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내가 겪고 있는 이야기다.
지난주 금요일, 오오무라라는 회사 선배가 죽었다.
직접 현장을 본 건 아니지만,
아파트 자기 방에서 자기 두 귀에 볼펜을 찔러넣은 채 죽어있었다고 한다.
오오무라 본인이 펜을 손에 꽉 쥐고 있었기에,
경찰도 타살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곧바로 자살로 판단했다.
회사 사람들은 오오무라의 죽음을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자살이라고는 해도 부검은 필요한 것 같아,
아마 오오무라의 시신은 검시를 거친 것 같다.
명확하게 죽은 이유가 보이는데도 해부당해야 한다니, 안됐다고 생각한다.
곧바로 장례식이 치뤄졌다.
회사 동료들은 과장을 선두로 다들 장례식장을 찾아갔다고 한다.
나는 [정말 급한 일이 있습니다.] 라고 과장에게 말하고 바로 돌아 나왔다.
주변에서 보면 부자연스럽게 느꼈으리라.
하지만 지금 나로서는,
장례식장이라는 눅눅하고 침묵에 찬 공간을 버틸 수가 없다.
오오무라와 나는 선후배 사이를 떠나, 사이가 꽤 좋았다.
서로 집이 어디인지도 알고, 자주 왔다갔다 할 정도였으니 어느 정도였는지는 감이 오겟지.
3주 전 그날 역시, 오오무라는 퇴근길에 내 방에 놀러왔다.
우리는 캔맥주를 마시며 회사 동료들 뒷담화를 털어놓고 있었다.
둘 다 술을 마실 때는 대화만 하는 타입이라, TV나 음악도 틀어놓지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우울한 풍경이지만..
그러는 사이, 사뒀던 맥주가 다 떨어졌다.
나는 술 없어도 이야기만 재밌으면 됐다 싶었지만,
오오무라는 그래서는 만족을 못하는 듯 했다.
[야, 사러가자.]
나는 마지못해 하면서도 오오무라와 함께 아파트를 나왔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오오무라가 능글능글 웃으며 물었다.
[야, 저거 뭐냐, 저거?]
그가 가리키는 쪽을 보자,
푸석한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여자가 장바구니를 들고 채소를 고르고 있었다.
딱히 별다른 특색 없는, 흔해빠진 광경이다.
다만 하나 이상한 점이 있다면, 여자가 큰 소리로 웃고 있다는 점이겠지.
여자는 양상추를 손에 든 채, [이햣, 이햐, 이햐, 이햣.] 하고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내게는 역시 별 특별할 거 없는 자주 있는 광경이다.
[아, 저거. 웃음녀야.]
그 웃음녀라는 사람은 주변에서 유명한 사람이다.
언뜻 보기에는 극히 평범한 젊은 여자로,
어디 내세울 것 없는 평범한 사람이다.
긴 머리카락은 푸석푸석하지만,
그 정도 가지고서야 이상하다고 할 것도 못 되겠지.
다만 웃음녀가 이상한 점은,
그 이름대로 언제나 웃고 있다는 점이다.
[이햣, 이햐, 이햐, 이햣.] 하고, 살짝 공기가 새는 것 같은 웃음소리로
조금 습기찬 느낌의 독특한 웃음을 뿌리며, 입가에는 침을 흘리고 있다.
그렇기에 다들 "웃음녀" 라고 부른다.
계산하는 아줌마도 "웃음씨" 라고 부르고.
단지 그것 뿐이다.
정신이 나간 것 같기도 하지만, 딱히 다른 사람한테 폐를 끼치는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들도 별로 신경쓰질 않는다.
그저 기분 나쁜 것을 봤다고 생각하고, 곧바로 무시하고 만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오오무라는 꽤 취해있었던 것 같다.
[조금 놀려보고 와야겠다.] 라고 말하더니, 웃음녀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나도 취해있던 것 같다.
어찌되었든 그런 오오무라를 말리려 들지 않았으니까..
[이봐, 당신. 뭐가 그렇게 웃긴거야?]
오오무라는 무뚝뚝한 어조로 웃음녀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웃음녀는 대답하지 않는다.
[이햣, 이햐, 이햐, 이햣.] 하고 웃을 뿐.
[대답해보라고. 세상이 불경기다 뭐다 하고 힘든데, 뭐가 그렇게 즐겁다고 웃어대는거야?]
오오무라는 그렇게 말했다.
아마 그것까지는 나랑 온갖 헛소리 늘어놓던 게
취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향한 것이라 생각한다.
역시나 웃음녀는 [이햣, 이햐, 이햐, 이햣.] 하고 웃기만 할 뿐,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런 문답을 당분간 계속하더니, 오오무라는 돌아왔다.
[뭐야, 저녀석. 재미없게.. 야, 이제 가자.]
우리는 바구니에 과자랑 안주를 담고, 술이 진열된 선반으로 향했다.
