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터로 생활하던 무렵 이야기다.
당시 살던 싸구려 고물 아파트 옆집에,
20대 초반 정도 되어보이는 여자와 3살짜리 남자아이가 이사를 왔다.
이사를 왔다고 따로 인사하러 오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마침 외출하는 타이밍이 겹칠 때 그쪽에서 먼저 말을 걸었다.
[옆집에 이사온 A라고 합니다. 이 아이는 스구루고요.
조금 소란스럽거나 폐를 끼칠지도 모르지만 잘 부탁드립니다.]
조금 오동통하고 대단히 짧은 미니스커트에 힐..
딱 봐도 접객업에 종사한다는 느낌이었지만,
이야기를 나눠보니 성실한 사람인 거 같아 안심했다.
나도 [아뇨, 괜찮습니다. 저도 잘 부탁드려요. 스구루군, 잘 부탁해.] 라고 대답했다.
스구루군은 무척 사람을 잘 따르는 아이였다.
내가 밖에 나오면 다리에 매달려 꼭 끌어안고 달라붙기도 하고,
우리 집에 놀러오는 친구나 여자친구에게도 곧잘 애교를 부렸다.
스구루군의 어머니가 말하기로는,
내가 아르바이트를 나갈 때면 집 앞에서 [형 언제 올까?] 라면서 안절부절 못한다고 했다.
사랑스럽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고민이 하나 있었다.
스구루군의 어머니는 일주일에 몇 번씩 일하러 나갔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스구루군의 할머니인 듯한 사람이 집으로 찾아왔다.
몇 번인가 만난 적 있지만,
딱 봐도 역시 접객업에 종사하는 듯한 기 센 50대 아줌마였다.
이 아줌마는 스구루군을 엄청 호되게 혼냈다.
그게 매번 너무 신경쓰였다.
마치 고함이라도 지르듯, 히스테릭한 느낌으로 화를 낸다.
게다가 아줌마 목소리가 째지는 듯한 금속음이었기에, 더 시끄럽고 초조했다.
벽이 얇아 바로 들리는 것이다.
[스구루! 뭐하는거야!] 하는 소리가..
그렇게 혼이 나면 스구루군도 엉엉 울어대니,
영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었다.
이따금씩 쾅쾅 소리도 나서,
나도 모르게 움찔할 때도 있었다.
그게 하도 잦았던 탓인지,
그 당시 기르던 앵무새가 [스구루!] 라고 외쳐댈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날,
아르바이트를 하던 서점에 스구루군의 어머니가 찾아왔다.
[저기, 혹시 댁에 앵무새가 있지 않나요?]
[아, 네. 키우고 있는데요.]
[전에 스구루가 새 소리가 들린다고 말해서요.]
[아, 혹시 폐가 됐나요?]
[아뇨, 새가 스구루라고 말했다길래 신경 쓰여서..]
[아..]
[소리, 그렇게 잘 들리나보네요.]
[네?]
[잘 알아들을 수 없지만, 스구루! 어쩌고라고 말한다면서 아이가 꽤 신경쓰고 있는 것 같아서요.]
[아, 죄송합니다! 벽 옆에 새장이 놓여있어서 그만 새가 멋대로 기억해버렸나 봐요.]
[그런가요..]
그리고 며칠 후,
낮에 집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데, 누가 문을 두드렸다.
나가보니 스구루군 모자였다.
[실은 이사를 하게 됐습니다. 마지막으로 형을 만나고 싶다고 하길래.. 그간 신세 많이 졌습니다.]
[어, 갑작스럽게 이사라니.. 아쉽네요.]
[실은.. 스구루를 봐주던 어머니가 현금이랑 통장을 훔치고 스구루한테도..
그래서 말인데, 혹시 어머니가 찾아오더라도 모른 척 해주지 않으실래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또 며칠인가 지난 어느 저녁,
집에서 친구랑 둘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밖에서 [쾅쾅쾅쾅쾅!] 하고 문을 거세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야! 누구 없어! 나와봐!]
아무래도 스구루군의 할머니가 옆집 문을 두드리며 고함치는 듯 했다.
나는 친구와 [목소리 엄청 무섭다..] 라며 벌벌 떨고 있었다.
한동안 소란이 이어지다, 쿵쿵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계단을 내려 돌아갔다.
친구랑 [경찰 부를걸 그랬나?] 라던가
[아니, 이제 더는 안 오겠지.] 라며 이야기하던 도중,
갑자기 앵무새가 입을 열었다.
[스구루! 죽일거야! 스구루! 죽일거야! 스구루! 죽일거야!]
여태껏 들어본 적 없던 그 말에, 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내가 없는 사이,
그 여자는 스구루군한테 매일 같이 저런 말을 퍼부어대고 있었던 것인가..
벌써 몇 년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나는 뉴스에서 아이가 살해당했다는 기사를 보면 이 일이 떠오른다.
출처: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