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간호사’가 모 정신 병동에서 일하면서 만난 ‘최종일’이란 사람에게 들은
‘1991년 서울 동작구’에서 일어난 기이하고 무서운 이야기다.
최종일은 친구의 부탁으로 이천만 원을 빌려줬으나, 시간이 지나도 돌려받지 못했다.
어릴 적부터 죽마고우였기에 이유는 묻지 않았으나, 잔금 치를 일이 있어서 받아야 할 날이 왔다.
다행히도 친구는 잠적하거나 무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안하다며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사업을 하던 중, 거래 회사와 문제가 생겨서 늦어진다는 것이다.
한 달 안에 원금과 이자까지 쳐서 준다고 했다.
최종일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니, 자신이 아끼던 그림을 맡아도 좋다고 했다.
만약 돈을 갚지 않으면 빌린 돈보다 비싼 그림을 팔라고 했다.
그림은 미인도인데,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웠다.
한복을 입은 여자가 가락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고, 직인에는 김희소라고 적혀 있었다.
친구 말로는 일본 나고야에서 유학 중인 유명한 화가가 그렸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그림을 가져왔다.
최종일은 그걸 돌돌 말아 서재 구석에 두려고 했다.
하지만 가족들이 그림에 관심을 가지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허락도 없이 큰딸이 그림을 펼쳤다. 가족들은 신윤복이나 김홍도 그림이 아니라며 실망했다.
키우던 강아지도 짖었는데, 녀석도 싸구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최종일은 유명한 화가가 그렸다며, 자기도 모르게 그림을 펼쳐 현관 입구에 있던 그림과 교체했다.
평소에 조용하던 강아지였는데, 그림을 보며 계속 짖었다.
첫째에게 데려가라고 했지만, 오히려 딸이 강아지는 어디에 있냐며 물었다.
그림 앞에서 짖고 있다고 하니, 강아지는 사리진 뒤였다.
집안 곳곳을 찾았지만, 강아지는 보이지 않았다.
세 딸이 전부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집을 나갔거나, 어딘가에 숨어 있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이 타서 깼는데, 방문 앞부터 냉장고까지 음식물이 떨어진 흔적이 있었다.
아내는 자고 있었기에 범인이 아니었고, 세 딸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두 자고 있었고 도둑이라도 들었다는 예감이 들 때였다.
거실 바닥에 낯익은 무언가가 있었다. 천천히 다가가 보니, 사라졌던 강아지였다.
강아지는 숨을 쉬지 않았다.
최종일은 소리쳤다. 가족들 모두가 뛰쳐나왔고, 강아지를 보며 경악했다.
늦은 새벽, 강아지를 묻어주고 오니 가족들이 침울해 있었다.
최종은 출근을 위해 방으로 들어왔다. 이번에는 셋째가 비명을 질렀다.
미인도의 눈동자가 움직였다고 했다.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강아지가 죽은 일은 안타깝지만, 막내가 헛것을 봤다고 생각했다.
다음 날, 막내가 없다며 아내가 소란스러웠다.
학교에 일찍 간 거 아니냐고 물었지만, 교복은 그대로라고 했다.
최종일은 아끼던 강아지가 죽어서 충격을 받은 것 같으니, 염려 말라고 했다.
그 나이에는 감수성이 풍부해서 그럴 수 있다고….
문제는 회사가 끝날 시간에도 막내 문제로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며 아내가 그랬다.
그제야 경찰에게 알렸다.
경찰은 ‘단순 가출’이 많다며, 집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막내가 가 볼만한 곳을 갔지만 흔적조차 없었다.
할 수 없이 집에서 경찰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데, 두 딸이 하는 대화를 듣게 됐다.
막내가 그림이 이상하다며 언니들에게 그림을 버리자고 했단다.
어쩌면 강아지가 죽은 것도 그림을 가져온 후부터라고 했다.
또한 막내만 마지막까지 거실에 있다가 사라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둘은 그림 속 여자가 어제보다 웃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도저히 잠들 수 없었다.
경찰에게 전화를 걸기도 하고, 가출 아이들을 맡고 있다는 교회도 알아봤다.
막내딸은 가출하거나 속을 썩일 심성도 아니었기에 아무리 생각해도 가출은 아니었다.
아내는 막내를 찾느라 울고불고하다가 잠에 들었다.
그때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문을 여니, 부엌이었다.
조심스럽게 걸어가니, 그때처럼 음식의 흔적이 바닥에 있었다.
딸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두 딸은 깨어 있었지만, 음식을 먹은 이는 없었다.
그때, 아래에서 아내의 비명이 들렸다.
내려가니, 아내가 겁에 질려 있었다.
부엌에 이상한 소리가 들려서 봤더니, 웬 여자가 냉장고를 뒤지고 있었다고 했다.