오오무라는 곧바로 맥주를 담기 시작했지만,
나는 맥주는 질렸던터라 츄하이나 좀 살펴보고 있었다.
갑자기 오오무라가 [우왓!] 하고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일인가 싶어 돌아보니, 오오무라와 웃음녀가 바로 가까이에서 마주보고 있었다.
[이햣, 이햐, 이햐, 이햣.] 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여자 입에서 오오무라 얼굴로 침이 날아들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오오무라는 양손을 내밀어 웃음녀를 밀어 넘어트렸다.
웃음녀는 비틀비틀 넘어져,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런데도 [이햣, 이햐, 이햐, 이햣.] 하는 웃음은 멈추질 않았다.
다른 손님이나 점원들이 멀리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거북했기에, 적당히 오오무라를 끌고 허둥지둥 계산을 마쳤다.
웃음녀에게 사과할까 싶기도 했지만,
사정도 잘 모르는데다 내가 사과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싶어 그만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오오무라에게 물었다.
[네가 술을 고르고 있는 걸 멍하니 보고 있는데, 귓가에서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리더라고.
놀라도 돌아보니까 바로 눈앞에 그 여자 얼굴이 있지 뭐야.]
그게 기분 나빠서 냅다 밀쳐버렸다는 것이다.
오오무라는 [잘 보니까 저 녀석..] 하고 무언가 덧붙이려 했지만,
도중에 웅얼거리더니 끝까지 말을 들려주지 않았다.
방에 돌아오고 나서, 우리는 또 둘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오무라는 조금 전 일로 기분이 나쁜 것인지,
대화가 자꾸 끊겨 둘 다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렇게 대화가 끊길 때면,
오오무라는 두리번두리번 여기저기 쳐다보곤 했다.
그러는 사이 [야, 뭐 게임이라도 좀 하자.] 라고 오오무라가 말을 꺼냈다.
이 사람이 게임을 하자니, 웬일인가 싶었지만, 진삼국무쌍 3을 꺼냈다.
둘 다 금세 게임이 푹 빠졌고, 오오무라도 평소처럼 멀쩡해 보였다.
그러는 사이 막차가 끊길 시간이 다가와, 오오무라는 돌아갔다.
그때 이미 나는 슈퍼에서 있었던 일 따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부터 오오무라의 행동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우선, 아무데서나 워크맨으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그 자체는 딱히 이상한 게 아니지만,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하려해도,
가볍게 손만 들 뿐 이어폰을 빼려고는 하질 않는다.
가까이 가보면 엄청나게 큰 소리로 듣고 있는지, 음악 소리가 다 새어나왔다.
조금 기분 나빴지만 그때는 딱히 아무 말 않고 지나갔다.
하지만 오오무라의 행동은 점점 심해졌다.
점심 때 같이 밥을 먹자고 하려해도 허둥지둥 이어폰을 끼고 혼자 어디론가 가버린다.
끝내 업무 중에까지 이어폰을 끼는 상황마저 오게됐다.
그쯤 되자 누가 봐도 이상한 모양새였기에,
오오무라보다 더 선배인 사람이 화를 내며 따져들었다.
그러고 나서는 업무 중에 음악을 듣는 일은 없어졌지만,
대신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시끄러워!] 라던가, [아아아아아아아!] 하고 큰소리로 외치는 것이다.
주변에서 아무리 주의를 줘도 그만두려 하질 않았다.
다들 기분 나빠했다.
더는 보기 힘들어서,
나는 퇴근하고 오오무라를 불러 이야기하기로 했다.
오오무라는 나와 이야기하는 걸 꺼렸지만,
[떠들썩한 곳에서라면 괜찮아.] 라고 말하기에 패밀리 레스토랑으로 데리고 왔다.
패밀리 레스토랑은 적당히 혼잡해서,
고등학생들이 여기저기서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나는 [최근 좀 이상한데.] 라고 먼저 말을 꺼냈다.
오오무라는 [나 스스로도 알고 있어.] 라고 말한 뒤,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슈퍼에서 있었던 사건 이후,
문득문득 [이햣, 이햐, 이햐, 이햣.] 하는 웃음소리가 들리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희미하게 들릴까말까 해서 환청인가 싶었지만,
점차 등 뒤에서 가까이 다가오는 느낌으로 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주변에서 음악이나 말소리 같은 게 들려올 때는 안 들리지만,
잠시라도 조용해지면 곧바로 [이햣, 이햐, 이햐, 이햣.] 하고 웃음소리가 들려온단다.
지금은 주변이 살짝 시끄러워도,
그것보다 크게 웃음소리가 들려올 정도라고 했다.
가장 괴로운 건 밤에 잠을 자려 할 때
자려고 불을 끄면, 방 전체가 울리듯 웃음소리가 덮쳐온다고 한다.
좀체 잠을 이룰 수가 없다고,
오오무라는 털어놓았다.
