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살고 있는 대학교 4학년입니다.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할 때부터 군대를 가기 직전까지,
약 15년간 단독주택에서 살았습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아버지에게 물려주신 땅 위에 지은 집입니다.
부지 반쪽은 잔디와 여러 가지 작물들이 심어져있고,
나머지 반쪽에 방 세 개와 거실, 화장실 하나가 딸린
꽤 넓은 집 두 채가 나란히 지어져있는 형태였습니다.
당시엔 몰랐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꽤나 상당히 넓은 땅이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설계, 시공, 인테리어까지 전부 참여한데다,
저도 어머니 손을 잡고 점심을 가져다 드릴 때마다 집이 지어져가는 과정을 봐왔던지라
가족 전원이 이 집에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소철, 향나무, 장미, 두릅, 붓꽃 등등
두서없지만 마당 가장자리를 사시사철 지키고 있는 여러해살이풀들..
여유가 있을 때마다 고추, 파프리카, 상추, 로즈마리 등을 키우기도 하고,
봄엔 제비꽃과 민들레와 나비들, 가을엔 코스모스와 국화와 잠자리들이 날아다녔습니다.
녹이 슬어 조금 흉물스러워 보이기도 했지만
흰 페인트로 칠한 철제 대문도 있습니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식물에 물을 주기 위한 수돗가와
어머니가 매년 가을에 콩을 사다가 정성스레 메주를 만들어 담근 장독대들도 있었어요.
마당 한편에는 집을 짓다 남은 시멘트와 벽돌로
개집을 지어 흰 진돗개 한 마리도 길렀습니다.
물론 여름엔 풀을 베지 않으면 종아리에 풀독이 오르고
아파트의 수십 배에 달하는 모기떼와 싸워야 합니다.
겨울에는 보일러가 자주 고장 나서 바닥에 발을 대고 걸을 수 없을 만큼 춥기도 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이 집은 정말 매력적이고 자랑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이 집에서는 자주 괴현상이 일어났어요.
아니, 물리적인 일은 없었으니 현상이라고 하기엔 애매할지도 모르겠네요.
저와 어머니는 무언가 보인다기보다는 잘 느끼는 체질입니다.
어렸을 때는 그 감각에 대해 잘 이해를 못 했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사람의 기척과 시선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로 "마른 체형의 할머니"와, 약 1m 정도 되는 여자아이",
그리고 "4살 정도 되는 남자아이"의 기운을 자주 느꼈습니다.
이게 그냥 망상이 아니구나 하고 느낀 건 어머니께 상담했을 때
어머니도 거의 흡사한 이미지의 느낌을 받고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악의적인 무언가를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할머니는 제가 책을 읽고 있으면 다섯 발자국쯤 떨어진 곳에서
제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거나 화장실 입구 주변을 천천히 배회하다 사라지곤 했습니다.
여자아이는 피아노 위나 집 밖 보일러용 가스통을 모아놓는 작은 창고에서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있는 게 전부였습니다.
남자아이는 집안을 두서없이 돌아다니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빨래를 널고 있으면 제 뒤를 왔다 갔다 합니다.
TV를 보거나 컴퓨터를 하고 있으면
의자 뒤에 몸을 숨기고는 얼굴을 내밀고 바라보다
제가 뒤를 돌아보면 사라지곤 했습니다.
가끔씩은 의자 끄트머리에 흰 손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도 했어요.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아냐고 여쭤보시면 어떻게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그냥 알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기척이나 시선이 느껴지고 그 감각에 주의를 기울이면
자연스럽게 머리속에 이미지가 떠올랐다고 할까요.
제가 대학교 2학년이 되자,
저희 집을 포함한 주변 땅값이 빠르게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님께 들은 바로는 주변 땅을 대거 사들여
아파트 단지를 지으려고 하는 사업체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업체 쪽에서 먼저 아버지를 찾아왔고,
상당히 만족스러운 금액을 제안해왔다고 합니다.
