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고등학교 시절,
7교시 수업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5교시가 끝나고 두 시간 수업이 더 남아있었던 저는,
수업이 끝난 교과서를 정리하기 위해 사물함으로 다가갔습니다.
조금만 더 견디면 친구들과 놀 수 있었으니 잔뜩 신이 나 있었습니다.
오래전 기억인지라 애매하지만,
당시 제 자리는 뒤에서 두세 번째 줄 정도였기에
교실 맨 뒤에 있는 사물함과 가까운 자리였어요.
출석번호가 일의 자리였던지라,
가장 우측에 있는 1번 사물함부터
10번 사물함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습니다.
당시 저희 학교는 외국에서 사용하는 사물함을 수입해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물함이 일반적인 학교 사물함에 비해 매우 길고 높았습니다.
세로로 두 줄씩, 긴 사물함들이 쭉 늘어서 있었죠.
별생각 없이 제 사물함에 다가갔는데,
우측 아래쪽 사물함이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야말로 미친 듯이요..
마치 누군가가 사물함 안에 있어서
안간힘을 쓰며 나오려고 하는 듯한 기세였어요.
자세히 보니 사물함의 열쇠가 꽂혀 반쯤 돌아가 잠겨있었습니다.
완전히 잠긴 것이 아니라 꽂힌 상태로 3/4 정도 돌아가 있었죠.
그것을 보고 별생각 없이 누가 장난으로 친구를 가둬놨구나 싶어서,
사물함 열쇠를 열기 위해 다가갔습니다.
사물함 열쇠에 손이 다가가는 순간까지,
사물함은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열쇠에 손을 대기 바로 직전,
"이 안에 사람이 들어가는 게 가능한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리 큰 사물함이라지만
체구 작은 여자애가 들어가더라도 힘들 것 같은 사이즈였습니다.
그리고 애당초 여자애였다면 낼 수 없는 힘으로
여전히 사물함은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거든요.
쿵쾅거리는 소리는 덤이었고요.
마치 영화나 기묘한 이야기에서 봤던,
산 채로 관에 들어갔을 때 사람이 발광하는 기세라고 해야 할까요.
다른 사물함들은 그대로인데,
그 사물함만 쿵쾅거리는 그 기묘한 모습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제가 그 앞에서 망설이는 걸 알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망설이지 말고 얼른 문을 열라는 듯이,
사물함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교실이 매우 시끄러웠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할 정도로 주변 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게 기억이 납니다.
대체 이 안에 누가 들어가 있는 거고,
열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를 생각하며
한참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느낀 감정은 두려움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주변에 사람은 많았지만 부를 생각조차 나지 않았거든요.
그러던 도중,
갑자기 누군가가 제 어깨를 붙잡았습니다.
[사물함 앞에서 뭐해?]
그리 친하지 않은 친구였지만,
사물함 앞에 멍하니 서있는 걸 보고 말을 걸었던 것 같습니다.
친구의 한 마디에 갑자기 주변 소리가 돌아오기 시작했어요.
갑자기 엄청나게 시끄러운 교실 소리가 귀로 들어왔고 혼란스러워졌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말이 뜻대로 나오지 않았어요.
제 얼빠진 얼굴에 친구들이 하나 둘 다가왔고 상황을 설명하자
친구들은 사물함은 아무런 이상이 없는데 왜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다시 보니 사물함에서 나던 쾅쾅 소리와
흔들리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었습니다.
결국 함께 겁먹은 친구들과 함께 사물함을 열기로 했습니다.
전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아서 뒤에 멀찍이 서있었고요.
친구들이 사물함 문을 연 순간,
그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쥐라도 들어온 건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 안에는 쥐가 들어올 만한 구멍조차 없었습니다.
당연히 나갈 구멍도 없었고요.
애당초 쥐가 낼 만한 힘으로 흔들린 것도 아니었어요.
맹세하건대 사람이 정말 미친 듯이 문을 열려고 하는 기세로 흔들렸는걸요.
그리고 그런 물리적인 힘이 가해졌다면
붙어있는 위쪽 사물함도 함께 흔들리는 게 맞겠지만,
그 당시엔 그 사물함만이 흔들리고 있었던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친구들은 제가 장난을 친다고 생각하며 치부했고,
친한 친구들 몇 명만이 제가 울먹이며 이야기하자 겨우 믿어주었습니다.
그 사물함은 잠시나마 어딘가와 연결이 되어있었던 걸까요.
만약 그 사물함을 제가 열었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어디와 연결되어 있었던 거고,
누가 그렇게 안간힘을 써가며 문을 열려고 했던 걸까요.
그 후 이런 경험을 한 적은 없지만,
다른 차원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 문득문득 이 일이 생각납니다.
출처: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