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이라고 하기에는 딱히 무섭지 않고,
어찌 보면 사소한 일을 세 번 정도 겪었습니다.
이게 저를 보살펴주는 귀신인지,
환청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똑같은 일을 세 번이나 겪고 나니
환청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더라고요.
처음 그 목소리를 들은 건 2012년 1월, 겨울이었습니다.
생활이 불편할 정도로 안검하수가 심한 편이기도 했고,
미용 목적도 겸해 안검하수 수술과 쌍꺼풀 수술을 같이 했죠.
보기와는 다르게 병치레가 굉장히 잦고 허약했지만,
수술이란 건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부분마취로 진행을 했기에 큰 긴장과 기대를 안고 수술실에 들어갔었고,
다행히 예상과는 다르게 큰 고통 없이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첫날은 붓기도 심하고 마취가 풀리면 아플 테니,
하루만 벽에 등을 기대고 앉은 채로 자라고 하시더라고요.
의사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앉아서 잤는데,
이게 생각보다 잠을 못 잘 정도로 열도 나고 욱신거림이 심하더라고요.
그래서 앓아눕듯이 끙끙거리며 잠을 잤습니다.
이때, 가위가 눌렸습니다.
이제껏 가위에 눌려본 적이 없었던 터라 그 중압감에 조금 놀랐지만,
몸이 지쳐서 그렇겠거니 하고 다시 잠을 청하려던 터였습니다.
그 순간, [힘들어?]라고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여성의 목소리였습니다.
저는 엄마께서 말씀하신 줄 알고 [응.. 힘들어..]라고 중얼거렸습니다.
그러자 맥이 탁 풀리기라도 한 듯 가위가 풀리더라고요.
이때는 아프니까 별일을 다 겪는구나 하며 단순하게 넘겼습니다.
그 일이 잊힐 즈음, 그해 여름이었습니다.
음식을 잘못 먹고 탈이 나 심한 장염에 걸렸었습니다.
장염에 걸린지 일주일이 다 되어갈 즈음 또 가위에 묵직하게 눌렸습니다.
가뜩이나 온몸에 힘도 없는데 가위에 눌리니 숨도 벅차더라고요.
결국 가위를 풀 생각조차 못 하고 끙끙거리고 있었습니다.
또 [힘들어?]라는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응.. 힘들어..]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중얼거렸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맥이 풀리듯 가위와 잠이 달아났습니다.
이 일을 연속적으로 겪고 의아한 마음에 잠시 생각해보니,
첫 번째 가위는 높고 젊은 톤을 가진 여성의 목소리였습니다.
엄마는 제게 말을 건 적이 없다고 하셨고요.
두 번째 가위 때는 집에 혼자 있었습니다.
신기한 것은 이 일을 겪고 또 겪어도 무섭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고,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가위에 풀리는 그 순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개운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여전히 그저 신기한 경험일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년 후,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취업에 관해서 극심한 우울증을 겪었습니다.
삶과 미래의 가능성에 고민만 하다
그냥 이대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고,
칼과 밧줄 같은 것을 비상 키트처럼 박스 안에 넣어 놓곤 했습니다.
심신이 지쳐 울다 잠드는 일이 빈번했고,
마침 원하는 회사의 면접에서 떨어져서 좌절감은 더욱 심해졌었죠.
무턱대고 손목을 그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겁이 많아 깊게 베지는 못해
피는 제대로 나오지도 않고 아프기만 하더군요.
스스로의 죽음도 결정하지 못하고,
제대로 취직 못하는 제가 한심해서 울다가 지쳐 잠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또다시 가위가 눌렸습니다.
[힘들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응.. 너무 힘들어..]
저는 울먹이면서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대답하면 바로 풀어주던 지난 때와는 달리,
이 말을 들려주고는 가위를 풀어주더라고요.
[괜찮아.]
다음날, 우울한 마음은 언제 있었냐는 듯
상쾌한 마음으로 취직 준비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왜 이런 힘이 솟았는지,
긍정적인 생각들을 하게 되었는지..
그 귀신 덕분인지 취업도 잘 하게 되었고,
원하는 회사는 아니었지만 나름 만족하며 살아가는 번듯한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그 후로는 가위에 눌려도 그 목소리는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힘들 때마다 찾아와 주는 것을 보니
저를 보살펴 주는 수호신 같은 것이었을까요?
아니면 힘든 나머지 들려온 환청이었을까요..
어느 쪽이었든, 제게는 살아갈 힘을 준 소중한 목소리입니다.
만약 다시 듣게 된다면 그때는 힘들다는 말보다 고맙다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출처: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