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냐면 눈을 보면 알 수 있거든. 천호씨 같은 사람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만한 사람이 아니야.”
“그때요.”
멍하니 있던 천호가 입을 열었다. 우형사는 커피를 마시며 귀를 열었다.
“그때.. 제가 억지를 써서라도 팀장님을 데리고 갔었더라면.. 조금은 나아졌을까요? 팀장님이 돌아왔을까요?”
그렇게 말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천호를 보며 마침내 우형사는 ‘이 사람은 범인이 아니다.’ 라고 결단지었다. 사건조사나 브리핑 때에는 모든 정황이 천호가 저지를만한 짓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었지만 실제로 만나 취조를 하며 짧은 시간을 보낸 끝에 내린 판단은 ‘누군가를 해할정도로 간이 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된다. 요 근래 슬럼프인지 우형사가 속한 팀의 실적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것은 곧 무언의 압박으로 다가왔다.
그 중에는 천호에게 강제로라도 자백을 받아내 사건을 종결시키라는 말도 안되는 것도 있었지만 우형사가 속한 팀의 형사들은 그렇게까지 양심을 팔지는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매스컴을 타지 않았다는 점이다. 충분히 미스테리하고 사람들의 흥미를 끌만한 사건이지만 다행히 기자들의 눈을 피한 덕에 조용히 수사를 진행시킬 수 있었다.
그렇지만 언제든지 터지면 언론이 주목할 수 있었기에 조심하고 신속해야만 했다. 우형사는 깊은 숨을 내쉬며 커피를 마셨다.
“천호씨 잘못이 아니에요.”
“제 말 안믿으시겠지만요.. 형사님. 그 마을에서 한 시간 이상 있으면 영원히 나오지 못한다고 했어요.”
우형사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그 마을 입구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그랬다면서요. 장승노인들.”
“형사님. 지금이라도 동료분들을 데려오세요. 저처럼 후회하지 마시고요. 형사님은 아직 돌릴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잖아요.”
촉촉이 젖은 천호의 눈은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형사 나름대로의 직감이었다. 형사 생활 나름대로 얻어낸 제 6의 감각이기도 했지만 이것이 놀라울만큼 잘 맞아 떨어질 때가 있다. 지금은 그 감이 천호의 결백을 말하고 있었다. 우형사는 다시 스마트폰의 액정을 보고는 말했다.
“반장님이 연락하면 가야해요. 괜히 갔다가 욕만 먹지. 이 얘기는 원래 하면 안되는데.. 요새 우리가 실적이 좀 안좋아서 반장님 심기가 여간 불편한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 때는 좀 가만히 있는게..”
주저리 말하는 우형사의 손목을 거칠게 잡은 천호가 다급히 말했다.
“그게 아니라구요! 왜 제 말을 믿어주지 않는겁니까! 지금이라도 가야해요. 가야한다구요! 안그러면 형사님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구요!”
인상을 찡그리며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참고 있는 천호를 보며 우형사는 한숨을 쉬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곧 우형사는 천호를 보며 진중한 얼굴로 되물었다.
“맹세합니까?”
“....”
“맹세해요? 천호씨 모든 것을 걸만큼 맹세할 수 있냐고요.”
그 말에 천호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 목숨을 걸 수 있습니다. 제발 한 번만 믿어주세요.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부탁이라고 어려울게 뭐있습니까. 제발요.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요!”
그렇게 말하는 천호를 보며 우형사는 벨트를 매며 말했다.
“벨트하세요. 지금부터 좀 빨리갈겁니다.”
우우웅- 빠르게 이동하는 스타렉스 안. 천호는 울음을 그친 상태였고 어느정도 안정이 되어 보였다. 대신 그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굳은 얼굴이었는데 우형사가 쉽게 말을 걸지 못할 정도로 강인한 무언가가 느껴지고 있었다.
우형사 역시 오묘한 긴장감을 놓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상대해봤지만 진실을 말하는 사람과 거짓을 말하는 사람은 분명히 차이가 있었다. 천호가 거기서 전자이길 바랐지만 만약의 경우 후자일 때에는 거기에 맞는 책임을 자신이 져야했기에 어느 정도 리스크를 짊어지고 가야만 했다.
단순한 감으로는 돌아가지 말고 지원요청을 하는 쪽으로 굳어진 상태였지만 천호의 효과 때문인지 그것을 억누르고 현장으로 바로 돌아가기로 했다. 분명 내키진 않는 일이다. 만에 하나 잘못이라도 된다면..
하지만 그는 길게 망설이지 않기로 했다. 지원 요청이야 금방 할 수 있는 상황이고 40분가량이 지났지만 이렇다 할 연락이 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천호의 말대로 분명 마을에 뭔가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 여기가 아닌가?”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을 입구 쪽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천호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같은 방향인 것 같은데 이리저리 빠지는 길 밖에 보이지가 않았다.