부채를 전부 갚고도 남아서 대출을 받지 않고도
신축 아파트에 입주를 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이사를 가게 되면 토지를 완전히 갈아엎어서 지하주차장을 짓고
그 위에 아파트를 지을 예정이라 마당에 있는 식물들을 모두 베어버려야 했습니다.
근 10년간 집을 지켜준 진돗개와
죽어가던 것을 겨우 살려 키우던 마당 고양이도 다른 집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아버지께 반항을 했어요.
하지만 이미 결정된 일인데다 20살이 갓 넘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좋은 입양처에 보내고 맘을 접을 수밖에 없었죠.
아파트 입주 신청을 하고 잔금까지 모두 지불한 뒤,
아파트가 완공이 되기 전까지 반 년 정도 근처의 집을 빌려 살았었습니다.
그런데 이사 간 후부터 저희 가족에게 안 좋은 일이 닥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출근하실 때 앞에 가던 자재 트럭의 밧줄이 풀리는 바람에
자재들이 차량 앞판을 덮쳐 하마터면 크게 다칠뻔 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는 승마를 배우기 시작하셨는데,
2주 차에 말이 갑작스럽게 앞발을 들고 서버리는 바람에
꼬리뼈와 정강이뼈에 전치 6개월의 골절상을 입으셨습니다.
원래 장이 약했던 여동생은 독한 식중독에 걸려서 한참을 앓아눕고,
저는 훈련소 입소 3주 전에 골목길을 달리던 트럭 백미러에 튕겨져 날아가
꽤 심한 타박상과 발목 염좌를 얻었습니다.
깁스는 풀고 입소했지만,
행군 중에 발목 뼈에 금이 가버렸고요.
제가 육군병원에서 뼈에 금이 갔다는 진단을 받자,
어머니는 바로 아는 점집에 가서 상담을 받았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새로 이사 간 곳의 터가 안 좋은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그곳은 평범했다고 합니다.
죽은 사람도 없고 다른 사연이 얽혀있지도 않았고요.
오히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던 건 다른 단어였던 것 같지만,
괴담에서 흔히 말하는 "수호령"이라고 할 만한 존재의 힘이 상당히 약해져있다고 했습니다.
수호령은 각각 돌아가신 "외할머니",
어려서 병에 걸려 돌아가신 아버지의 막내 여동생, 그러니까 "막내고모"였습니다.
남자아이는 집이 맘에 들어서 눌러앉은 영가라고 하네요.
저희 집이 지어졌던 그 땅의 흙 자체가 비옥한데다,
키가 작은 식물들과 그늘을 만드는 식물의 비율이 적당해서
음기도 양기도 적당하게 서려있다고 합니다.
외관은 양옥이지만 화장실을 제외하면
전통가옥과 거의 동일한 배치로 설계되어서 가신들도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합니다.
마당에 동물을 키우는 것도 효과가 있었고요.
수호령들은 이러한 영향들을 받아 액운으로부터 집을 완전히 보호해왔지만,
이사한 후부터는 식물의 기운도 가신의 기운도 받지 못해
최소한의 보호를 하는 것이 한계라는 겁니다.
액운에 이어 잡귀들까지 장난질을 치는 바람에 가족들이 다치는 거고요.
신내림 받은 사람들에게 팔았으면 넉넉잡아 3배는 주고 팔 수 있었는데
아까운 짓을 했다는 말까지 들으셨대요.
부적을 쓰든 굿을 하든 그때뿐이니 따로 돈 쓰지 말고
잡귀들의 흥미가 떨어질 때까지 몸 간수만 잘하면 된다면 해서,
어머니는 복채만 내고 돌아오셨다고 합니다.
그 후로도 작은 사건사고가 서너 번 있었지만
부주의로 인해 다치는 경우는 있어도
우연한 일로 사고를 당하거나, 이전처럼 크게 다치는 일은 없었습니다.
괴담을 읽다 보니
몇 년간 잊고 지냈던 경험들이 떠올라 두서없이 적어봤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외할머니와 얼굴도 뵌 적 없는 막내 고모님께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제가 15년간 다른 곳에서 지냈으면
어떤 사고를 당했을지를 생각하자 오싹하기도 하고요.
출처: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