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사건은 2007년경 10월 2일 새벽2시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풍덕천동에 있는 노부모의 집에서 순간 격분한 나머지 당시 58세였던 이씨가 본인의 부모를 직접 폭행을 가해 사망하게 한 존속살해 사건입니다.
사건의 시작
2007년 9월 29일 새벽 06시 30분경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손님을 찾던 개인택시기사 김씨(가명)가 범인 이씨를 손님으로 태우게 됩니다.
이 때 이씨는 분당 xx병원으로 가줄 것을 택시기사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는 국내 유일의 내국인 카지노 강원랜드가 있는곳이었는데 이 시간대에 장거리 운전이 자주 있던 일은 아니지만 종종 있긴 했었고 손님의 행색도 깨끗했으며 무엇보다 장거리라 돈이 되기 때문에 흔쾌히 운전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본인 주장으로는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는 주택사업을 위해서 방문했다고 하는데 정말 사업을 위해서 온 것은 아니고 강원랜드에서 도박을 위해 방문했던게 아닐까 싶습니다.
사업을 위해 방문했다는 사람이 실제로는 택시비를 낼수 없을 정도로 빈털털이였던 상태였다고 합니다.
택시를 타고 가던 도중 택시기사 김씨와 이씨 사이의 운전중 시비가 붙기 시작합니다. 운전하던 김씨에게 이씨가 욕설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야이 ㄱ새끼야! 운전 똑바로 못해! 이 ㅅㄲ 이거 죽을라고! 너 이따가 ㅈㄴ 쳐 맞을줄 알아라!"
"손님! 왜이러세요. 위험해요 운전중이잖아요!"
그는 운전중인 김씨에게 지속적으로 욕설을 하고 협박을 가합니다. 김씨가 몇번이고 이씨에게 운전중 욕설을 삼가줄 것을 부탁해보았으나 이씨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손님 계속 욕설하시면 저 운전 못합니다"
"뭐? 이게 어디서 죽을라고!"
"퍽, 퍽"
"억"
이씨는 욕설로도 부족해 결국 운전중인 김씨에게 폭력까지 행사하기 시작합니다. 참다못한 김씨는 결국 제천시에 있는 제천경찰서 봉양지구대쪽으로 택시를 몰기 시작합니다. 혼자서 이 사람을 통제하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07시 42분경
김씨는 봉양지구대가 나타나자 그 앞에 차를 세우고 곧장 지구대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고 합니다.
지구대 경찰관들은 김씨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어떻게 오셨어요?"
"경찰아저씨 저 사람좀 어떻게 해주세요."
그러나 지구대 안이라면 안전할 것이라는 김씨의 예상이 빗나갑니다. 놀랍게도 이씨는 지구대안까지 쫓아들어와서 김씨에게 폭행을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야이 ㄱㅅ끼야! 너 여기 왜 왔어? 장난하냐?"
"선생님 왜 이러세요.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어? 넌 뭐야 이 ㅅ끼야"
그는 지구대안에서 김씨를 때린것도 모자라 이를 제지하며 주민등록번호를 물어보는 경찰관에게도 폭행을 가합니다. 택시기사를 폭행한 것도 모자라 지구대안에서 경찰관을 폭행한 일이 그냥 넘어갈수는 없었기 때문에 경찰관은 곧바로 이씨를 공무집행방해의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그는 제천경찰서로 이송되어 유치장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도 그는 순순히 응하지 않고 난동을 부렸다고 합니다.
당일 오후 15시경.
이 소식을 들은 친구 임씨가 면회를 옵니다.
그러나 임씨에게 이씨가 내뱉은 말은 고맙다는 인사가 아니라 욕설과 고함이었습니다.
" 야! 넌 뭐하는 ㅅㄲ야! XX공단에 있는 내 사위한테 전화 한통만 하면 바로 나갈 수 있는데 뭐하고 있어! 이 ㅅㄲ야!"
이 때 이씨는 유치장에 있었으며 유치장에서 욕설과 고함을 지르는 것은 당연히 규율위반이었기 때문에 이를 목격한 제천경찰서 수사과 유치관리팀 소속 안모 경사가 즉시 이씨를 제지를 시도합니다.
"선생님 조용히 이야기 하세요."
"넌 뭐하는 ㅅㄲ야!"
"퍽"
이씨는 자신의 처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듯 다시한번 경찰을 향해 폭력을 휘두릅니다. 그는 안모 경사의 가슴을 1회 때리고는 멱살을 잡고 흔들었고 이를 본 같은 팀 김모 경사가 다가옵니다.