“뭔가 이상한데..”
그렇게 중얼거린 천호는 창 밖으로 언뜻 보이는 허름한 집을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저기! 저기로 가요! 저 식당으로 가면 뭐라도 얻을 수 있을거에요!”
우형사는 천호의 말대로 허름해 보이는 건물로 차를 몰았다. 우우웅- 빠르게 몰며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지나니 천호가 가리킨 허름한 건물이 보였다. OO식당이라고 써있는 간판을 보며 차에서 내린 우형사는 왠지 모를 이물감에 긴장한 상태로 천호의 뒤를 따랐다.
“여기가 팀장님이랑 저랑 찌개를 먹었던 곳이에요. 여기에 있는 아주머니가 분명..”
다급하게 말하며 문을 열고 들어간 천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붕어처럼 입을 벙긋거리며 뒤로 물러나려고 할 때 우형사가 그 옆을 지나치며 안으로 들어갔다.
“흐음.”
우형사는 신음성을 흘리며 주위를 훑어봤다.
“..여기에서 뭘 드셨다고요?”
우형사는 미심쩍은 눈으로 천호를 보며 물었다. 천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말했다.
“아, 아니.. 분명 여기 사람들이 있었고.. 테이블들이 다 이렇게 정렬되어 있었는데 왜.. 어째서.. 아무것도 없죠? 분명히 우린 여기서 찌개를 먹었는데..”
우형사는 말 없이 현장 안을 가볍게 돌기 시작했다. 20평은 되어보이는 공간에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따금 보이는 털 뭉치와 먼지들은 이따금씩 동물이 왔다 가는 곳이라고 밖에 단정지을 수 없었다.
우형사는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는 흡사 폐허와도 같은 가게 내부를 훑어 보며 말했다.
“천호씨. 정말 여기서 찌개를 먹었다고요? 이런 냄새나고 기분 나쁜 곳에서?”
그의 눈에는 불신이 가득차있었다. 당황한 천호는 양손을 저으며 말했다.
“...정말이에요. 어째서.. 맞아. 그 때 팔천원! 팔천원 냈어요. 아주머니한테. 분명 여기가 카운터였고.. 여기에서 돈을 받았어요. 맞아.. 맞아요.”
어수선하게 말하며 카운터가 있었던 곳이라고 주장한 천호는 바닥 이리저리를 훑어 보다가 오천원 짜리와 천원짜리를 집어 들고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라도 하듯 빠르게 말했다.
“보세요! 여기 이 돈이요!”
천호가 내미는 돈을 물끄러미 보던 우형사가 다시 되물었다.
“..요새도 이런 구권 지폐를 씁니까?”
그 말에 천호는 자신의 손에 들린 구권 지폐를 보고는 질색하며 돈을 떨어트렸다.
“어, 이상해.. 이상해요. 분명히 우린 신권을 냈는데.. 분명.. 우린 신권을.. 어째서 돈이 바뀌어있는거지.”
우형사는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장난 그만해요.”
“정말이에요! 분명히 우린 팔천원을 냈고. 팀장님은 싸게 먹었다며 좋아했단 말이에요. 요새 팔천원 짜리 이인분 찌개가 어딨어요.”
창백한 얼굴로 해명하는 천호를 보며 우형사는 바닥에 깔린 지폐를 집어들곤 말했다.
“천호씨. 찌개 일인분이 사천원 일 때는요. 지금보다 더 옛날 일이에요. 아니, 천호씨 말마따나 계산을 했다고 쳐요. 그럼 그 아주머니는요? 두분은 찌개를 먹으면서 시간여행이라도 했다는겁니까?”
“..그럴수가. 분명히.. 우린..”
바보처럼 입을 벌리며 아무 말도 못하는 천호를 보며 우형사가 걸음을 옮겼다.
“일단 여기서 시간을 보낼 수 없어요. 이동합시다.”
빠르게 이동하는 우형사를 따른 천호는 일어날 수 없는 일에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그것은 여지껏 보고 배워왔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그는 인정해야만 했다. 미스테리가 실제로 일어나고 존재한다는 것을.
“연락이 되지 않고 있어. 서둘러요.”
“아.. 우욱! 우웩!”
순간 천호는 심하게 구토를 시작했다. 우형사는 인상을 찡그리며 강제로라도 데려가고 싶었지만 입에서 뱉어내는 녹색의 액체를 본 순간 잠시 벙쪄야만 했다.
“..뭘 먹은 겁니까?”
하지만 천호는 대답할 겨를도 없이 구토를 하고 있었고, 그렇게 오 분 정도가 지나자 간신히 진정한 천호는 바닥에 고여 있는 녹색의 액체와 완전히 소화가 되지 않은 풀들을 보며 몸을 떨었다.
“..이럴 수가.. 이럴수가..”
