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개라 불리던 시절_신병훈련소_03

파리날리기 작성일 06.03.13 15:4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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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신체적인 욕구가 해결되어 갈 때 쯤...(오해하지 말기 바람. 응가임...ㅋㅋㅋ)
식욕이 내 몸을 지배하기 시작 했다.
이제 먹는대로 뽑아 낼 수 있으니 당연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밥먹고 뒤돌아 서면 또 배고프고,
또 그렇게 먹어대도 짭 시키고 나면 괜히 아쉽고,,,--;

신교대라는 것이 그렇듯 어디 내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나?
PX가 눈 앞이라도 갈 수 없는 처지인 것을....
당시 사단장 방침으로 해서(조교들의 말이지만,,,) 훈련병들의 PX출입은 엄격히 통제가 되었으며, 주 1회 정도 기간병들을 통한 간접적인 이용만 가능했다. 본인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훈병이 기간병을 통해 PX를 이용해?? 그러니 당나라지,,,” 하면서 부러움을 표시했었다,,, 다른 부대들도 그랬는지,,,ㅋㅋㅋ
(본인 친구들의 병역 분포를 보면 90% 쏘오올져, 10%쏠져(발음상 장단의 차이 이해가 가실런지,,,) 현역중 40%는 해병, 60%가 육군인데, 대체로 오뚜기, 백두산, 백골, 불무리, 칼사단 등 고생께나 한 넘들이 대부분이라, 본인은 군생활 어렵게 했다고 말도 못꺼낸다,,, -그래서 여기다 끼적대냐????)

잠시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진 듯한,,,,
어찌되었건, 식욕을 참기란 대단히 어려운 모양이다. 본인은 삼시세끼 무지하게 먹어대는 걸로 견디어 냈지만, 군대밥이 잘 안맞는 동기들은 모종의 모험(?)을 하기도 한다.

1. 라면자판기
신교대 안에 라면 자판기가 있었다,!!!!
물론 기간병들도 사용이 엄격히 제한 되어 있지만, 뭐 군대 자판기가 계급 보면서 라면 파는 것도 아니고, 주로 이동간에 빠른 스피드를 이용해 라면을 뽑는다. 물론 물은 붓지 않고(오밤중에 먹어야 함으로)
먹는 장소는 다양하나 주된 이용장소는 야외 화장실이였다. 이용도 뜸 할뿐더러 국물 처리나 냄새 위장에는 야외화장실이 제격이다. 옛날 푸세식 화장실 써본 사람이면 기억날 것이다. 그나마 여름 보다는 겨울이 낫다는 것을..ㅋㅋㅋ 하지만 모든 것에는 단점이 존재하는 법!!
야외, 겨울, 산~~~ 이쯤에서 짐작은 갈분들이 계실 것이다.(진짜 촌놈 이시군요.^^)
응가를 보면 겨울철 낮은 기온으로 이 응가들이 퍼지지 않고 차곡차곡 쌓여간다. 이렇게 쌓아 올려진 응가는 결국 엉덩이를 찌르며, 군바리 최대의 적 중에 하나인 치질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뭐 물론 그전에 대부분 산을 절개(?)하는 공사를 하기도 하지만, 재수 없이 걸리면 그 곳에서 밥상 삼아(?) 먹어야하는 불운이 따른다. 걸릴 확률은 극히 낮으나, 젓가락이 없어 간혹 나뭇가지로 먹어야 한다.

2. 빵
빵이라고 해서 거장한 것은 아니다, 신교대 2주차가 넘으면 취사지원이란 것을 나가게 된다. 취사병들의 오만가지 잡일을 도와주는 것인데 신교대 때 나름대로의 봄날이였다. 취사지원나가면 따뜻한 짭통과 찜통이 아닌 밥솥에서 한 밥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군대밥은 대량으로 하기 때문에 증기로 쪄서 만든다. 하지만 취사병들은 자기들이 먹을 밥은 꼭 밥솥에 짓는다. 질 낮은 쌀이라도 조리법에 따라 맛도 달라진다.(왜~~ 빵 얘기 하다가 밥 얘기를 하냐???)
당시 시범적으로 메뉴에 햄버거가 나왔는데, 모두들 싫어했다. 내용물도 부실했고, 취사병들도 이래저래 귀찮다는 명목으로 맛도 형편 없었기 때문이였다. 이런 고로 포장도 안 뜯기 햄버거빵을 버리기가 부지기수 였다. 취사지원나가서 이빵을 원 없이 먹었다. 물론 취사병들이 버린 쓰레기장에서 주워서,,ㅋㅋㅋ
뭐 어떠냐?? 포장도 안뜯긴거고, 버리자 마자 바로 가서 먹은 건데...(해병대 갔던 본인 친구도 이 빵을 먹으며, 눈물젖은 빵의 의미를 알겠노라 군사우편을 보내 온 적도 있다...)
아직도 이 햄버거빵이 나오나???

