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고등학생때 반아이들이랑 늦은 시각에 학교에 남아서 미술실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잡담을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1학년때였는데 당시는 애들과 사이도 좋았고 스스럼 없이 잘 지내서 장난도 치고
늦은시간까지 남아서 그림을 그리지만 재미있었던게 생각이 납니다.
그당시 남아있던 애들은 절 포함해서 4명이였고 13평 남짓한 작은 미술실에서 따로따로 각각 자리를 잡아 소묘를 하고 있었죠.
그때 한아이가 문득 이런 말을 먼저 꺼냈습니다.
"우리 가위바위보 해서 진사람이 밖에 나가서 먹을거 사오기 할까?"
마침 배도 고프고 출출했던 참이여서 모두들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자기가 가겠다고는 하지 않았죠.
이유는 저희가 있던 소묘실이 가장 끝층인 5층이였는데 내려가려면 가운데 중앙통로계단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저희가 그때 저녁 10시쯤에 학교에 있었는데 학교는 저녁8시 이후에는 측면 계단통로문은 닫아버리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어쩔수 없이 중앙통로계단을 이용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앙통로 계단은 불도 꺼져 있고 어두울 뿐더러 각 충마다 화장실이 있었는데
그 화장실문에 유리창이 붙어있어서 계단을 내려갈때마다 여간 신경쓰이는게 아니였습니다.
각 층마다 하나씩. 총 4개의 화장실이 계단을 내려가는 통로마다 있는셈이죠.
왜 굳이 두명이서 혹은 셋이서 아님 다같이 가지 않느냐...라고 하신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냥 장난이지요. 누가 용감하냐 뭐 이런...
당시 남학생은 3명 여학생은 1명 이였습니다.
여자아이는 제외시키자고 협의를 본 후에 남자들끼리만 가위바위보를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진 사람은 저였는데 전 도무지 혼자 갈 엄두가 안나더군요
그렇다고 겁쟁이티를 내면서 같이 가줘 라고 매달리기도 그렇고...
학기초라서 약한모습 보이면 금방 잡아먹히는 먹고먹히는 세상이니 이 학교란 곳이...
그래서 전 그냥 혼자 가기로 결심하고 문을 열었죠.
끼이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안에 남게된 3명의 아이들이 다들 절 어디 죽으러가는 사람인마냥
웃으면서 "잘가~" "살아 돌아와~" 하는 표정으로 배웅.
그렇게 문을 열고 복도로 나오니 어두컴컴했습니다.
소묘실의 문에 붙은 유리창문너머로 소묘실의 불빛이 새어나오는거 말고는 아무런 빛도 없이 차단되었죠.
일단 혹시나 해서 바로 옆에 있는 측면계단통로문을 살짝 흔들어보았습니다.
잠겼더군요. 역시나였습니다. 그래서 하는수 없이 중앙통로 계단으로 향했죠.
사실 그때 그 내기에서 먹을걸 사러 간 사람에게는 한가지 메리트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애들이 한명당 각자 5천원씩 내서 총 2만원인 돈을 자기가 임의대로 사용할수가 있다는 것이었죠.
즉, 제가 애들한테 각자 먹고싶은걸 말하라고 하고 아이들이 고르면 그걸 사오고 남은돈은 제가 써도 아무렇지 않다는 것.
즉 남은 잔돈의 소유권은 제게 있다는 소리죠. 그래서 가기로 한 것도 있지만...
아무튼 그렇게 하고 중앙통로 계단에 도착했습니다. 음산하더군요.
아주 완전한 밤은 아니여서 밖에 네온사인도 있고 불빛들도 있어서 밖에서 들어오는 빛 덕분에 아주 컴컴하진 않았습니다. 복도만요.
계단아래로는 아예 빛이 차단되어있었고 게다가 골목길 같이 뱅뱅 도는 좁은 중앙통로 계단이여서 더욱 빛이 들어올수가 없는 구조였습니다.
하지만 그사이에서도 화장실의 문의 위치는 보이더군요.
일단은 빨리 내려가자는 생각에 발걸음을 빨리 했습니다.
하지만 좀 내려가다 멈추고 말았죠. 발소리가 너무 컸던것입니다.
그래서 괜히 찜찜한 느낌이 들어 뒤를 한번 돌아봐 주고는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보니 뭔가가 좀 걸리더군요.
분명 전 꽤 내려간거 같은데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를 않는 겁니다.
계속 아래로만 향하는 계단...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다시 올라가봤습니다. 계속 올라가다 보니 5층으로 와 있더군요.
그리고 소묘실로 들어갔습니다.
