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시작된 미군 B-17들의 끈질긴 주간 폭격 - 상어 지느러미 수직미익의 날으는 요새들 B-17 E형, F형, G형 -
영국에서 운용되던 B-17들이 실패한 요인을 분석해, B-17에 대한 대대적인 재설계가 단행되었고, 드디어 1942년 7월부터는 새로운 B-17E형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E형은 고공에서 또 폭탄투하시 기체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수직미익의 크기를 대폭 늘여, 우리가 흔히 B-17하면 떠오르는 멋진 후방 동체와 수직미익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고, 자체 무장도 기관총 총 13정으로 강화했다. 이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무장의 변화는 후미 기관총이었다. 태평양전선과 영국의 경험에서 이 후미 기관총좌의 시야가 좋지 않아 후방 방어가 취약하다는 것이 밝혀졌던 것이다. 그래서 E형부터는 아예 테일 터렛(후미 기관포탑)을 설치해 버렸고 덕분에 후미쪽으로 동체의 길이가 약 1.6 m 가량 길어졌다.
사진1 : 이제 드디어, 수직 미익이 우리 눈에 익숙한 모습으로 변했다.... 미국에 의한 유럽 폭격을 시작한 B-17E형의 모습......
총 512대 생산 주문이 떨어졌고, 유럽 전선의 미 제 8 공군에 처음 보급되었다. 그리고 1942년 8월에는 영국의 스피트화이어기들의 엄호를 받으며 독일 점령하의 프랑스 철도 시설에 대한 실전 주간 폭격을 수행했다. 이때 18기의 B-17E 기들이 출진했고, 이들 중 "바보 양키"(Yankee Doodle)호에는 미국의 아이라 이커 (Ira Eaker) 장군이 탑승했었다고 전해진다. 이날의 폭격은 독일 공군 전투기가 출현하지 않아 별다른 피해없이 성공했다.
사진2 : 멤피스 벨호의 모습.... 이것도 역시 B-17F형이었다... 기수의 노즈아트가 멋들어진다. 그리고 킬 마크 처럼, 성공한 임무횟수를 그린 폭탄 그림도 멋지다.
E형의 후속모델인 B-17F 형은 1942년 5월 첫 시험 비행에 들어갔고, 이후 씨에틀에 있는 보잉 항공사에서 2300대가 생산되었으며, 더글라스와 록히드사에서도 라이센스를 받고 1100 여대를 생산해 내었다.
F형은 자체 중량과 적재량의 증가로 이를 받쳐내기 위한 랜딩기어를 강화하고 이중 브레이크 시스템을 갖추는 등등, 몇가지를 제외하면, 외형상 일견 E형과 큰 변화가 없는 듯하지만, 내부적으로 많은 개선이 이루어진 버전이었다. 대표적으로 주익의 바깥쪽에 새로운 연료탱크를 장착해 항속거리가 6800 km(4220 마일)에 달해, 일명 "도쿄 탱크(Tokyo tanks)"라고 불렸으며, 폭탄 적재량도 4.35 톤에 육박하기에 이르렀다. (후에는 9.4 톤까지 투하용 폭탄을 실어나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럴 경우 기동이 현격이 둔화되어, 특별한 임무를 제외하고는 이렇게까지 많이 적재하지는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