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그녀의 가두리양식장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계신 분들을 위한 매뉴얼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셸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분명 딱딱한 마음이 녹는 글이지만, 노멀로그 공익광고에서 7월 한달간 강조하고 있는 이야기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좋은 동생 많아지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연애에서 먼저 반한다는 것은 그만큼 고민과 인내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지금 이야기하는 '먼저 반한다는 것'은 그것이 '맹목적인 헌신'으로 변했을 때, 결국 손을 반반 내밀어 중간에서 맞잡은 것이 아닌, 꿈쩍도 하지 않는 그녀에게 당신이 팔을 뻗어 손을 잡으려 한 모양이 된다.
이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를 꺼내는 까닭은, 자신이 어장관리를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절대 그것을 분간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눈치가 빠른 친구들은 '낚였다'는 것을 본능처럼 알아채긴 하지만, 안다고 해도 소용없다. 이미 마음을 뺏겼다면 바보같은 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구애의 몸짓을 하는 것이 바로 어장관리다. 자, 이러한 어장관리에서 벗어날 필살 공략법을 살펴보자.
1. 유통기한이 지난 메세지는 지우자.
"무한님, 그녀가 분명 절 좋아했었데요.
그런데 제가 너무 늦어서, 자긴 마음을 접었다고 하네요.
분명 제가 고백해주길 바라는 뉘앙스의 문자도 전에 보냈었거든요.
하지만 제가 트리플 A형이라...
세번이나 고백했는데.. 미안하다는 대답밖에 없네요..
다시 한 번 고백해보고, 이번에도 아니라면.. 잊으려구요.."
관계의 연장선을 어디서부터 그을 것이냐는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그렇다고 옛 메세지에 매달려 있는 것은 후레쉬 약을 갈아 끼우지 않고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버튼만 만지고 있는 것 만큼이나 쓸데 없는 일이다. 이것은 이별한 커플에게도 해당되는 말로 "영원히 널 사랑할게" 이런 말을 한 적 있다고, 아직도 그 말이 유효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겨울에 벚꽃 피기를 기다리고 앉아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아무리 큰 돈이 들어있던 통장도 다 쓰고 나면 삼겹살 한 근을 살 수 없을 만큼 변하는 것이다. 예전 큰돈이 들어왔을 때의 기록만 보며 자위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면, 현재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도 나 생각해 주는 건 오빠밖에 없네.."
이 말에 또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이런 말을 백번 들었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고객센터 상담원이 "고객님 사랑합니다" 라는 멘트를 백번 한다고 내일당장 그 상담원분과 연애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처럼 말이다.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마음이다.
오빠 -(좋은사람)-> 나 -(좋은사람) -> 그 사람
이런 관계도 될 수 있지 않을까? 고백하면 미안하다고 거절하고, 마음 접으려고 하면 "고마워 오빤 너무 좋은 사람이야" 라는 그녀 때문에 고민인가. 어쩔 수 밖에 없다. 옛부터 '좋은사람'과 사귀기는 힘들고, 만약 사귄다 해도 헤어지고 나서야 '좋은사람' 이었다는 걸 아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2. 마음에 다른 것을 채워라
생산적인 취미활동이나 동아리 활동등을 적극 추천한다. 방학을 맞이한 대학생의 경우 온종일 그녀 생각만 하다 상사병의 3개월을 보내기도 하고, 잠깐 쉬고 있는 경우 그녀에 대한 집착과 헌신의 마음은 커진다. 연애는 당장 급한 것도 아니고, 그 사람과 사귀지 못한다고 큰 일 나는 것도 아니다. 특히 아직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만들어 낸 이미지가 커져있을 경우, 문자를 보내놓고 답문 올 때 까지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않거나 뭔가 이상하게 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해도 구애의 몸짓을 멈추지 못할 것이다.
증상이 심한 경우 중독성이 강한 온라인 게임을 추천한다. 온라인 게임을 즐기다보면 어느새 절박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현질(아이템을 현금으로 사는 것)하며 컴퓨터 앞에서 밥을 먹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단점이라면, 이 민간요법(?)을 사용했던 Y군(32세,게임업)의 경우 연애세포가 모두 소실되어 지금은 그저 몹(게임에서의 몬스터 등) 잡는 일에 열중한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경우, 편의점에 담배 사러 갔다가 알바중인 운명의 그녀를 발견하더라도, 그녀의 나이를 묻는 질문 대신 이런 말이 튀어나오게 된다.
"저기.. 몇 렙 이세요? (응?)"
