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돈으로 하는 사랑이 가장 쉬운 사랑입니다

GUN@ 작성일 09.12.29 02:02:12
댓글 15조회 3,286추천 11

눈팅만 하다가 처음 글써보네요

네이트 판에서 보신분들도 계시겠지만, 아직 짱공에서는 보지 못한것 같아 퍼왔습니다

왠지 공유하고 싶은 글이라 ^^

이분 여친이 답장으로 달으신 글도 링크 타고 들어가셔서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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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너무 간절해질 때는 인터넷으로 한국뉴스도 보고 개그프로그램도 보고 이렇게 인터넷으로 여러분들의 일상을 구경하며 웃고 눈물 짓기도 하는 이제 서른을 넘겨버린 젊은이입니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남녀간 데이트 때 더치페이 문제, 루저 소동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제가 받은 사랑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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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점점 동이 터오네요.
 저는 미국에서 공부를 마무리 짓고 있는 사람입니다. 한글을 다시 쓰려니 표현이 다소 서툴러도 이해해주십시오. 



 큰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부도를 맞으시고 우리 모두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죠.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며 그 등쌀을 피해서 생활하다가 입 하나라도 덜고 학비걱정이나 좀 덜려고 군대를 자원해서 갔습니다.

 제대 후에도 집형편은 나아진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학기 휴학해서 돈을 벌고 한학기 다니다가 한학기 또 휴학하고 이런 생활을 했습니다.


 경남의 한 중소도시 대형마트에서 일했는데 커피나 햄 같은 거 시식할 때 나레이터모델들을 고용해서 유니폼 입혀서 시선을 끌고 손님들의 시식을 종용하는 역할을 맡기는데 그 중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는 한 모델이 있었어요.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 잘하는 모델들 틈에서 유독 말 한마디 못하고

 오히려 손님들이 다가와서 알아서 시식하고 물어보는 희한한 장면이 연출되고 있더라는 거죠.
 그 모습이 너무 웃기고 인상 깊어서 저도 다가가서 시식하고는 몇 가지 물어보고 했는데

 이 모델분은 나레이터모델답지 않게 말하는 것도 너무 수줍어하고 얼굴 빨개지고...ㅎㅎ
 

 원래는 밤늦게까지 매장정리하고 맨마지막에 퇴근을 하지만

 그날은 죽어도 일찍 가야만 하는 일이 있다고 나레이터모델들 마치는 시각에 맞춰 출구에서 계속 기다렸어요.
 그분들이 우루루 몰려나와서 각자 집으로 가기도 하고 몇몇은 시내에서 놀기 위해 같이 택시 타고 가는데

 이 여성분만 외톨이처럼 혼자 버스를 기다리더라구요.

 그래서 용기를 내서

 "저..매장에서 일하는 OO인데, 남자친구 없죠? 저랑 사귀어보는 건 어때요? 저 정말 괜찮은 놈인데요..제발요...주절주절.." 하면서 울상을 지으니까 처음엔 깜짝 놀라더니

"아! 기억해요" 하면서 아는 척을 하시더라구요.

 그렇게 폰번호를 얻었어요. 저는 돈이 없어서 휴대폰도 없었구요.


 그래서 시식행사가 잡힐 때마다 우린 늘 보게 되었죠.

 그 친구는 일부러 마트 행사를 자원했구요. 일하기 편한 대신 페이가 적어요.
 그래도 제가 뼈 빠지게 일하는 것보다 나레이터모델분들이 더 많이 받으시더라구요.

 외부행사 나갈 때는 더 많이 받고..

 지명되면 거기서 더 받고..


 우린 너무 가난한 커플이라서

 남들 먹는 커피숍이나 스파게티점이나 피자헛에도 못갔어요.
 그리고 학비도 모아야 했고 집에도 보태야 했던 저보다는

 아무래도 돈을 좀더 받고 집안형편도 조금 나은 여자친구가 데이트비용을 거의 부담했구요. 저는 거지 중의 상거지, 개털 중의 상개털이었어요.

 집에서 쫓겨나면서 옷도 못가지고 나와서

 때 묻어도 티도 안나는 아래위로 군복을 구해서 입고 다녔거든요. 잠바도.

 막 입고 아무리 빨아도 티도 안나니까요.

 

 크리스마스 때는 길거리의 붕어빵이랑 군밤, 호도과자 섞은 게 우리의 만찬이었고 그걸로도 너무 행복해했어요.

 여중여고 앞 떡볶이도 우리의 주 메뉴였구요.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그런 거 우리한텐 사치였어요.

