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곡군 왜관읍이라는 곳에 가면 폐터널이 있다.
일제시대 기찻길로 사용하다가
새로운 철도가 건설되면서 자연스럽게 버려진 곳이다.
중학교 2학년 시절 이맘때쯤 그곳에서 겪은 일이다.
그때 난 왜관에서 친한 형과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봉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까지 여유가 좀 생겨서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그 터널에
담력 시험 삼아 가보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몇 년 간 동자승 생활을 한 적 있다는 형은
꽤 재미있겠다며 좋다고 했고,
그렇게 우리는 버려진 터널로 들어가게 되었다.
해가 완전히 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도로에서 좀 비껴난 곳에 있는 터널은
빛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음산했다.
터널 반대편은 아파트 공사를 하다가
붕괴되었던가 하는 이유로 막혀 있었다.
그것 때문인지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안으로 들어가는 와중에도
끝없는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증기 기관차가 지나다니며 천장에 남기기라도 했는지
그을음이 여기저기 보였다.
이곳저곳 사진을 찍으며 흙으로 가득 찬 터널의 끝에 도착할 무렵,
갑자기 그 형이 내 팔목을 잡더니 입을 열었다.
[나가자.]
[네?]
[나가서 설명해줄 테니까, 일단 나가자.]
나지막한 목소리와 달리,
내 팔목을 잡고 입구로 향하는 형의 발은 점점 빨라졌다.
귀신은커녕 아무런 느낌도 느끼지 못했던 터라,
나는 어리둥절하면서 그대로 터널 밖까지 끌려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형은
숨을 고르더니 자초지종을 설명해 줬다.
[모래가 쌓여있던 부분 위쪽에 새하얀 무언가가 떠다니고 있었어.
그걸 보니까 머리가 점점 아파져서 계속 있었다간 위험할 것 같아서 나온 거야.]
[에이, 거짓말. 전 아무것도 못 느꼈는데요?]
[아무나 그런 걸 다 느낄 수 있는 게 아니야. 믿건 말건 네 자유지만.. 이제 돌아가자.]
결국 터널을 다 둘러보지도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걸어 다녀서 그런지 피곤하고 기운도 없었다.
터널 안에서 찍은 사진을 카톡으로 형에게 보내고 난 뒤
얼마 되지 않아 난 잠이 들었다.
그날 밤, 이상한 꿈을 꾸었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터널을 계속 뛰어다니는 꿈이었다.
뒤에서 무언가가 쫓아오는 듯한 느낌이 들어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계속 뛰는데,
이상하게 아무리 가도 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꿈에서 깼을 땐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고,
잠을 다시 청하면서도 찝찝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다음날 아침,
형이 사진 한 장을 보내줬다.
어두운 터널 안을 찍은 사진이었는데,
바닥 부분에 빨간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형이 그린 듯한 동그라미였는데
이게 뭐냐고 답장을 보내려던 순간,
다음 메시지가 왔다.
"찍은 사진들 다 지워라."
"한 놈 기어 온다."
출처: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