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시절,
팔이 부러져서 병원에 다니던 시기가 있었다.
어느 날, 병원에서 주스를 사려고
통원 중 자주 이용하던 자판기로 향했다.
가장 가장자리 통로 막다른 골목에 있는 자판기였다.
도착하고 나니,
문득 자판기 2개 옆에 문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여태까지 꽤 자주 자판기 주변을 오갔었지만,
문을 발견한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그날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지나갔지만,
얼마 더 시간이 흐르고 통원 종료가 임박할 무렵이었다.
또 주스를 마시고 싶어서 그 자판기 앞에 갔는데,
옆에 있는 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어라? 싶었지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나는
슬쩍 살펴보려는 생각에 문을 열었다.
문 저편에는 꽤 긴 복도가 쭉 이어져 있었다.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복도 끝에는 모퉁이도 보였지만
어째서인지 복도에는 불이 하나도 들어오질 않아 잘 보이지가 않았다.
잠시 바라봤지만 딱히 아무 일도 없었다.
재미없다 싶어 문을 닫으려는 순간,
모퉁이 너머에서 사람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사람 그림자는 나를 향해 걸어오는 듯했다.
눈을 부릅뜨고 바라봤지만,
아직도 거리가 좀 있어서인지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람은 오른팔만 이상하리만치 길어서
땅에 팔을 질질 끌며 걷고 있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가온다.
섬뜩해져 뒤로 물러선 순간,
천천히 걸어오던 그 녀석이 갑자기 어정거리며
이상한 걸음걸이로 빠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겁에 질린 나는 황급히 문을 닫고
주스도 사지 않은 채 대합실로 달려갔다.
그 후 그 자판기 근처에는 통원이 끝날 때까지 얼씬도 하지 않았다.
결국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모른 채 지나간 셈이다.
살아있는 사람이었던 아니었던,
그런 무서운 광경은 다신 보고 싶지 않다.
출처: VK's Epitap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