 다니다가 꽃바구니 버려진 게 눈에 띄면 주워서 기념일에 부직포와 솜을 사서 뽑기한 작은 인형과  ABC초콜렛이랑 칸쵸 같은 거 담아서 선물했구요. 화려한 케익과 포도주와 잔 두 개도 그림 그려서 앞에 두고 실제로는 초코파이랑 델몬트 병쥬스로 상상 속의 파티를 벌이며 즐거워하곤 했네요.


 저는 몰라도 여친이 착하고 키도 크고 단아한 인상이기 때문에 아마 길거리 고백도 받았을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한번도 그런 내색을 안해서 잘 몰라요.


 학교 다니면서도 과외도 하느라 만날 시간이 정말 없었어요.

 저는 휴대폰도 없어서 연락도 안되는 사람이었구요. 언제나 제가 연락을 했죠.

 

 한밤 중에 끝나서 언제나 공중전화로 잠깐 통화를 하고

 일요일에야 좀 시간을 갖고 만날 수 있었네요.

 (나중에 들었는데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여름에는 비 맞아가면서, 겨울에도 외부행사만 고집했대요. 찬바람 부는데도 짧은 치마에 배 드러나는 옷 입고 행사 했었대요. 돈 더 받아서 제 용돈 주고 제 학비 보태주려구요 ㅠㅠ 걔 친구들한테서 들었어요. 자외선과 대로변 자동차 매연과 먼지, 그리고 겨울바람에 얼마나 배가 아프고 피부가 깎였을까요..)


 학교 다니는 내내 여자친구한테 용돈을 얻어 살았어요.

 처음엔 안 받았는데 여친이

 "나랑 결혼할 생각 없어? 결혼할 생각 가지고 있다면 돈 받아. 내돈이 네돈이니까 부담갖지 마. 그리고 친구들한테 얻어먹지만 말고 가끔 사주기도 하고 인심 잃지 말구. 남자는 인맥이 재산이잖아."

 그 친구가 이렇게까지 얘기해서,

 나중에 결혼해서 다 갚을게 하고 용돈을 받아썼습니다. 걔네 집에서 반찬 다 갖다 먹었습니다. 언제는 쌀도 가져왔더군요. -_-

 

 그 전엔 기본반찬인 김치 살 돈은 물론이고 쌀 살 돈도 없었거든요. 정말 완벽한 거지였네요. 현금은 물론 계좌지급까지 모두 정지 당해서. 맨밥에 간장을 살짝 묻혀 짭짤하게 비벼먹는 게 매 끼니의 반복이었어요.

 

 라면 사먹을 돈도 없어서 마트에서 라면박스 옮기다가 충격 받아서 부서진 게 가끔 나오는데 그걸 100원 씩에 사서 국 대신으로 국물 먹곤 했던 기억이 있네요.

자장면과 짬뽕이 너무 먹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중국집 앞에서 냄새만 배부르게 맡고 발걸음을 돌리길 수십번.. 결국 상가에서 내놓은 그릇에 담긴 짬뽕국물을 마시면서 그 갈증을 달래기도했습니다.


 저희집이 잘 살 때 제 동생이 사귀던 여자가 정말 착했는데 가난한 집안의 딸이어서 어머니 반대로 헤어진 적이 있었는데,

 당시 저희집이 가난해서인지 제가 사귀는 여자에 대해 어머니는 별 말씀을 못하시더라구요.

 고졸에 집도 그냥 시장에서 장사하시는 집이라는 이유로

 예전 같았으면 결사반대 하셨을 어머니께서.. 


 그러다가 저희 아버지 사업이 다시 풀리기 시작해서 돈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집도 찾고 아버지 어머니도 각각 자가용 굴릴 정도로 어느 정도는 안정되었습니다.

 제 여친에게 그런 말은 꺼내지 않았구요. 아직도 그렇게 알고 있을 겁니다.

 그냥 그러고 싶었어요. 갑자기 돈 생겼다고 돈 쓰고 다니면 또 예전으로 돌아가버릴까봐 너무 무서웠거든요. 


 집에 빚이 너무 많아서 아마 나랑 결혼하면

 부모님 빚을 갚느라 40살 넘게까지 고생할 수도 있다 그러니 생각 잘하라고 해도 제 여친은,

 "세상에 죽으란 법은 없대. 좀 덜 먹고 덜 입고 아껴서 열심히 살며 조금씩 갚아가면 설마 죽을 때까지 못 갚겠어? 난 자기를 믿어. 내 걱정이라면 하지마. 미안한만큼 평생 나만 사랑해주면 될 것 같은데? "

 정말 감동했습니다.