"어허! 지금 이게 뭐하시는 겁니까"
"넌 또 뭐야! 이 ㄱㅅㄲ 들 한방이면 죽인다. 기운도 없는 ㅅㄲ들!"
그렇게 그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유치장에 끌려온건지도 모르는 듯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을 합니다. 이후로도 그는 유치장에서 플라스틱 휴지통으로 물을 받아 유치장 밖 책상으로 물을 뿌리고 재차 경찰관을 폭행하는 등 계속해서 난동을 부립니다.
그러던 중. 연락이 닿은 아들 이끼(가명 28세)과 딸, 사위가 경찰서에 방문합니다. 그러나 가족이 오면 금새 유치장을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이씨의 믿음은 산산조각이 납니다. 가족들이 유치장에서까지 행패를 부리는 이씨의 모습을 보고는 그대로 두고 집으로 가 버렸다고 합니다.
"야이 ㄱㅅ끼들아 내가 느그들 가만 안둬!"
욕설을 퍼붓는 이씨를 뒤로하고 경찰서를 나온 가족들의 마음도 편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냐면 이씨의 행패를 가장 가까이서 오랜기간 보아왔던 이들이 바로 이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씨가 밖으로 나오게 된다면 가족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해코지를 할 것이 분명했습니다.
어쨌든 결국 경찰서에서 석방된 이씨는 바로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니들이 감히 날 놓고 그냥가! 내가 니들 전부 죽여버릴테니까 기다리고들 있어! "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이씨는 아들에게 욕설과 함께 협박의 말까지 내뱉었다고 합니다. 아버지 이씨의 성격을 잘 아는 아들은 결국 할머니였던 황숙희(가명,76세)에게 전화를 겁니다.
"할머니..."
"그래~철승이(가명)냐?"
"할머니 대체 왜 그런 인간을 낳았어!! 대체 왜!!"
"뭔일이래....무슨 일 있어?"
"그게.....아빠가......."
손자였던 이씨는 할머니였던 황씨에게 자초지정을 설명합니다.
"할머니. 아빠가 분위기가 너무 안좋아. 이번에는 정말 심각해. 진짜 무슨일이 날것 같아. 그러니까. 꼭 집에서 나와서 다른 곳으로 피해! 알겠지?"
노부부역시 자식이 얼마나 문재아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설마 자기 자식이 부모에게 별 다른 이유없이 패륜을 저지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범행 당일
2007년 10월 1일 자정
석방된 이씨는 사북과 서울, 인천을 거쳐 2007년 10월 1일 자정무렵 10년전부터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용인시 수지구의 아파트로 귀가합니다.
이때부터 노부모와 아들간에는 격렬한 말다툼이 벌어지는데 평소같으면 쉽게 넘어갔을 일이지만 손자로부터 끔찍한 원망까지 들은 모친도 이때만큼은 쉽게 물러서지 않습니다.
2007년 10월 2일 02시경.
"니가 오죽했으면 그놈이 나헌티 그런말까지 혀!"
모친 황씨 제천에서 있었던 일과 손자의 하소연을 언급하며 이씨를 나무랍니다. 모친은 마음속에 있는 말을 하나 둘 내뱉기 시작했는데 그렇지만 이는 부모가 충분히 할 수 있는 말들로 감내할 수 있을 정도의 발언들이었다고 합니다.
이씨가 그동안 지은죄가 있었으나 부모의 진심어린 충고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오히려 짜증만 냈다고 합니다. 모친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의 분노는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 차오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일 모레가 60인데 이놈아! 제발 정신좀 차려! 중국사업은 뭐고 왜 또 동생한테 손을 벌려 이놈아!"
" 좀 고만좀 해!"
"이놈아 그렇게 살바엔 차라리 애미를 죽여라 죽여"
"에이 썅"
모친의 한 맺힌 울부짖음이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어느순간 이씨는 이성의 끈을 완전히 놓아버립니다.
"퍽"
"아이고"
손가락으로 모친의 목을 찌른 그는 모친이 바닥에 쓰러지자 주먹으로 얼굴을 마구 폭행합니다.
"퍽퍽퍽퍽..."
"으악!"
그는 모친의 얼굴에 주먹질을 한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지 발로 가슴을 마구 밟았다고 합니다. 결국 모친은 안면부 골절, 간파열등 다발성 손상으로 그자리에서 사망합니다. 모친이 사망하자 그의 풀리지 못한 분노는 부친을 향하게 됩니다.
