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겐 여친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를 사귀게 된 과정이 참.... 속이나 한 번 풀어보려고 합니다.
제가 2학년 때 여친이 같은 반(학부제라 반을 운영합니다.) 후배로 들어왔죠.
그 때는 그냥 아는 후배로 지내다가 끈이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1년 쯤 지나서 제가 속한 동아리에 들어오더군요.
그 때부터 선후배로 잘 지냈습니다.
첫 변화는 동아리 합숙 때였습니다.
당시 이 친구가 극악 5주 다이어트 중이라 술은 커녕 밥이나 과자 고기 등 모든 것을 못 먹던 때였죠.
사실 그런 인위적인 다이어트는 반대하지만 노력하는 모습은 인정해야겠더군요.
그런데 아무것도 못먹으면서 합숙에서 다른 아이들이 먹을 요리를 하는 것입니다.
완전 헌신적인 모습에 반했습니다. 그 때는 반했는 줄 인식도 못했지만 말이죠.
합숙 때 새내기에게는 사발식을 시행하는 게 동아리 전통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당연히 이 친구는 사발식을 못한다고 다들 인정하더군요. 고기 한 점 못 먹고 참는 애한테 못할 짓이라는 거죠.
하지만 당시 회장이었던 저는 제 권력으로 사발식을 강행했습니다.
사발주를 만들어가면서 선배들이 한마디씩 덕담을 해줄 때 느낄 수 있는 기묘하면서도 좋은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물론 마지막에 그 취지를 밝히고 대신 마셔주는 것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순수한 호의로 한 일이었죠.
그런데 애가 우는 겁니다.
열 받아서 우는 건지, 긴장이 풀려서 우는 건지, 감동해서 우는 건지....
엄청 당황해서 다음 순서로 재빨리 넘어갔죠.
그 일 이후 뭔가 진척이 있을 것도 같았지만 그냥 선후배로 관계가 굳어버리는 것 같더군요.
저는 동아리 회장으로 갖는 책임도 있고 해서 감정 깊어지기 전에 마인드컨트롤로 마음을 묻어버렸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저는 그래도 간간히 고개를 드는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서 결단을 내렸습니다.
제 친구와 여친을(그 때는 아니었죠.) 소개팅 주선해버렸습니다.
둘이 사귀더군요. 그런데 한 달도 못가서 깨졌습니다.
그리고 일이 참 재미있게 돌아갔습니다.
우선 지금의 제 여친을 좋아하는 사람이 3명이나 생겼습니다.
한 명은 그 깨진 친구였고 다른 한명은 일자리 동료였고 또 한명은 같은 동아리 남자였죠.
또 저를 좋아하는 여자도 3명이나 생겼습니다.
한 명은 동네에서 알고 지내던 녀석이었고, 둘은 동아리 후배였죠.
제 여친에게 동아리 남학우가 고백했다가 차였고 그 남학우는 아직 포기를 하지 않았죠.
그 상황에서 제 여친이 자기 마음을 동아리에 속한 사람들에게 털어놨는데 그게 저를 좋아한다는 거였죠.
그 말을 들은 애들 중에 저를 좋아하던 동아리 후배가 있었습니다. 물론 저는 못 들었죠.
그날 그 말으 들은 동아리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술에 좀 취해서 1시간을 떠들더군요.
말을 요점만 정리하면 '오빠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인기 많아서 좋겠다.' '기대하고 있으라.' 이런 거였죠.
그런데 그 말을 취해서 1시간을 넘게 떠들었으니....
저는 그제서야 감을 잡았습니다.
인간 관계가 참 환상이더군요. 이건 뭐 시트콤이 따로 없습니다.
저는 머리를 싸매고 고민을 했죠.
사실 전화온 후배랑은 데이트 비슷한 것도 몇 번 한 사이입니다.
전화를 받기 전에는 몰랐지만 받고 나니까 과거가 오버랩되면서 나름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고민 진짜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나름 결론을 내렸죠.