 제가 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을 결심했을 때도, 나레이터모델 친구들이 다 말렸대요.

 술자리에서 저한테 직접 얘기까지 하더라구요.

 착한 희영이 배신하면 자기들이 가만히 안둔다고.
 걔 친구들이 다 말렸어요.

 유학가면 잘사는 여자들, 이쁘고 어린 애들도 수두룩할텐데 바보같은 너는 버려질 거라고.


 미국에 가서 어학코스를 끝내고 전략협상 분야를 공부했어요.

 쉽게 말해 Negotiator라고 하는데 협상전문가, 협상컨설턴트라고 이해하시면 돼요.

 한국과 미국이 무역과 시장개방 등의 문제로 FTA 할 때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라는 분이 한국측 수석대표로 주도하지 않았었나요? 그런 역할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또, 범죄현장에서 인질이 있을 때나 자살시도자가 있는 현장에 급파되어 일반경찰들이 현장 확보하고 SWAT 이 타격작전개시 하기 전에 쌍방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협상을 시도하는 역할을 하는 거죠.

 

 그리고 각국간 군병력, 화기 유지 및 연합훈련 등 각종 협의를 하는 자리에 동원되기도 하고, 혹은 대형그룹들 간의 딜과 기업인수합병을 위해서 고용되기도 해요.

 조금이라도 더 우위를 점해야 하고 유리한 포지션을 확보해서 우리쪽에 좀더 유리한 계약을 이끌어내기 위해서죠.

 우리 쪽에서 가장 강점으로 내세워 공격무기로 활용할 카드를 찾고, 상대 쪽의 약점을 찾아서 궁지로 몰아서 기를 꺾은 후 살 길을 터주는 식으로 며칠 동안 협상을 이어갑니다.

 상대도 손해보지 않은 듯 맞춰주는 동시에 우리의 요구조건을 최대한 사수해서 최대한의 소득을 이끌어내는 거죠.

 肉斬骨斷(육참골단), 捨小取大(사소취대)의 사자성어처럼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거죠. 군더더기 여러 조건들을 포용하는 대신 큰 덩어리 두 세 개를 가져오는 겁니다. 그 과정에선 20년, 30년 후의 국제정세와 종목에 따른 계산까지 합니다. 물론 상대측에서도 날고 기는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우리의 계획이 뭔지 알 수 없어야 하는 거구요. 국제관계에서 그때의 종속관계를 위해 몇 십년을 준비하기도 합니다.

 

 사안의 경중에 따라 양방간 상황과 입장에 대해 몇 달 전부터 고용되어 몇 달 동안 밤새며 공부도 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을 수 있구요, 계약금, 약속된 수고료 외에 성사될 경우 보너스도 받죠.

 성사율이 낮을 땐 지명도도 떨어지고 금액도 낮아지고 소질이 없는 사람은 자연히 도태될 수도 있는 직업입니다. 

 

 미국에서는 많긴 하지만 아직도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적어서 대우가 괜찮은 편이구요 한국에선 그런 전문양성과정이 없어서 아직 정부기관 및 대기업에서조차 인식이 미흡하고 금전적 대우도 미국만큼은 크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인식만 제대로 이해되고 필요성이 부각된다면 블루오션이 될 수도 있겠죠.

 국내엔 전문가가 너무 희귀하니까.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도 제 여친은 저희집이 아직 빚에 시달리며 힘들게 공부하는 줄 알아요.

 그래서 수시로 돈을 송금해와요. 그거 쓰지도 않고 꼬박꼬박 모아놨어요. 일부러 말은 안했구요. 

 

 저희집 수준 어느 정도 괜찮아지고 제가 미국에서 공부마칠 때가 되니까 저희집에 선이 많이 들어온대요. 소위 돈 많은 집안에서요.

 우리나라에 돈 많은 집안이 그렇게 많다는 거 처음 알았어요.

 대도시 버스운송회사 소유주도 계시고, 서울 강남역 앞에 대형빌딩 몇 채 소유하고 계시는 집안도 있고, 할아버지 때부터 장관, 국회의원 해오신 권력집안도 있고, 거기다 인물도 좋다더군요. 저는 아직 못봤지만. 

 미국에서 공부할 때도 유학생들 모임에서 그런 집안 친구들 많았어요.

 유학할 때 저도 몇 번 고백 받아봤어요. 다들 뭐하나 빠지지 않는 조건의 애들요.

 일본이나 유럽애들 같은 다른 외국애들한테도 몇 번 받아봤고..


