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의 날으는 요새들(B-17 A형, B형, C형)

웰컴투두개골 작성일 06.02.28 01: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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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의 날으는 요새들 (B-17 A형, B형, C형)


B-17 A

성공적인 원형기의 성능으로 미육군 항공단은 Y1B-17이라는 명칭으로 일단 13대를 주문하게 되는데, 750 마력이던 원형기의 엔진을 930 마력의 라이트(Wright) GR-1820-39 라디알 엔진으로 교체했고, 승무원수는 6명으로 줄어 들었다. Y1B-17기는 1936년 12월 초, 시험비행에 성공했고 1937년 1월과 8월사이에 미육군 항공단 제 2 폭격 비행단 (2nd Bombardment Group)에 배치되어 시범 운용되었다. 1938년 4월, 고공 운항 능력 향상을 위해 터보차저(turbocharger)를 탑재한 1000 마력의 라이트 GR-1829-51엔진으로 업그레이드한 Y1B-17A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사진1 : Y1b-17의 모습... 아직 수직미익과 후방동체가 상어 지느러미 같은 커다란 미익이 아니라서, 좀 생소해 보이지만, B-17의 초기형의 시발점이된 폭격기였다.


그럼 여기서 최초의 B-17기들의 재밌는 활약상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원래 미육군 항공단과 미해군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알력이 심했다. 미해안의 방어라는 하나의 목표를 두고 누가 더 잘났느니, 누가 더 확실히 적을 격퇴할 수 있냐느니하는 논쟁과 경쟁이 치열했다. 그런데 미국은 지리적으로 대서양과 태평양이 동서로 놓여져 있어, 전통적인 해군이 강세를 보인것은 당연했고, 신생 미육군 항공단은 이들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자신들의 역량을 보여줘야만 했다.


사진2 : 이탈리아의 렉스 여객선에 대해 모의 적 격퇴 시범을 보이는 B-17기들


그리고 그 시범 목표를 찾고 있던, 1938년 5월 12일...... 드디어 미육군 항공단 소속 B-17기 3대가 버지니아의 공군기지에서 이륙해 뉴욕시에서 동쪽으로 800 마일지점의 대서양을 항해 중이던 이탈리아의 여객선 렉스(Rex)호를 타겟으로 곧바로 날아갔다. 기상이 좋지 않아 고생은 했지만 이륙 4시간 후, B-17기들은 이 여객선을 발견했고, 여객선 상공을 3번이나 패쓰하며, 항공사진을 찍어댔다. 그리고는 다음날, 미국 해안선 방어는 함대의 몫이라고 떠드는 미해군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육군항공단의 가상적에대한 격퇴 시범은 대대적으로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B-17 B

얼마후 Y1B-17A와 대동소이한 후속 버전으로 B-17B형이 뒤를 이었는데, 1939년 6월, 39기가 제작되어 1940년 3월까지 미육군항공단에 보급되었다. B형은 외형적으로는 캔버스천 플랩을 금속제로 교체하고, 랜딩기어의 작동을 유압식으로 바꾸는 등, 몇가지 사소한 업그레이드만이 이루어졌다.


사진3 : 노던 폭격 조준기가 최초로 탑재된 B-17인 B-17B형의 모습....

그러나 B형을 주목해야하는 이유는 날으는 요새로서는 최초로 혁신적인 공격보조장치를 탑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노던 (Norden) 폭격 조준기로 알려진 이 장치는, 기존 조준경보다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장치로 폭격의 정확도를 높이는 결정적인 신무기라 할 수 있었다. 미군은 이 장치를 일급 비밀로 붙였는데, 임무가 없을 때는 아예 기체에서 떼어 냈다가, 임무 직전에 포장된 채로 기체까지 운반해 무장한 경비병이 경계를 하는 가운데, 장착했고, 임무 귀환 즉시 수거해 가곤 했다고 전해진다.



사진4 : 역시 B-17B형의 기수부분.
아직 G형의 전방 기관포탑이 없어, 전방 화력이 매우 취약한 편이었다.



B-17 C

B-17B형이 생산되는 동안에도 지속적인 업그레이드 연구가 계속되었고, 1200 마력으로 엔진(라이트-1820-65 엔진 탑재로 속도가 323 mph대에 이르렀다)의 파워를 올리고 무장도 5정에서 7정의 기관총으로 상향시킨 B-17C의 계획이 진행되어, 1940년 7월 시험비행에 들어갔다.


사진5 : B-17C형의 모습... 최초로 영국 공군에 공급된 B-17이었다.


당시 유럽은 이미 전쟁의 폭풍에 휘말린 뒤였고, 미국은 영국에 항공기를 공급하게 되었는데, B-17 중 최초로 영국공군에 인도된 버전이 이 B-17C형이었다. 영국은 B-17C형을 " Fortress I "이라는 명칭으로 부르며 영국 제 90 비행대에 20대를 보급하게 된다.(나중에 B-17E형이 Fortress IIA로, B-17F형이 Fortress II로, B-17G형이 Fortress III로 명명되어 영국에서 소수 쓰였다)

그리고 최초로 1941년 7월 8일 제 3제국에 대한 폭격임무에 참가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첫출전에 많은 기대와는 달리 B-17C형은 독일의 전투기들에게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말았다. 독일 Bf 109 E형과 F형들이 벌떼 같이 달라붙어 폭격기들이 큰 피해를 입었고, 일단 B-17들은 잠정적으로 유럽의 최전선에서 물러 나야만 했다.

한편 1941년 말에는 일본의 진주만 기습을 시작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는데, 유럽의 전황이 워낙 급박하게 벌어지고 있어, 미국은 일단 유럽 전선에 총력을 기울여 보급 우선 정책을 펴야만 했다. 이런 와중에 1941년부터 B-17D형이 출하되기 시작했는데, 문제점이던 방어력을 강화하기 위해 연료탱크에 자동봉입장치를 추가했고, 무장도 강화하면서 10명의 승무원 탑승위치 주위의 장갑판의 양도 늘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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