동네 친구는 그냥 친구로 지낼 수 있는 사이였습니다.
동아리 후배들 가운데 전화온 후배가 아닌 다른 후배는 아마도 잠깐의 감정으로 보였습니다.
전화온 후배와 지금의 여친은 진심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한 명을 선택해야 했죠.
객관적으로 전화온 후배가 더 이쁩니다.
상황을 넓게 봤을 때 전화온 후배를 선택할 때 모든 일이 잘 풀립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고민이 된다는 것은 제 속마음은 제 여친을 좋아한다는 것을 말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렇다고 전화온 후배가 싫은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무의식이 제 여친으로 기운다는 거죠.
그래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상황을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정리가 되겠구나 했죠.
그런데 상황이 정리되기 전에 일이 터졌습니다.
여친의 직장동료(알바)가 집 앞에서 장미꽃 100송이를 들고 기다리고 있다가 고백을 한 겁니다.
그래서 여친은 일단 거절하고 집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에게 전화가 왔죠.
그리고 저에게 고백했습니다.
참.....
시기가 정말 좋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기다려 달라나 다른 얘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제게 허락된 답은 Yes와 No 뿐이었죠.
상황이 정리될 시간이 필요했는데 말이죠.
제가 No를 선택할 경우 모두가 행복할 수 있습니다.
저는 마인드 컨트롤이 참 잘 되기 때문에 그냥 잊고 후배랑 잘 되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후배도 잘 되고 소개팅 했던 제 친구와의 사이도 무난할 겁니다.
여친도 돈 많고 능력있는 남자랑 사귀면서 저는 천천히 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 입에서는 결국 Yes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우린 사귀었습니다.
전화온 동아리 후배와 여친에게 고백했던 동아리 남학우는 동아리를 탈퇴했습니다.
동아리 인원이 얼마 안 되기 때문에 동아리 존폐의 위기가 닥쳤죠.
수습하는데 진짜 힘들었습니다.
제 친구에게는 감히 말을 못하겠더군요. 비밀로 했다가 얼마 전에야 겨우 털어놨습니다.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이건 뭐 시트콤이 따로 없죠....
어렵게 시작해서 그런지 어느 순간까지는 관계진척이 잘 안되다가 서로에 대해서 확신을 가진 후로는 관계 진턱이 폭주하더군요.
저는 생활은 금욕적이지만 성향은 쾌락주의자이기 때문에 서로 좋아하고 사랑하면 순결은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자친구에게 동정을 주었죠. 여자친구도 처음이라고 하더군요.
첫 관계 후 혈흔은 없더군요. 종종 처녀막이 없는 경우가 있다던데 그 경우인 것 같았습니다.
뭐 사실 처녀가 아니었더라도 상관은 없습니다.
중요한 건 첫 관계가 그대로 임신으로 이어졌다는 거죠.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습니다.
둘 다 학생이기 때문에 아이를 낳을 수는 없었습니다.
죄를 지었죠.
여친에게 진짜 못할 짓을 했습니다.
병원에서 수술 후의 여친을 보고 있으니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그 날은 여친에게도 저에게도 인생 최악의 하루였습니다.
여친이 자취중이었기 때문에 일처리 하는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었죠.
그 뒤로는 큰 사건은 없지만 왕복 10시간짜리 원거리 연애를 하게 된 것이 힘들더군요.
여기까지 쓰니까 갑자기 더 쓰고 싶지 않네요.....
암튼 너무 힘들게 돌아왔고 많은 것들을 포기했고 너무 아팠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어떤 조언을 구하려 함이 아닙니다.
그냥 저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장소에 시원하게 얘기를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으신 분들을 저와 같은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자신이 매력이 없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모르는 사이에 이성을 유혹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감을 잃지 마세요.
상대도 자신을 좋아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가치관에 따라 다르겠지만 관계를 맺게 될 때는 그만한 책임감과 조심성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미워하게 될 수도 있어요.
모두가 아름다운 사랑을 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