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정도 전에 일어난 일을 얘기해 보려고 한다.
심장이 쪼그라드는 거 같은 체험이었다.
나는 아파트 2층에 살고 있다.
베란다에 나오면 주차장을 끼고
맞은편에 또 하나의 아파트 B가 보인다.
그리고 그 주차장 옆 길을 따라가면
신호등 너머 슈퍼마켓이 있다.
베란다에서 보면 바로 앞에 B 아파트가 있고,
그 너머에 슈퍼가 보이는 형태다.
오늘은 동생이 집에 묵으러 와서,
[오래간만에 같이 술이나 먹을까?]라고 이야기가 진행됐다.
동생은 슈퍼에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물건 사는 게 귀찮았던 나는 집 청소나 해두기로 했다.
대충 정리를 마친 뒤,
담배나 한대 태울까 싶어 베란다로 나왔다.
하지만 담배를 다 피웠는데도
동생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추워서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마침 동생이 슈퍼에서 나오는 게 보였다.
나는 철없이 손을 흔들며,
[야! 보이냐!] 하고 동생에게 소리를 질렀다.
횡단보도 너머 서 있는 동생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다시 한번 크게 양손을 흔들며 소리치려던 순간,
무언가를 눈치채고 말았다.
정면에 있는 B 아파트 2층,
딱 내 시선과 일치하는 집 안에서
새까만 여자가 나를 보고 있었다.
그 방은 내가 이사를 처음 왔을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던 곳이었다.
베란다를 통해 보면 집에 가구 하나 없는데다,
빨래를 널거나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내가 4년 동안 사는 사이,
누가 거기 사는 걸 본 적도 없었다.
아무도 안 사는 것인가 싶었지만,
가끔 밤에 불이 켜져 있는 때가 있었다.
그랬기에 단순하게 생활 리듬이
특이한 사람이라고만 여기고 지내왔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집에서,
새까만 여자가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불이 켜져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그 여자만
표정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까맸다.
순간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그 여자로부터 시선을 뗄 수 없게 되어 울 것만 같았다.
그 순간, 아래에서 [어이!] 하고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동생이 웃으며 [잔뜩 사 왔어!]라고 외치고 있었다.
나는 가능한 한 활기차게,
[네가 한턱 쏘는 거지?] 하고 동생을 보며 대답했다.
그때 내 머릿속에는 정면에 있는 저 새까만 녀석은
자기를 부르는 거라고 생각해서 나온 것인가? 하는 생각뿐이었다.
어떻게든 정면을 다시 보지 않으려 노력하며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그 여자가 아니라 동생에게 말했던 거라는 걸 어필하기 위해
[A야, 빨리 들어와!]라고 말하며..
조금 안정을 찾고 나니,
동생이 돌아왔다는 것에 안심한 탓인지 조금 짜증이 났다.
왜 남의 집을 뚫어져라 보고 있는 거야, 저 여자..
계속 그러고 있으면 한소리 해주려는 마음에,
나는 커튼을 확 젖혔다.
그러자 정면에 있는
그 여자의 집이 보였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집 안의 불이 꺼졌다가 켜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달칵달칵달칵달칵달칵달칵..
재빨리 커튼을 닫은 뒤,
돌아온 동생에게 달라붙어 울었다.
출처: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