"이...이놈아! 지금 뭐하는 거여!"
"에이 ㅆ ㅂ"
그는 모친이 살해당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충격에 빠진 부친의 목에 모친에게 한 것과 똑같이 손가락을 찔러 넣어 쓰러뜨린뒤 의자를 들고 가슴과 얼굴을 마구 내리찍었다고 합니다.
분노가 사그라들기는 커녕 더 활활 타올랐던 것일까요?.
이씨가 부친을 살해한 수법은 모친을 살해할 때보다 더 끔찍하고 잔인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목을 누르다 부친이 살기위해 몸부림치자 주방에 있던 가위를 가져와 부친의 목에 그대로 쑤셔 박았습니다. 그리고 숟가락을 좌측 눈에 찔러 박았다. 부친 역시 두경부 손상등으로 그 자리에서 사망합니다.
그렇게 이씨는 평생을 자신에게 헌신해온 부모를 별다른 이유없이 살해합니다. 결국 그는 잠시동안의 훈계조차 참지 못해 살인을 저지른 것입니다.
범인 이씨의 검거
이씨는 부모를 살해한 뒤 당일 오전 11시 20분쯤 아파트 인근에서 한모씨의 차량을 부수며 난동을 부리다 경찰에 검거됩니다. 경기도 용인 경찰서에서 조사 도중 스스로 부모를 죽였다는 자백을 순순히 하여 예상외로 빠른시간에 사건이 해결됩니다.
재판결과
범인 이씨는 스스로 부모를 폭행하고 살해한것에 대해서 전혀 미안해하거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재판부는 판결에서
" 이씨가 별다른 죄의식도 없이 범행을 저지르고 지금까지도 조금의 반성조차 없으며, 그의 존재가 가족이나 주위사람에게 위해가 될 개연성이 크다"
고 꾸찢으나 여기서도 이씨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그는 최종 "무기징역"형울 선고받고 수감되었다고 합니다.
범인 이씨(당시 58세)는 ?
범인 이씨는 2남 3녀중 첫째인 장남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학창시절부터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무에게나 욕설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하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첫째라는 이유등으로 이러한 이씨를 싸고 돌았는데 이씨의 폭력적인 성향자체를 부모 탓으로 볼 수는 없겠으나 그가 남의 감정에 무감각하거나 혹은 중년이 되어서도 자신의 감정조차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한데에는 부모의 과잉보호나 잘못된 훈육의 영향이 있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씨는 어린시절 문경에서 상경한 뒤 불성실한 행태로 고등학교 2학년 제적을 당했다고 합니다.
이후에는 부모와 남동생에게 의지하며 살아왔고 경제적으로는 가족에게 의지하면서 그 외 부분은 제멋대로 살아왔던것 같습니다.
범인 이씨(58세)의 결혼생활
이씨에게도 인생의 전환점이 생기는데 그는 이전에 놀랍게도 두번의 결혼을 했고 결혼생활은 각각 1986년과 1995년에 끝이납니다. 결혼생활 역시 내내 평탄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두 번째 결혼생활 중이던 1992년 조울증으로 한두달에 한번씩 신경정신과에 입원을 하는 등 심리적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그는 하루하루 마치 시한폭탄과 같은 불안정한 삶을 이어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첫번째 범죄
1995년 8월 13일. 경위는 알 수 없으나 그는 고모부인 전태식(가명)을 폭행을 가해서 사망하게 합니다.
범인 이씨의 첫번째 살인이었고 이 일로 인해서 감옥에 가는데 그는 '살인'이 아닌 '상해치사죄'를 적용받아 오랜기간 수감생활을 하지않고 나왔다고 합니다.
출소후 그는 여전히 방탕한 생활을 했고 그 뻔뻔함은 오히려 나날히 심해졌다고 합니다. 이씨는 어머니 황씨를 폭행하는가 하면 노부모가 평생을 모은 노후자금까지 뜯어갑니다.
이후 행적
2005년 4월
그는 중국에서 사업을 한다고 부모에게서 받아간 1억 2천만원을 모두 날립니다.
2007년 9월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서 주택사업을 하겠다고 다시 부모와 친동생에게 사업자금을 요구합니다. 1억 2천을 날린지 2년만에 다시 부모에게 사업자금을 계속 요구했고 부모를 쥐어짜내 결국 800만원을 손에 움켜진 그는 생활비가 들어있는 현금카드까지 받아갑니다.
2007년에 58세로 수감되었다면 2020년 현재 석방되지 않았다면 현재 71세의 나이가 되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