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ch] 밤 산책이 취미였다

금산스님 작성일 19.11.21 09:3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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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정도 전 이야기다.

대학에 합격하고 드디어 자취를 하게 되었다.

 


부모의 눈에서 벗어난 해방감을 느끼며

늦은 밤 산책을 다니는 게 취미가 되어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워낙 과보호라서 같이 살 때는

밤늦게 돌아다니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었으니..

 


대학생이 잔뜩 사는 학교 주변이었기에,

한밤중이라도 술 먹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있어서 그리 무섭지도 않았다.

 


나는 겁쟁이였기 때문에 혼자 한산한 심야 주택가,

그것도 낡아빠진 아파트들 근처를 걷는 건 무서워했었다.

 


하지만 한동안 걷고 있으면 몇 번 사람과 마주치니,

그럴 때마다 두려움이 누그러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은 한동안 사람이 보이질 않아,

완전 쫄아서 오늘은 그만 돌아가려고 했던 때였다.

 


마침 앞에 사람이 보였다.

마음을 좀 놓인 나는 조금 더 산책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 사람 곁을 지나치는 순간.

 


그 사람이 갑자기 만면의 미소를 지으며,

[뭘 찾으시나요?]라고 물어왔다.

 


그 녀석이 어떤 복장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 녀석의 얼굴은 엄청 인상에 남아 있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라는 영화에서

칸사이벤 쓰는 아줌마가 더욱 일그러지고 늙은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 녀석은 남자였지만..

 


또 엄청 기분 나빴던 게 나는 눈도 안 좋고 야맹증까지 있는데,

어째서인지 그 녀석 얼굴만은 확실하게 보였다는 것이다.

 


그 상황에서 뭐 똑바로 대답할 수도 없고,

[아, 그, 아뇨..] 정도로 더듬거리며 대답하고는 거기서 멀어졌다.

 


딱히 그 녀석이 따라오거나

계속 말을 걸어오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무서워서 그 녀석과 만나지 않도록

일부러 빙 돌아서 집으로 향했다.

 


집 앞 길에서 혹시 그 녀석이 있지는 않나 흠칫거렸지만,

없었기에 안심하고 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문을 닫은 순간,

동시에 초인종이 울렸다.

 

정말 놀라서 신발도 안 벗고,

방으로 뛰쳐들어갔다.

 


그리고는 문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한동안 그대로 굳어 있었다.

 


5분인가 10분인가 모르겠지만,

그 정도 시간이 지났다고 느꼈다.

 


초인종은 처음 한 번만 울렸기에,

이제는 아무도 없겠지 싶어서 문구멍을 내다봤다.

 


그 녀석이 있었다.

기분 나쁜 얼굴에 만면의 미소를 띤 채..

 


다리가 풀렸지만 신발 벗는 것도 잊은 채

뛰어가 이불을 뒤집어썼다.

 


하지만 학생이 사는 아파트는

워낙 작아서 침대에서도 문이 보인다.

 


문밖에서는 [뭘 찾으시나요? 뭘 찾으시나요? 뭘 찾으시나요?] 하고

계속 말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나도 무서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자,

문에 붙어 있는 신문 구멍이 덜컥하고 열렸다.

 


낡은 아파트라 가림막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라,

직접 들여다보는구나 싶었다.

 


눈이 마주치면 끝이야..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그 구멍으로 새하얀 팔이 쑥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 문을 열려는 건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거기서 손잡이까지는 손이 안 닿을 텐데..

 


패닉에 빠진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경찰에 신고하려 했지만,

무서워서 목소리도 안 나오고 번호도 제대로 누르질 못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팔은 그대로 안으로 들어오더니

문안에 툭 떨어졌다.

 


어? 하고 생각한 순간, 그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가요? 이건 가요? 이건 가요?] 하고 계속 말한다.

 


그것도 무척 즐거운 듯, 웃음을 참을 수 없다는 듯

[히힛!], [히히힉!| 하고 웃음이 섞여 든 채..

 


나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눈을 꼭 감고 그저 버틸 수밖에 없었다.

 


문 쪽에서는 무언가가 떨어지는 듯한 툭툭거리는 소리가 이어졌고,

그 녀석의 목소리도 계속 들려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잠에 빠졌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그 이후 딱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밤에 산책하는 취미는 그만뒀다.

 


신문 구멍은 이후 막아버렸지만,

이사하려면 돈이 들어서 아파트에는 계속 살았었다.

도쿄 동쪽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출처: VK's Epita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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