배고픔의 연속이고 육체적 한계를 경험하기도 했다.
매일 아침 구보후 약 200M(느낌상,,,--;) 오리걸음을 했다. 처음엔 조교들이 군기를 잡기 위해서 하는 줄 알고, 아침 구보 시 박자, 군가, 군기 이 모든걸 완벽히 했다. 그래도 늘 오리걸음... 아침의 활기보다는 고문의 연속이였다...
4,5주 차 였나 기억은 않나지만, 사단장(투스타)이 직접 훈련병들과 간담회를 하는 시간이 있다.
계급도 없는 군바리가, 사단 최고 지휘관과 만나는 것이다.
다른 건 생각이 안난다.
오리걸음의 진실.. 사단장 지시사항이였다.!!!
오리걸음이 정력에 매우 도움이 된다는,,,,(사실 그 장군님께서는 오리걸음을 하면 ㅈㅈ가 강해지지,,그래서 내가 일부러 시킨거야 라는 말씀을 하셨다.)
쓸데없는 걸 키워서 뭐하냐~~ 하지만 이 간담회 이후 오리걸음이 그렇게 싫지 만은 않았다는,,,ㅋㅋㅋ

조교들의 학대(?)를 견디고 마지막 고비인 행군을 마쳤다.
6주 훈련은 아마도 행군준비를 위한 준비 운동이였을 꺼다.
조교들은 이구동성으로 행군의 중요성과(보병이니까 당연한거 아냐??)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쓰~ 배낭(군장) 메고 총들고 걷는게 뭐가 힘들다고,,,--;)
군대에서의 첫 번째 오판이였다.
군장무게만도 40㎏ 정도 였고, 주특기는 104(지금은 뭐지?? 4자리수로 바뀐거 같은데..)라...
참고로 104는 기총으로 당시만도 그 유명한 M-60이였다. 쓰박, 람보는 한손으로 쏘던데.... 10.49㎏이다.(후에 자대에서는 삼각대에 예비총열 기타 장비까지,,,-빌어먹을 화기소대였다는,,,)
대략 10시간 정도 걸은 것 같으니까,, 시간당 십리(4㎞) 약 40㎞정도의 행군이였다. 평야지대인게 황송할 따름 이였다. 첩첩산중에서 근무한 나의 지인들이 존경스럽다....--;
부르튼 발바닥, 후들거리는 몸을 이끌고 처음으로 목욕다운 목욕을 했다.
어그적 어그적 몇일을 그랬는지,,^^

행군을 마지막으로 6주간의 훈련이 막을 내린다.
군대와서 총도 쏴보고
수류탄도 던져보고,
람보가 들고 다니던 M-60은 들어만 보고,,(사실 람보2에서 스타킹 아찌가 쏘던 건 M-60A1이였다. 총열에 손잡이가 달린,,,,)
행군이후에는 야간에 기간병들와 동초근무도 했다. 나름대로 순한(?) 놈을 만나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학교를 물어 보는데, 그 학교 출신이 언제가 왔었다고, 같이 동초근무 했다고 했다..누구지???

17사단. 예비사단이 아닌 전투사단으로 항간에 꿈의 51사 환상에 17사로 불리우며, 3군사령부 소속 최대의 선망의 부대.
하지만 전설에도 그 맹점은 있는법!!
환상의 17사 꿈의 000연대(해안근무 연대 임) 꼬인 00중대(군기 졸라 세다고 함) 다행인지 불행인지 본인은 고향에서 그리 멀지(?)않은 곳으로 자대를 배정 받았다.

6주 훈련이 끝나고 17사의 전설이 왜 생겨나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6주 훈련이후 3박4일간의 휴가~~~
믿기지가 않았다. 이제 훈련 마치고 자대 배치도 끝나지 않는 것들을 휴가를 주다니,,,푸하하하
의정부에서 밤마다 기도한 보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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