“천호씨..”
우형사는 눈매를 좁혔다.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다. 분명 뭔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어서요.”
서둘러 천호를 부축한 우형사 앞으로 돌연 한 명의 노인이 나타났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겠지만 허름한 옷을 입고 있는 노인은 우형사와 천호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여길 어떻게 왔는가.”
“그러는.. 어르신은 대체?”
“그건 중요한게 아니야. 왜 또 온게야?”
“어르신이야 말로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우형사와는 다르게 천호는 뭐라도 본 것처럼 몸을 떨기 시작했다. 겉으로 볼 때엔 평범한 노인 같았지만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미묘하게 달랐다. 노인은 혀를 차며 말했다.
“자넨 어여 돌아가. 자네까지 큰 일을 당할테니.”
그 말이 우형사에게 하는 말인지 천호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지만 우형사는 직감적으로 자신에게 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직 현장에는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무슨 말입니까? 지금 저 마을에는 제 동료들이..”
우형사의 말에 노인은 수염을 매만지며 답했다.
“늦었어. 늦었단 말이야. 왜 그렇게 모르는겐가? 쯧쯧..”
그렇게 말하며 점차 멀어지는 노인을 보며 우형사가 다급히 불러세우며 물었다.
“어르신. 혹시나 해서 여쭙겠습니다. 혹시.. 이 마을 근처에서 사람들이 실종되지는 않았습니까? 그.. 작은 마을인데요 입구 쪽에는 항상 어르신들이 계셨다고 합니다.”
노인은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꽤 되었지. 그 마을도.”
우형사는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입을 열었다.
“그럼 혹시 위치를 아십니까? 저희가 차를 타고 그곳으로 급히 가야하는데 도저히 갈수가 없습니다.”
“내 말은 전혀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게로군. 쓸모 없는 고집은 화를 불러 온다네.”
그 말은 사전에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과 비슷했다. 천호는 천천히 노인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물었다.
“..제가 그 마을에서 탈출했습니다. 어르신. 거기에는 저와 일하던 팀장님과 다른 형사님들이 들어가있어요. 제발 우리를 도와주세요.”
노인은 가녀리게 몸을 떨고 있는 천호를 보며 말했다.
“그 노인네가 한 시간 이내로 나가라고 했을터인데.. 그 말을 듣지 않은겐가?”
“..나가려고 했는데. 팀장님이 그 첫 번째 어르신 집에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요. 그래서.. 저만..”
노인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거길 가야한단 말이지?”
생기가 없는 노인의 두 눈동자. 천호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팀장님을 되찾아야 합니다. 제발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막무가내였지만 왠지 이 노인이라면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만 같았다. 천호는 노인의 양손을 잡으며 사정했고 곧 노인은 천호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알겠네. 하지만 그 사람들을 구하려면 마을 전체를 태워야하네.”
“..예?”
“마을 전체를 태워야 해.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을 구하기 힘들 것이야. 그리고 자네. 조심해.”
그 말에 우형사는 곤란한 얼굴로 반박했다.
“아니, 어르신..”
우형사는 말을 잇지 못하고 놀란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것은 천호도 마찬가지였다.
“어?”
놀란 음성으로 주위를 두리번 거리던 우형사는 천호를 보며 물었다.
“천호씨.. 그 노인분..”
천호는 굳이 답하지 않았다. 돌연 나타났다가 사라진 노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천호는 재빨리 차에 올라타며 말했다.
“빨리요! 빨리 가야해요!”
우형사는 조금은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몰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달라진 천호의 태도가 조금은 이상했다. 찰나의 순간 그가 웃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 것은 왜일까? 우형사는 악셀을 강하게 밟기 시작했다.
“마침내..”
10분도 되지 않아 다시 마을 입구에 도착한 우형사와 박천호. 그들 손에는 대충해서 만든 횃불이 하나씩 들려져 있었다. 천호는 마른침을 삼키며 우형사에게 말했다.
“지원 요청 다시 한 번 하세요.”
우형사는 말 없이 지원요청을 하고는 천호를 보며 말했다.
“천호씨 말대로라면 지금쯤 우리 동료들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군요.”
그들이 도착한 시각은 한 시간을 조금 넘긴 후였다. 천호는 을씨년스럽게 보이는 마을 입구를 보며 말했다.
“만약 제가 위험에 빠질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지체 없이 도망갈거에요. 팀장님을 구하곤 싶지만 죽기는 싫거든요.”
“..그러시죠.”
우형사는 지금까지도 천호의 말을 완벽히 신뢰하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보다는 그 신뢰관계가 올라갔다고는 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그가 겪은 일. 그러니까 노인이 갑자기 사라진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미스테리였다. 눈으로 보이는 것 외에 믿지 않는 그의 특성상 천호의 말이 정말 신빙성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뭔가가 미심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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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작 [녹색도시]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