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이던 신발을 벗고 산다면
신발을 놓는 곳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신발을 벗고 나서,
정리하는 방향을 의식해 본 적 있으신가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신발을 정리하라고 하면
항상 신발 끝이 현관 쪽을 보게 맞춰서 정리하곤 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가 신발장을 보시곤 한 마디씩 하셨습니다.
신발을 바깥쪽으로 두면 복이 걸어나간다고,
집 안쪽으로 오게 정리해야 복이 들어온다고요.
저는 속으로 그럴 리가 있나 하면서도,
다시 신발 방향을 돌려놓고는 했죠.
이 이야기는 약 7년 전 12월,
중학생 때 경험담입니다.
그 나이대 학생들이 그렇듯,
학교에서는 자고, 학원에서 공부하고,
집에 돌아오면 밤새 컴퓨터를 하곤 했습니다.
제 방은 현관을 들어오자마자 바로 오른쪽으로,
안방과는 대각선으로 2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밤에 게임을 하다가 안방 문 여닫는 소리나
부모님이 걸어오는 소리가 들리면,
모니터를 끄고 자는 척하곤 했죠.
겨울에 난방비를 아껴야 한다는 이유로
베란다 창문과 문을 모두 잠그고 두꺼운 커튼을 쳤던 터라
밤이 되면 거실은 굉장히 어두웠습니다.
그 탓에 모니터 불빛이 방문 틈으로 새어나가
부모님한테 몰컴이 걸리곤 했습니다.
그날도 가족 모두가 잠들기 전,
신발장 정리 좀 하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신발들을 안쪽 방향으로 정리하고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신발을 안쪽으로 향하게 두면 복이 들어온다고 했는데,
그럼 복이 신발이라도 신고 들어오는 걸까?
헛소리 같겠지만 정말 궁금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신발을 정리하고 나니,
가족들은 이미 방문을 닫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저는 성공적인 몰컴을 위해 화장실 가는 척을 하며
안방 문이 제대로 닫혔는지 확인했습니다.
안방 문 여닫는 소리는 굉장히 커서,
안방 문만 닫혀있어도 열리는 소리를 듣고
빠르게 자는 척이 가능했기 때문이죠.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컴퓨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요.
새벽 2시쯤, 문밖에서 탁 하는 소리를 듣고
순간 놀라 모니터를 꺼버렸습니다.
속으로 "안방 문에선 아무 소리도 안 났는데 어떻게?" 하면서,
방문으로 다가가 귀를 댔습니다.
[탁탁.. 탁..]
문밖에선 분명히 소리가 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놀란건 소리가 나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소리의 방향이 이상했거든요.
분명히 방문 바로 밖 왼쪽,
신발장에서 소리가 나고 있었습니다.
마치 신발을 신고 바닥에
발을 몇 번 구르는 듯한 그런 소리 가요.
가족들은 모두 방에서 자고 있을 텐데..
저는 잘못 들은 것이라 생각하며
바닥에 살짝 주저앉았습니다.
하지만 이어서 들려온 소리는
굳이 문에 귀를 대지 않아도 될 정도였습니다.
굉장히 빠른 발걸음 소리가
신발장에서 부엌으로 달려가는 겁니다.
진짜 복이 들어온 것은 아닐지언정,
뭔가가 들어왔다는 건 확실했습니다.
재빨리 제 방 작은 창문을 닫고
방문을 잠가버렸습니다.
다시 문에 살짝 귀를 가져다 대자,
발소리의 주인이 부엌에서 방문 앞으로 돌아오는 소리가 나더니
방문 앞 거실에서 터벅터벅 맴돌다가 침묵이 이어졌습니다.
차마 방문을 열고 나가서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아,
날이 어느 정도 밝아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때 나가기로 마음먹고 다시 모니터를 켰습니다.
시간이 흘러 새벽 6시쯤이었습니다.
날이 어느 정도 밝아오자 슬슬 나가도 좋겠다고 생각해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습니다.
거실에는 다행히 아무것도 없었지만
두꺼운 커튼도, 잠가놨던 베란다 문과 창문도 전부 활짝 열린 상태로,
거실에는 곧바로 차가운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안방 문은 굳게 닫혀있었죠.
신발장의 신발들은 여전히 가지런히 정돈된 상태였습니다.
대체 그날 신발장을 통해 들어와서 뛰어다니다가
베란다 문을 열고 사라진 그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신발을 안쪽으로 정리할 때면
또다시 뭔가가 집 안으로 걸어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출처: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