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처 대학교 유소년 축구 클럽에서 뛸 적의 이야기다.
아마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참고로 축구는 예나 지금이나 영 잘하는 편은 아니다.
여름방학 합숙으로, 깊은 산속에 있는 숙소에 가게 되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녹음이 무성하게 우거진 곳이었다.
대학교에서 관리하는 시설인지,
의외로 잘 관리된 멀쩡한 시설이었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갔었다.
자연 잔디 그라운드에서 하는 연습은 꽤 즐거웠다.
밤에는 책장에 꽂혀있던 "베르세르크"를 읽었었던 것 같다.
무서운 이야기는 여기부터다.
세 번째 날 밤에 담력 시험을 하는 게,
이 여름방학 합숙의 연례행사 같은 것이었다.
매년 기획 내용도 바뀌는 것 같은데,
그 해에는 "금지된 방에 들어가서 10분간 버티기"였다.
어렴풋한 기억이고, 다소 다른 게 있을지도 모르지만
대략 그런 느낌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방은 클럽 코치용 개인실로,
다다미 6장 정도 크기에 벽장이 있었던 거 같다.
낮에는 코치들이 쉬는 공간으로 쓰는 방이었다.
아무튼 밤이 되어,
동료들이랑 같이 방에 들어갔다.
방 안 여기저기에는 부적이나 짚인형 같은,
그럴듯한 장식이 잔뜩 되어 있어 어린 마음에 엄청 쫄았었다.
그 무렵에는 귀신같은 거 잘 믿고 있었으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분명히 만든 티가 팍팍 났을 텐데도,
당시 나에게는 충분히 무서웠다.
동료 모두가 방에 들어와 작은 목소리로
서로를 격려하며 우리는 둥그렇게 모여 섰다.
이윽고 코치가 문을 닫았다.
"견뎌내야 하는 10분 동안은 절대 목소리를 내서는 안된다"라는 규칙 때문에,
다들 입을 다물고 그대로 둥그렇게 서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한동안 바깥에서 벌레 소리만이 들려왔다.
하지만 체감으로 2분 정도 지날 무렵부터,
벽장을 쾅쾅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쾅쾅..
쾅쾅쾅..
쾅쾅쾅쾅..
쾅쾅..
불규칙한 리듬이었다.
벽장 안에 누군가 들어가 있구나 싶었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어도,
역시 겁이 나서 온몸이 벌벌 떨렸다.
한편, 주변 친구들은 아직 여유가 있어 보였다.
지금 와서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방에 숨어있던 "놀라게 하는 역할"의 사람도 꽤 무서웠을 것이다.
캄캄한 벽장 속에서 혼자서 한참을 기다렸을 테니까..
쾅쾅거리는 소리는,
마치 문을 발로 걷어차는 것 같은 소리였다.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버티자,
점차 소리가 들리는 방향이 늘어갔다.
맞은편 벽과 창가, 이윽고 사방에서..
쾅쾅..
쾅쾅쾅쾅..
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
쾅쾅쾅쾅쾅쾅쾅쾅..
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쾅..
쾅쾅거리는 소리는 리듬도 뭣도 없이
마구 두들기는 수준이 되어버렸다.
이쯤 되니 주변 녀석들도
다들 겁에 질려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문을 걷어차는 듯한 소리는,
이미 문을 때려 부수려는 듯한 수준까지 심해져 있었다.
체감으로는 한 7분 넘었을까,
드르륵 문이 열린 순간, 거짓말처럼 소리가 딱 멎었다.
코치였다.
평소 보지 못한 심각한 얼굴이었다.
[도망쳐라!]
그 말 한마디에 우리들은 둥글게 서 있던 걸 풀고
앞다퉈 방을 뛰쳐나왔다.
나는 맨 앞에서 달려나가 아버지에게 달라붙어 울었다.
울지 않은 녀석들도 상당히 불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날 담력 시험은 그대로 중단됐고,
코치의 명령으로 모두 평소보다 일찍 잠에 들었다.
이튿날 아침, 코치에게 [벽장에는 누가 들어가 있었어요?] 하고 물었지만,
[아무도 없었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어제는 위험했다.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야.]라고도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 방은 건물 맨 끝에 있는 방이었다.
벽장이 있는 건 그 방과 맞닿아 있는 쪽 벽이다.
반대편 벽은 충분히 두텁기에
그렇게 격한 소리를 내며 두드리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다.
창문 쪽은.. 그저 담력 시험 하나만을 위해,
불빛 하나 없는 산속에 사람을 보내 놓을까?
생각해보니 오히려 더 무서워진다.
첫 합숙이 트라우마가 된 탓에,
그 이후에는 여름 합숙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당시 코치들도 다 떠났고,
축구 클럽 관둔지도 한참이라 이제 와서 확인할 방법은 없다.
진위는 알 수 없지만,
당시 나에게는 죽도록 무서운 체험이었다.
출처: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