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으는 요새의 탄생(B-17 Flying Fortress)

웰컴투두개골 작성일 06.02.28 01: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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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으는 요새의 탄생


1930년, 미국의 보잉(Boeing) 항공사는 민간 우편 항공기로 제작된 자체모델 200 항공기를 쌍발 엔진으로 업그레이드한 새로운 모델 214와 215 항공기(YB1-9, YB-9 Y는 evaluation 즉 시험기를 뜻하며 B는 Bomber 즉 폭격기를 뜻한다)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미군은 시험용으로 극히 소수의 YB-9만을 주문했고, 정작 정식 계약은 보잉사를 제쳐두고 글렌 마틴 항공사와 체결하고 만다. (글렌 마틴사가 만들어낸 새로운 쌍발 폭격기는 B-10이라는 명칭으로 약 130 대 가량이 주문 생산되었다)



사진1은 B-17의 모체가 되었던, 보잉 200 우편기의 모습이고, 사진2는 보잉사에게 찬물을 먹인 마틴사의 B-10 폭격기의 모습이다.



차세대 폭격기 발주를 따내기 위해, 혼신을 쏟았던 보잉사는 닭 쫓던 개 마냥 대실망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정신적인 충격뿐 아니라 설상가상으로 YB-9 폭격기 제작을 위해 쏟아 부었던 자금을 본전도 못찾고 그대로 날릴 위기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파산이라는 절대절명의 상황까지 몰렸는데, 이때 보잉사의 직원들은 스스로 발벗고 나섰고, 자신들의 임금을 줄여 회사의 경제적 도움을 주기위해, 2주간 근무, 2주간 비번을 감수하며 버텨나가기에 이른다. 그러던 1934년, 미육군 항공단이 차세대 폭격기의 새로운 요건을 발표하면서, 쓰러지기 직전의 보잉사는 다시한번 재기를 위한 절호의 기회를 잡게 된다.

당시 미육군 항공단의 차세대 폭격기 요건은 다음과 같다.


미공군의 차세대 폭격기의 요건

다발 엔진(multi engine)을 장착할 것
투하용 폭탄 적재량은 900 kg을 넘어야 한다
항속거리는 최소 1600 km에서 3540 km 사이일것
속도는 200 - 250 mph(322-402 kph)이상이어야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미군이 말한 다발 엔진이라는 것은 "한개 이상의 엔진"을 의미하는 것이었는데, 보잉사는 혁신적으로 4발 엔진 중폭격기를 계획하게 된다. 물론 속도나 적재량 등 요건을 만족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도 있지만, 미군의 요건을 자체적으로 과장되게 받아들인 점도 없지 않아 있는듯하다. 보잉사가 회사의 운명을 이 신형 폭격기 제작에 걸어야만 했으니, 그 어쩔수 없었는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가는 대목이기도 하다. 어쨌든 마침내 "B-17 날으는 요새"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보잉 자체 모델 299 항공기가 설계에 들어가게 된다. 이때가 1934년 6월 중순........



사진3:실질적인 B-17의 시작 Y1b-17기의 모습....


그런데 문제는 미육군이 경쟁사들에게 늦어도 1935년 8월까지는 원형기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단서 조항을 붙인것이다. 사실 단 1년만에, 그것도 4발엔진 대형 항공기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미육군이 못박은 1935년 8월 보다도 한달이 빠른 7월 중순, 씨에틀에 있는 보잉사의 격납고로부터 전혀 새로운 폭격기가 그 모습을 드러내며 활주로로 굴러 나왔다.

750 마력의 프래트 앤 휘트니 R-1690-E 호네트 라디얼 엔진( Pratt & Whitney R-1690-E Hornet radial engine) 4발을 주익에 줄줄이 단 위용찬 폭격기의 모습.... 무거운 엔진과 자체 중량을 견뎌내기 위해 동체 부착부 주익의 두께가 동체 지름의 절반에 육박하는 실로 어마어마한 날개를 단, 두꺼운 근육질의 어깨를 가진 거인과도 같았다. 초기 원형기는 승무원만도 8명에 달했고, 5정의 기관총으로 무장했으며, 동체내 폭탄창에는 2177 kg에 달하는 투하용 폭탄을 적재할 수 있었다.



사진4:B-17중 가장 잘 알려져 있고, 가장 많은 생산량을 기록한 G형의 모습


이날 미국의 언론은 일제히 "15 톤의 날으는 요새가 등장했다"며 대서특필했는데, 이것이 보잉사의 자체명칭인 모델 299라는 이름을 무색케 하며, 새로운 폭격기의 별명으로 자리매김해 버렸다. 여기서 재밌는 것은 우리가 흔히 B-17의 별명이 "플라잉 포트리스" 인 것이 B-17의 자체 방어력이 막강하기 때문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 처음 별명을 붙인 미언론의 "날으는 요새"의 의미는 "이 폭격기들이 적의 침입으로 부터 미국 해안을 막아낼 요새"라는 의미였다한다. 즉 이때만 해도 미국의 폭격기들의 주임무는 공격보다는 본토 방어에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훗날 유럽의 상공에서 제3 제국의 산업기반을 허물어 뜨리는 공격의 선두에 서게 될 운명을 타고난 폭격기였으니, 어쨌든 멋진 별명이며, B-17에 가강 잘 어울리는 애칭이라 하겠다.

보잉사 이외에 마틴 항공사의 Martin 146 폭격기와 더글라스 항공사의 DB-1 폭격기가 경쟁에 나섰지만, 이들은 모두 쌍발 폭격기였고, 일단 덩치에서 비교가 안되었고, B-17 옆에 나란히 서면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으며, 비행성능도 보잉 299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DB-1은 B-17에 비해 가격이 절반수준이었으므로, 나중에 미육군은 싼맛에 B-18이라는 명칭으로 130 여대를 사들인다) 1935년 7월 28일, 드디어 보잉 모델 299 폭격기가 첫 시험비행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3주후에는 시에틀에서 오하이오 라이트 비행기지까지 3380 km 논스톱 비행을 성공시켰고, 속도 역시 252 mph(406 kph)로 미군의 요구 조건을 무사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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