 그런데 한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제가 거지일 때 아무것도 보지 않고 저 하나만 품어 준 그 여자를,

어떻게 제 상황이 좋아졌다고 배신을 하겠습니까.

 아직도 부유한 정도는 아니어서 유학생활 내내 일도 하고 돈 정말 아껴썼어요.

 기한 지난 폐기처분 전 바게트빵 싸게 사서 끓인 우유에 불려서 배채웠어요.

 레바논출신 애랑 우범지대 같은 곳에 방2칸짜리 렌트해서 돈 아끼며 지냈어요.

 겨울에 전기장판 하나로 버텼고 여름엔 주워 온 선풍기.

 먹을 거 없어서 쥐도 안와요. ㅎㅎ


 그런데 돈 많은 집안 애들이 비싼 옷 쇼핑하러 다니고 좋은 차 구입해서 놀러다니고 파티하고, 대기업 누구 딸, 어느 병원장 딸 이런 애들이 수두룩한데 걔네 중 몇몇이 호감 비치면서 따라다니면 님들은 어떨 것 같은가요?

 전유성씨 말씀대로,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편안해지는 거 한순간이예요. 


 그런데 그 여자들...

 제가 만약 죽을 병에 걸리거나 위험한 순간에 처한다면 저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까요?

 그 친구들에 대해선 몰라도 제 여친에 대해선 털끝만큼도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저는 딴맘을 먹을 수가 없었어요.
 오직 한국에 들어가든, 미국에 불러들이든 제 남은 인생 그녀를 위해 희생하려구요.

 그녀가 제게 모든 걸 주었듯 이젠 제가 그녀를 보호해주려구요.

 

 평생 한 여자만을 위해 살 겁니다.

 죽을 때까지 제 눈 속엔 그녀 밖에 없을 거예요.

 여자한텐 20대가 인생의 절반이라고 하죠?

 그 가장 아름답고 싱싱한 20대를 저를 위해 버린 여자입니다.

 억만금으로도 바꿀 수 없는 젊음을 저를 위해 버린 여자입니다.

 어느 누가 사랑하는 사람을 무려 5년이 훨씬 넘는 세월 동안 외국에 보내놓고 흔들리지 않고 믿고 기다려 줄 수 있을까요? ㅠㅠ 제가 유학 중에 좋은 배경 가진 여자 만나서 연락 끊고 다른 사람과 결혼할 수도 있는데 말이죠.

 제 심장을 누군가에게 꺼내 맡겨야 한다면 그녀에게 맡길 겁니다.

 죽을 위험에 처해도 저를 위해 희생할 여자라는 걸 확신하거든요.

 그래서 저도 기꺼이 그렇게 할 수 있어요. 

 

 그러고보니 참 신기하게도 우리는 한번도 싸워본 적이 없네요.
 첫번째 이유는, 그녀가 화를 낼 줄 모르는 착한 사람이어서입니다.
 제가 특별히 화나게 했던 기억도 없지만 다른 일에도 화를 내는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언젠가 집요하게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냥 단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자기를 괴롭히려고 일부러 그러진 않았을 것이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늘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그런 자신이 답답해서 제가 화나진 않았었냐고 되물었던 사람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제가 화를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제게 화를 내는 일이 있다면 그건 반드시 제게 잘못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그녀가 제 앞에서 제게 화를 내고 있다는 그 현실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고 안심할 것입니다.

 화를 내건 어떻건 일단은 제 앞에 있어줬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저는 감사할 것입니다.

 

 

 여러분..

 돈으로 할 수 있는 사랑이 가장 쉬운 사랑입니다.
 좋은 차 타고 다니고, 좋은 요리 먹으러 다니고, 좋은 옷 쇼핑하러 다니고, 비싼 선물 사주고, 기념일마다 몇 만원 하는 선물바구니와 이벤트 하는 거...
 돈만 있으면 어느 누구나 다 할 수 있습니다.
 해주고 싶은데 해 줄 수 없어서 눈물 흘리며 미안해 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진짜 당신을 위해 자기 수명도 떼어 팔 사람입니다.

 100을 가졌다면 100 모두 내어주고도 더 줄 수 없어서 미안해 하는 사람.
 그런 사람과 살 수 있다면 아마 당신은 평생 사랑받고 보호받으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희영아..
 나 약속 지켰다. 절대 유학 가서 다른 여자 내 가슴에 담지 않겠다고 너한테 맹세한 약속.
 그리고 앞으로도 지킬 거야. 


