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시절 제 고참이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자기가 겪은 실화라면서요.
더운 여름밤에 고참이 선풍기를 켜 놓고 자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더워지더랍니다.
그래서 [뭐꼬?] 하는 생각에 눈을 떴더니
웬 꼬마 아이가 선풍기를 가리고 서서 자기를 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가족이라고는 부모님이랑 대학교에 다니는 남동생,
그리고 자신뿐인데 꼬마 아이라니..
그렇지만 너무 덥고 졸렸던 탓에 이상하다는 생각도 못 하고
그저 [마! 덥다! 비키라!]라고 소리를 쳤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꼬마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옆으로 스르륵 미끄러지면서 비켜나더랍니다.
그 밤 내내 고참은 그 꼬마와 그런 실랑이를 계속 벌였다고 합니다.
자다가 덥다 싶어 눈을 뜨면 어김없이 그 꼬마가 서 있고,
고참이 화를 내면 그제야 비키는 식이었죠.
그런데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리고 동생이 방에 들어오더랍니다.
그래서 고참은 동생한테 [야, 니가 저 아 좀 데리고 가라.]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동생은 말없이 그 꼬마의 손을 잡고 나갔다고 하네요.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생각해보니
집에 꼬마 아이가 있을 리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합니다.
아침을 먹으며 어머니에게 그에 관해 물었더니,
우리 집에 무슨 꼬마 아이가 있냐며 꿈을 꿨냐는 타박만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현관이 열리며 동생이 들어오더랍니다.
고참은 동생에게 어젯밤에 선풍기 앞에 꼬마를 봤냐며
동생이 데리고 나간 게 아니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동생은 무슨 소리냐며,
자신은 친구 집에서 자고 이제 집에 돌아오는 것이라며 극구 부인했다는 것입니다.
원래 그 고참은 참 겁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일까지 겪고 나니 무서워서 도저히 그 방에서는 잠을 잘 수가 없더랍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말씀을 드렸더니,
어머니께서는 다 큰 놈이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냐며
본인이 그 방에서 자겠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날 밤 고참과 동생은 거실에서 TV를 보다 잠이 들었는데,
한밤중에 그 방에서 주무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시기 시작하셨다는 것입니다.
[안된다! 안된다! 우리 아들은 안된다!]라고 말입니다.
깜짝 놀라 안방의 아버지와 거실의 두 아들이 뛰어갔더니,
어머니는 방에 누우셔서 허공에 대고 손을 휘저으며 안된다고 소리를 치고 계셨다고 합니다.
세 남자가 두들기다시피하며 어머니를 깨웠더니
어머니는 그제야 일어나셔서 아들들을 껴안고 막 우시더랍니다.
놀란 가족들이 이유를 물었더니,
어머니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자고 있는데 웬 꼬마가 배 위에서 나를 보면서 쿵쿵 뛰는 게 아니니?
그러면서 어젯밤에 여기 있던 네 아들들을 내놓으라고 그러더구나.
그래서 그 애를 쫓으면서 안된다고 소리친 거야.]
그 일 이후로 고참 집에서는 그 방을 창고로만 쓰고 있다고 합니다.
출처: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