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시리 생각이 나서..

ETA™ 작성일 06.03.29 22:3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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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판을 둘러보다 보면 가슴 아픈 이야기에 제 과거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괜시리 슬퍼지고, 도움이 되는 글 하나 변변히 남기지 못하는게 죄송스럽기도 하네요

오늘따라 그녀 생각이 나네요.

즐거웠던 일보다 가슴이 찢어질것 같은 아픈 기억만 많은데도, 시간이 지나니 그것도 재미있던 추억이 되나 봅니다.
만났으면 헤어지지 말고, 헤어질 거면 만나지나 말것이지.. 왜 만나 정이 들고 헤어짐을 슬퍼하는지..


처음에 선배들 졸업파티때 처음 만났습니다. 제 썰렁한 농담에도 방긋방긋 웃어주는 그녀가 너무 귀여워 보이더군요.
몇차까지 갔는지 기억도 나지않고, 모였던 사람이 다섯명으로 줄었을 때 그녀를 데려다 줬습니다. 자연스레 팔짱을 끼게 되었죠.. 새벽 다섯시였나? 그렇게 집에 잘 데려다 주고 헤어졌습니다.

2시간쯤 자고 아침 수업에 나갔죠. 수업이 끝나고 왠 여자가 친근하게 말을 거는데,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몇시간 전에 헤어졌던 그녀였습니다. 술을 많이 마셔 얼굴이 떠버린게.. 하핫.. 일순 누군지 못알아 봤던 거죠.

친한 후배로 여겼고, 당시 여자친구도 있던 터라 절친한 선후배로 지냈고, 정말 많이 얘기도 했죠.(얼마후 전 깨졌습니다)

고민도 많이 들어줬고, 덕분에 새벽에 전화벨에 깨서 두세시간씩 통화하기 일수 였죠.
가끔 아프다고 하면 약 사가지고 택시로 달려가기도 많이 했고..
술마시다 생각나면 그녀 집앞에서 서성이기도 하고..


사랑이라는게 일순간에 찾아와서 사람을 당황스럽게 하나봅니다. 어느날부턴가 그애가 여자로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처음이었습니다.
화이트데이때 여자에게 사탕을 선물한건..
로즈데이때 꽃다발은 안긴것도..
세번씩이나 고백한것도 그녀가 처음이었죠..

로즈데이땐 그녀 집앞에서 기다리는데, 많이 보던 얼굴이 저 쪽 길가에서 오는 겁니다. 어둠이 걷혔을땐 숨이 멎는것 같은 느낌.....
알고 봤더니, 고교, 대학까지 동창인 친구녀석이 역시 꽃다발을 들고 있더군요.. 그 녀석도 그녀에게 관심이 있었나보죠.. 둘이 그날 소주마시면서 얘기도 많이 했고.. 서로 진작에 말하지 않았냐며 위로도 했고..


사랑고백의 결과는 언제나 같았습니다.

그냥 편한 오빠라고.. 친 오라버니 같다며 울던 그녀와 같이 부둥켜 울기도 많이 울었고
멀쩡한 친구녀석 데려다 놓고 하소연도 많이 했었죠..

'그럼 그냥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자'라고 하면 울면서
'편한 오빠로는 안되겠냐고....'
'과 CC는 절대 사귀지 않을거라고..'

마음 독하게 먹고 연락안하면 술 취한 목소리로 전화가 오죠.. '정말 연락안하고 살거냐'고, '다시는 만나지 않을거냐고..'


한번은 술에 취해 전화가 왔습니다. 부랴부랴 옷 입고 택시잡아서 그녀 집으로 가니, 골목길 앞쪽에 누군가가 서로 껴앉고 있더군요.
숨이 멎을것 같은 충격에 자세히 쳐다보니 그녀가 왠 남자품에서 안겨 울더군요.. 하핫.. 둘이 같이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걸 보고 있을수 밖에 없었죠..

아이러니하게도 4층 그녀의 방을 쳐다보고 있는데, 어떤 작자가 다가와서 신분증을 보여달라는거 아니겠습니까?
하핫 "누구세요" 그러니 경찰이고 근방에 치한이 많아서 그러는 거라 하더군요..
신분증 보여주고나니 삼십분 넘게 빌라주변을 왔다갔다하는게 도둑인줄 알았다며, 왜 밤중(4시경)에 돌아다니냐 하길래
이래저래 하다 하니 측은한 눈빛으로 얼른 들어가라고 하더군요...

한 삼십여분간 그러다가 술 생각이 간절해 친구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문자를 보냈죠.. 누구냐고..
하니 전화가 와서 그녀 집으로 단숨에 달려갔습니다.(친구는 버려두고;;)

'선배다, 껴앉고만 있었다' 그러더군요..
눈물이 핑돌더군요 '어' 라는 대답과 함께 힘차게 껴앉고 키스했고.. 그렇게 밤을 지샜습니다.


'역시 난 안되겠니?'란 물음에 말없이 울음만 터트렸던 그녀.. 저도 같이 울 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제가 오빠로만 보였나봅니다.
술 취한 어느날 밤엔 자기가 좋아하는 남자한테 차였다고 힘들다고 하더군요..
어떤 놈인지..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것조차도 힘든 사람도 있는데...
그녀가 원망스러웠습니다. 제 맘까지 갈가리 찢어놓고....



그리고나서도 자주 만나고 자주 이야기하고 그렇게 지냈죠..
거의 일년이 넘는 동안요..


그러다 4학년 말에 차츰 관계가 소원해지더니, 겨울방학이 와서 한동안 연락 안하고 지냈고 그렇게 졸업을 해버렸죠.

그리고 몇달이 지난 뒤
청천병력같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CC는 절대 싫다던 그녀가 제 친구하고 사귀고 있던 거죠..'
로즈데이때 조우했던 그녀석도 아니고, 저도 아닌 다른 사람이었던 거죠.. 하핫

아직도 사귀고 있는지, 어떻게 사귀게 됐는지는 관심 밖입니다.


벌써 몇년이 지나 가끔 추억으로만 생각이 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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