 나 너한테 붕어빵이랑 떡볶이랑 캔커피 밖에 못사주고 언제나 버스 타고 데이트 하고,

 너한테 FI*A 운동화 사주려고 했을 때 네가 매장에서 도망나가서 대로변의 잡브랜드 1만원짜리 운동화 골라 신고 나 만날 때마다 그것만 신고 나오고...

 나 정말 거지처럼 구질구질하게 살고 인생 막막했는데 네가 나 품어줘서 나 유학 갈 꿈도 가질 수 있었어.

 유학 갔다가 실패하고 돌아오게 되어도 비웃지 않고 기쁘게 환영해 줄 네가 있기 때문에, 언제나 난 돌아갈 곳이 있어서 용기를 낼 수 있었거든. 

 너 아니었으면 아마 꿈도 잃어버리고 한국에서 대학중퇴에 하루하루 생계형 일용직 노동자로 살고 있을지도 몰라. 
 앞으로도 내가 언제든 돌아갈 집 같은 네가 나한테 있기 때문에 나는 언제나 안심하고 시도할 거야. 

 

 

 네가 전에 보낸 편지에

 "자기가 너무 잘나버려서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더이상 없어. 어쩌지? 자기가 그렇게 커져가고 멋있게 변해가는 동안 난 7년 동안 더 늙었고 더 무식해졌고 더 초라해졌네..

 그런 자기 옆에 이런 내가 있다고 생각하면 나 자기한테 너무 미안해서 어떡하지? 그러니까..

 정말정말 나보다 더 자기 마음 안에 들어오는 여자를 찾게 되면 그때 나한테 꼭 말해줘.

 내가 봤을 때 좋은 여자면 안심하고 자기 보내 줄 수 있을 거야.

 난 괜찮으니까 자기는 자기가 더 멋지게 날 수 있는 그것만 생각해.

 대신 다음 생이 또 있다면 그땐 꼭 날 선택해줘야해.

 그땐 나도 부잣집에 똑똑한 여자로 태어나서 자기한테 어울릴만한 여자로 태어날 테니깐." 

 

 

 희영아..

 나.. 네가 보낸 그 편지 읽고 얼마나 울었는지 넌 모를거야.

 지금 이 글 쓰면서도 눈물이 흘러서 모니터가 안보여..

 내가 널 두고 어느 여잘 사랑할 수가 있겠어.. 

 너처럼 좋은 여자는 내가 천번을 다시 태어나도 아마 만날 수 없을 거야.

 네가 나한테 안어울릴까봐 걱정하는 거라면,

 나 내가 배운 공부 다 버리고 붕어빵장수 아저씨로 살 수도 있어.

 내가 익힌 것들 때문에 네가 힘들어하는 거라면 말이야.

 내가 죽어서 하나님 곁으로 갔을 때, 내 인생에 너를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고 딱 그것만 말씀드릴거야.
 내 인생의 모든 것은 너로 인해서 꽃 피울 수 있었으니까.

 

 내 어머니가 나를 낳으셨다면,

 지금의 나로 이렇게 키운 두번째 내 어미는 바로 너야.

 내게 아무 힘도 없을 때가 있었는데

 그 첫번째 시기에 내 부모가 나를 키우셨고,

 그 두번째 시기에 네가 나를 키웠어.

 

 일시귀국일지 영구귀국일지 아직 결정짓지 못했지만

 한국 돌아가면 그때 처음으로 무릎 꿇고 네게 청혼할게.

 

 우리..

 (미래의) 우리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사랑 지켜왔잖아.

 우리 애들이 컸을 때

 이 글을 보여줄거야.

 그리고..

 

 아빠가 엄마한테 이런 무한의 사랑을 받았다고,

 그때 이미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자였다고,

 엄마는 아무 것도 없는 아빠를 조건없이 품었고  

 그래서 아빠는 큰새가 될 수 있었다고,

 아빠가 할아버지할머니께 생명으로 진 빚이 있다면  

 엄마에겐 녹 슬어 버릴 뻔한 심장과 황폐해질 뻔한 영혼의 빚을 졌기 때문에

 아빠는 죽을 때까지 엄마에게 빚을 진 셈이라고,

 그래서 죽을 때까지, 죽어서도 영원히 빚을 갚는 심정으로 엄마를 사랑할 거라고.

 그게 내가 너희들보다 엄마를 더 아끼고 사랑하는 이유니까

 너희들이 이해하라고  

 그렇게 말을 할 거야.

 

 사랑한다.

 영원히..

 

 

 

...

이 세상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으랴.
그것은

평화요
안식이요
이 세상의 마지막이요
처음이다.


-정호승의 《연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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