무서워 소리를 쳤는데, 그녀는 순식간에 달려와 그림 안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믿기 힘들었다. 두 딸은 그림을 살폈다.
“이것 좀 봐…. 전보다 더 웃고 있잖아?”
“언니 말이 맞는 것 같아. 아빠도 한 번 봐요.”
아내는 그림을 치우자고 했지만, 최종은 말이 되지도 않는 소리에 화를 냈다.
“누구라도 그림에 손대면 가만두지 않겠다.”
다음 날이었다.
막내의 신상정보로 전단지라도 만들려고 하는데,
아내와 첫째가 무당이나 철학원을 찾아갈 거라고 했다.
당시에 주역으로 납치당한 아이를 구한 적이 있다면서, 뭐라도 하겠다고 했다.
쓴소리를 내고 싶었지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냥 뒀다.
다만 막내딸이나, 경찰에게 연락이 올 수도 있기에 차녀는 집을 지켰다.
최종이 집에 왔을 때였다.
차녀가 보이지 않았다. 거실은 냉장고에서 꺼낸 음식으로 엉망이었다.
호출기를 걸어도 묵묵부답이었다.
혹시 함께 있는 것은 아닐까, 첫째의 호출기에 연락했다.
잠시 후,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연락이 왔다.
최종은 미칠 지경이였다.
자신도 모르게 미인도를 봤지만, 아내의 말은 헛소리였다.
그림이 어떻게 튀어나올 수 있나?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잔 최종일은 자기도 모르게 소파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아빠…, 아빠…, 살려주세요…”
딸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너무나 생생했지만 아무도 없었다.
마침 아내와 큰딸이 왔는데, 둘째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모녀가 그림을 노려봤다.
무당의 말로는 귀신이 그림에 숨어 있다며 막내를 데려갔다고 했다.
둘째도 귀신의 짓이라며, 가만두지 않을 거라 했다.
아내는 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만든 은장도를 천만 원이나 주고 샀다며,
귀신이 그림에서 나오면 찌르면 된다고 했다.
최종일은 답답했다.
세상에 귀신이 어디에 있나? 그림의 짓이라면 친구가 나를 해하려고 그림을 줬다는 말인가?
차라리 살인을 모의하는 게 빨랐다.
천만 원짜리 은장도라는 사실에 한심했다.
둘은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
최종은 아내와 첫째가 그러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미인도가 모두 그랬다는 걸 사실로 믿었다.
솔직히 아이들이 갈만한 장소에 연락하는 것이 옳았다.
미신을 신뢰하는 모녀에게 심술이 났다.
아내와 첫째가 거실을 치우는 사이, 비단 주머니에 든 은장도를 꺼내어 볼펜과 바꿔 버렸다.
그러곤 최종일은 아이들의 방으로 올라가 단서들을 찾을 생각이었다.
잠시 후, 불이 나갔다. 놀란 최종은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어 켰다.
갑자기 아래층에서 쿵, 쿵 소리가 났다.
재빨리 내려가 라이터를 켰는데, 그림 속 여자가 아내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첫째는 은장도가 없다며 마구 소리쳤다.
그제야 최종일은 아내와 첫째의 말이 사실이라 깨닫고 바지를 뒤졌지만, 은장도는 없었다.
라이터를 꺼내면서 흘린 것 같았다.
다시 2층으로 올라가 은장도를 찾는데, 한참을 헤매다가 의자 아래에서 찾았다.
재빨리 다시 내려갔다.
하지만 아내는 이미 숨을 거두었고, 귀신이 첫째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최종일은 귀신을 밀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첫째가 목이 잠긴 목소리로 ‘은장도’라고 외치자, 뒤늦게 빼 들었다.
하지만 귀신이 고개를 돌리더니 밀쳤다.
결국 첫째도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숨을 쉬지 않았다.
믿을 수 없는 사실은 실종됐던 두 딸이 나란히 누워 있었다.
그걸 본 최종은 오열했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여자는 그림처럼 웃더니, 춤만 춰댔다.
경찰이 집에 들이닥쳤다.
아내와 딸의 시신을 보자 최종일을 잡아갔다.
이후 부검이며, 진술까지 마쳤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내와 세 딸의 사인은 물리적 충격도 아니고, 약물중독도 아니었다.
모두 ‘심장마비’란 것이다.
다시 말해서 최종은 살인하지 않았다는 판결도 받았다.
하지만 그림은 어디론가 사라졌고, 최종일은 어느 순간 정신 병동에 입원하게 됐다.
최종일은 간호사나 의사에게 귀신이 존재하는지 묻곤 한단다.
믿지 않는다고 하면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하다가 발작하는데,
정 간호사는 대여섯 번 정도 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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