마음에 그 사람이 가득 차서 숨도 한 번 크게 들이쉬지 못하겠다는 말을 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숨 잘 쉬고 계신 것으로 밝혀졌다. 지구의 종말이 조만간 오는 것이 아니다. 하루하루 혼자 상상해내고 만들어낸 이미지에 구애하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다. 마음의 집에서 그녀에게 맛있는 음식들을 해 주는 것은 그녀가 마음의 집에 들어오고 난 후에 해도 늦지 않다. 혼자 음식부터 해 놓고 조급해 한다면 스스로 지치게 될 것이다.
3. 욕심으로 불리는 이야기
"그 사람.. 밝은 척 하지만.. 알고보면 힘들어 하는 부분이 많아요..
제가 그 짐을 덜어주고 싶어요.. "
그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여인들도 위와 같은 상태다. 심지어는 나 마저도 알고보면 힘들고 어려워하고 있는 부분이 많다. 시집 두 권이면, 위와 같은 상황을 설명해 줄 수 있다.
정호승시인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류시화시인의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힘들어 하는 부분은 접어두고, 어떻게 그 사람의 짐을 덜어줄 수 있다는 건지 난 그게 참 궁금하다. 물질적인 면이야 당장 그녀가 끼니를 굶는다면 도와줄 수 있겠지만, 마음의 짐은 덜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짐의 무게보다 더 큰 행복으로 그 짐을 지고 있다는 것을 잊게 해 주는 것일 뿐이란 얘기다. 마음의 짐을 누군가에게 덜어 줄 수 있는 거라면 난 이미 택배로 많은 이들에게 마음의 짐을 나누어 주었을 것이다.
"그 사람과 왜 사귀고 싶으신가요?"
난 조언을 구하는 많은 솔로부대원들에게 이 물음을 던진다. "그 사람을 왜 좋아하나요?" 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다. 답변들을 보면, 굳이 연인 사이가 아니라도 충분히 해 줄 수 있는 일도 많고, 함께 할 수 있는 일도 많다. 마음의 공허함을 연애로 채우겠다는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다. 솔로시절에야 연애만 시작하면 날개라도 돋을 것 같이 생각되겠지만, 처음부터 구멍나 있는 마음에 넘칠 때 까지 사랑을 채우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사랑의 말과 글과 행동으로 서로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구멍을 온몸으로 막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대학 들어가려고 몇 년 공부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어렵단 얘기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범죄의 재구성>이라는 영화 마지막 부분에 이런 말이 나온다.
사기는 테크닉이 아니다. 심리전이다.
그 사람이 뭘 원하는지, 그 사람이 뭘 두려워하는지 알면,
게임 끝이다.
어장관리를 사기에 비유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지만, 해결책은 간단하다. 원하는 것이 없고, 두려워 하는 것도 없으면 된다. 연애를 원하는가? 고백했다가 불편한 사이가 될까봐 두려운가? 자신이 뭘 원하고, 뭘 두려워 하고 있는지를 알게된다면, 그것을 놓아버렸을때 어장관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무한님, 위에 처럼 다 해 봤는데, 그래도 온통 그녀 생각뿐이에요"
그렇다면 필살기를 쓸 차례다. 자신이 있는 곳이 어장이라는 것을 알고, '좋은 오빠' 같은 떡밥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스스로 눈치 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을 때,
그녀에게 '곧휴'가 있다고 생각해라.
이상하게 상상하시는 분들이 벌써 보이는 것 같은데, 이상한 상상은 그만하시고, 그녀를 동성으로 생각하라는 얘기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삼십년 넘게 알고 지낸 동네 친구라고 해도 그 동성친구와 사귀겠다는 생각은 전혀 안든다. '내 차례가 오겠지..' 라는 생각보다는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그 상황을 즐겨라. 조건부의 고백을 남발하지 말고, 당신도 그 사람을 좋은 친구로 생각하고, 좋은 친구처럼 만나면 되는 것이다.
어장관리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상대의 계속되는 거절로 마음의 상처를 입고 마음에 굳은살이 박힐 때 까지 단련되어서 나오는 방법도 있겠지만, 굳이 안 볼 사람 하나 만들 필요는 없다. 그 어장에서 마음껏 살찌고 즐겁게 뛰놀다가 운명 같은 상대를 만난다면 계속 어장에 있어달라고 부탁해도 당신은 어장을 박차고 나올 것이다.
자, 일등 참치(응?)가 되는거다!
출처 - 다음View http://normalog.com/ ->무한의 노멀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