오오무라는 이걸 이야기하는 도중에도 갑자기 크게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저 녀석이, 저 녀석이..!] 하고 울 것 같이 반복하기도 했다.
끝내는 [그 여자한테 저주받은거야.] 라고 말하기도 하고,
[그 여자, 귀신이 틀림없어!] 라고 외치기까지 했다.
내가 가장 먼저 생각한 건,
오오무라가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었다.
웃음녀는 귀신도 아닐 뿐더러, 조금 이상한 여자일 뿐이다.
그 증거로, 그 날 이후로도 나는 웃음녀가 슈퍼에서 쇼핑하고 있는 걸 몇 번이고 봤었다.
실존하는 인간이다.
웃음소리가 독특하고 기분 나쁘기 때문에 기억에 남았다던가,
오오무라가 그 여자를 밀친 죄악감 같은 것 때문에 망상이 생겨난 것이라 여겼다.
애시당초에 슈퍼에 무슨 귀신이 나오겠는가.
그렇게 말해줬지만, 오오무라는 전혀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저주" 라던가 "귀신" 이라던가 하는 말만 반복할 뿐.
나는 점점 초조해져, [그럼 같이 슈퍼에 가보자고.] 라고 말했다.
오오무라가 말하는 게 어처구니 없어 화도 났고,
상대가 실존하는 인간이라는 걸 확인하면 망상도 사라지지 않을까 싶었거든.
물론 오오무라는 격렬히 싫어했지만,
나는 오오무라를 강제로 질질 끌듯 레스토랑을 나와 그 슈퍼로 향했다.
가는 길, 지하철 안에서도 오오무라는 중얼중얼거리며 잔뜩 쫄아있었다.
겨우 슈퍼 앞까지 도착했지만, 오오무라는 [역시 싫어..] 라고 말할 뿐이었다.
[절대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나는 [가게 앞 주차장에서 들여다보기만 하자.] 라고 제안했다.
오오무라는 [돌아갈래.] 라고 떼를 썼지만,
나는 그의 어깨를 단단히 잡아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유리 너머로 가게 안을 바라봐도, 웃음녀는 없었다.
언제나 웃음녀와 우연히 만나는 시간은 이쯤이니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한 나의 착오였다.
큰일났다 싶었다.
여기서 웃음녀의 모습을 확인하지 못한다면,
오오무라는 쓸데없이 웃음녀가 귀신이라고 믿어버릴지도 모르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면 평소처럼 쇼핑하러 올지도 모른다고, 나는 그를 달랬다.
그러던 중, 오오무라가 두 귀를 막고 덜덜 떨기 시작했다.
[들려어.. 들린다고오오..]
마치 아이가 흐느껴 울 듯, 콧물까지 질질 흘리면서 말한다.
[역시 나는 저주받은 거야..]
하지만 나는 그게 웃음녀의 저주 같은 게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햣, 이햐, 이햐, 이햣.] 하는 웃음소리는 나한테도 들리고 있었으니까.
목만 옆으로 슬쩍 돌려보니,
나한테 어깨를 잡힌 오오무라 바로 뒤에 웃음녀가 있었다.
나는 오오무라가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게,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집중했다.
안 그래도 웃음녀를 두려워하는 오오무라가,
이런 가까운 거리에서 웃음녀와 마주치면 분명 사달이 날 터였다.
굉장히 긴 시간 같은 찰나가 흐르고,
웃음녀는 슈퍼 반대 방향으로 웃으며 떠나갔다.
떠나갈 때, 웃음녀는 내 쪽을 쳐다봤다.
나는 그때까지 웃음녀를 멀리서 지켜본 적은 있었지만,
그렇게 가까이서, 바로 정면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입은 빙그레 열려 있는데,
푸석푸석한 머리카락 사이 나를 향한 두 눈에는 힘이 가득했다.
하지만 무섭다고 생각한 건 웃음녀의 입 그 자체였다.
침이 입술 구석에 고여 거품이 일어나고 있는 그 입에는, 이가 없었다.
그 후, 나는 제멋대로 도망쳐버렸다.
아무것도 모른채 벌벌 떨고 있는 오오무라를 억지로 버스에 실어 혼자 돌려보냈다.
이미 나에게는 오오무라의 망상 따위 알 바가 아니었다.
그저 내가 본 것이 너무나 기분 나쁘고 무서워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날 이후, 오오무라는 회사에 나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다들 [저 녀석, 연말인데 땡땡이나 치는건가?] 라고 말했다.
하지만 하도 무단결근이 심해서,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심한 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그러던 중 지난주 금요일,
오오무라가 죽었다는 걸 알게된 것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아마 오오무라도 알아차렸던 것 같다.
나는 확실히 봤다.
웃음녀의 [이햣, 이햐, 이햐, 이햣.] 는 웃음소리가 아니다.
가까이서 자세히 들은 그것은..
[있다, 있다, 있다, 있다.] 라고
말하는 소리였다.
출처: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