애들이 벌써 갔다 왔냐고 하더군요.
전 미안하다고 못사왔다고 했습니다. 겁쟁이 라고 놀리더군요.
난 도저히 못하겠다고 하면서 얼굴이 파랗게 질려있자 여자애가 무슨일 있냐며 걱정스럽게 묻더군요.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애들도 내기의 방침을 바꿔 다같이 가기로 했습니다.
소묘실 문은 키가 있으니 키로 잠그고 가면 되었죠.
복도에 불도 다 켜놓고 갈 생각이였습니다만 그렇게 되면 우리가 학교에 몰래 남아있다는게 걸리므로
하는수 없이 그냥 불이 꺼진 복도를 4명이서 가게 되었습니다.
역시 혼자보단 둘이 낫고 둘보다 셋, 셋보단 넷이더군요.
마음이 한결 나아지니 농담도 하나둘씩 건네게 되었습니다.
아까보다 훨씬 화기애애한 분위기...
애들도 별 대수롭지 않게 '저더러 뭐가 무서워서 올라왔냐 이 정도를 가지고' 하더군요.
그러다 한참을 내려갔는데 역시나 애들도 이상한 낌새를 느꼈습니다.
한참을 내려갔는데도 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까 제가 혼자 갔을때완 정확히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그건 계단의 끝에 도착했다는것. 그와 동시에 그 앞은 칠흑같은 그야말로 암흑 그 자체인 곳이였다는것이었죠.
일단 제일 앞에 있던 한명이 "아, 너 혹시 여기보고 놀라서 온거냐?" 라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했더니 퍼뜩 떠오르는게 있었습니다.
저희학교는 급식식당에 중앙통로 계단을 내려가 제일 밑에 위치해 있었죠.
지하에 있었기 때문에 지금 저희가 있는곳은 급식소였습니다.
애들도 별거 아니였다면서 다시 올라가자고 했죠. 그 순간 제 뒤에서 무언가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분명 아무도.
컴컴한 그런곳에 누가 있다고 해도 과연 무엇때문에 그곳에 있어야 했을까요.
누군가 젓가락 통을 손으로 휘젓는듯 젓가락과 숟가락 통들을 뒤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은 저희들은 부리나케 위를 향해 달렸죠.
한참을 달리다 보니 어느새 5층 소묘실에 도착해 있더군요.
저희는 키를 이용해서 소묘실 안으로 들어갔고 문을 잠궜습니다.
그리고 숨을 고른뒤에 생각했죠.
혹시 우리가 뛰는 소리를 듣고 그 급식소에 있던 무언가가 우리가 있는 소묘실에 올라오는건 아닐까. 하고.
애들은 다들 각자 가방이랑 짐을 꾸리고 캔버스화랑 판넬등을 제자리에 두고 나갈 채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소묘실을 나와서 문을 잠그고 불을 껐죠.
나가는 곳은 한군데 뿐이였습니다. 중앙계단.
측면의 계단통로는 잠겼기 때문에 이용이 불가.
조심스럽게 중앙계단으로 향했습니다.
다행히 무언가가 올라오는듯한 인기척은 없더군요.
그대로 내려갔습니다. 어느덧 1층에 도착했습니다.
저희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죠.
다들 이제 어디 갈거냐고 집에 가야지 라고 하면서 수다를 떨고 있는데 그때 한명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아아악!
순간 모두들 정문을 향해 뛰어갔습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언덕 밑으로(저희학굔 언덕위에 있었습니다.)
아주 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뛰어내려갔죠. 도중에 구른애도 있었습니다.
저희는 아주 미친듯이 내려갔죠. 다 내려오자 사람들이 저희를 쳐다봤습니다.
다들 몰골이 엉망이었죠. 오다가 넘어져서 다리 까진놈... 교복이 풀어헤쳐진놈...
여자애는 치마가 뒤집어 졌고...전 가방을 반쯤 열고 뛰어내려 와서 안에 책이며 프린트물들이 떨어져있었습니다.
저흰 다 내려온걸 확인하고 아까 비명지른놈 누구냐고 했죠.
근데 아무도 자기는 아니라고 하는 거였습니다.
전 당연히 아니죠. 왜냐하면 제가 들은거니까요.
그런데 다른애들도 다 "난 듣기만 했어. 놀라서 뛰어간거야" 라더군요.
지금도 가끔 생각 납니다.
1년전에 한번 모교를 방문했죠. 많이 바뀐 모교...
급식소는 다른곳으로 옮겼더군요. 지하는 메꿔버렸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잘 된 일인지도 모르죠...
출처 : 루리웹 유이자키히요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