠 속에서 칼이 튀어나와
내 손을 자를 것 같아 숨마저 쉴 수 없었어요.
그 표와 돈을 받는 순간, 갑자기 그 차는 출
발해버렸어요.
그 차는 이번에도 쏜살같이 어둠속으로 사
라졌어요.
나는 그 차가 주고 간 표를 쥔 채로 움직일
수 없었어요.
떨리는 손으로 그 표와 돈을 확인하기 위해,
손전등을 켰어요.
확인하는 순간 저는 큰 충격을 받았어요.
이번에도 표와 돈에 시뻘건 피가 범벅이 되
어있던 거예요.
그 시뻘건 피에 충격을 받아 저는 의식을 잃
었어요...
누군가 제 이름을 부르는 것 때문에 의식을
차릴 수 있었어요.
간신히 눈을 떠보니, 같이 당직을 서던 경수
엄마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
었어요.
얘기를 들어보니, 경수 엄마가 새벽 4시반
쯤 당직을 교대해 주려고 정산소로 왔는데, 제
가 기절해 있었다는 거예요.
한손에는 손전등을 쥐고 있는 채로.
저는 놀라서 경수 엄마에게 그 표에 대해 물
어보았죠. 경수 엄마는 그런 피묻은 표는 보지
도 못했다고 했어요.
그 말에 충격을 받은 저는, 어안이벙벙한
채 나를 보고 있는 경수 엄마의 시선도 아랑곳
하지 않고 정산소 문을 열고 뛰어나가 비를 맞
으면서 미친 듯이 그 표를 찾아봤어요.
손전등을 가지고 찾다보니, 바로 정산소 앞
에 떨어진 표 한 장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그
런데 빗물에 씻겼는지, 그 표에는 핏자국이 거
의 않보였어요.
이번에는 진입지가 경상북도 M 톨게이트로
되어있는 표였어요.
경수 엄마는 그 표를 가지고 멍하는 서있는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 보았어요.
저는 제가 경험했던 일들을 경수엄마에게
설명했지만, 경수 엄마는 오히려 제 말을 믿지
않고 이상하게 보는 것 같았아요.
할 수 없이 저는 소장님이라도 빨리 출근하
는 것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어요. 소장님이라
면 제 얘기를 믿어 줄 것 같았어요.
내가 피곤해 보인다며, 경수엄마는 저를 사
무실에서 쉬게 했어요.
아침이 되자 한 사람씩 출근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사람들에게 전날밤 또 그 차가 피묻은
표를 주고 갔다고 말했지만, 다들 별로 믿지
않는 눈치였어요.
소장님이 출근하지 마자, 저는 또 그 차를
봤다고 얘기했죠.
하지만 이번에는 소장님도 믿겨지지 않는다
는 듯이 저를 대했어요.
똑같은 일이 똑같은 사람에게만 계속 일어
난다는 것이 좀 이상했나봐요. 다들 제가 졸다
가 꿈꾼 것을 착각했거나, 그냥 지어낸 얘기로
생각했어요
아무도 제 말을 안 믿어주자, 답답하고 미칠
것 같았어요.
소장님도 제가 피곤해 보인다고, 일찍 들어
가 쉬라고 하는 거예요.
할 수 없이 퇴근 준비를 하는데 소장님에게
전화가 한통 왔어요.
아무 생각없이 전화를 받던 소장님의 표정
이 갑자기 변하더니, 목소리가 높아졌어요.
‘뭐라고요? 경상북도 M 톨게이트라고요?
이번에도 똑같단 말이예요?’
M 톨게이트라는 말을 듣자 저는 불길한 예
감이 들면서, 무서워졌어요. 전화를 끊은 소장
님은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보고 얘기했어요.
‘살인사건이 또 발생했데요.
이번에는 경상북도 M 톨게이트에서 일어났
데요.
지난번과 똑같이 정산소에서 표 받던 직원
이 팔을 잘린 채로 처참하게 죽어있는 것이 발
견되었다네요.
어쩌면 지연씨가 본 그 차에 진짜 범인이
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휴... 도대체 어떤 미*놈이야?’
다들 그 얘기를 듣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나
를 바라보았어요.
그런데 그때 저는 벽에 걸려있는 고속도로
지도를 보고 눈을 뗄 수 없었어요. 왠지 지도
에 자꾸 맘에 걸리는 것이 있었지만, 잘 알 수
없었어요.
그것을 깨닫는 순간, 저는 멍할 정도의 전율
과 두려움으로 들고 있던 커피잔을 떨어뜨렸
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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