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5K 전투기의 탁월한 능력은 무장에서 나타난다. 폭탄과 미사일 등의 무장은 이 시리즈의 지난 편에서 말했던 군사작전의 요체인 ‘발견-결심-공격’ 가운데 ‘공격’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F-15K 전투기는 뛰어난 레이더와 레이저 탐색 추적 장치로 상대방을 먼저 발견할 수 있는 데다, 상대방보다 긴 사정거리에 높은 정밀도를 자랑하는 무장도 갖추고 있다. F-15K 전투기의 무장에 대해 말하다 보면 속된 말로 ‘때리고 부수는 이야기’가 자주 나와, 전쟁 반대와 평화를 염원하는 독자들은 얼굴을 찡그릴 수도 있다. 그러나 군 관계자들은 상대방을 언제든지 효과적으로 ‘한방’ 때릴 수 있는 무기가 있으면 상대방이 쉽게 도발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전쟁 억지력을 갖는 것이며, 그래서 평화유지에 보탬이 된다고 말한다. 상당히 역설적인 내용이다.
군 관계자들은 그 예로 해병대를 들고 있다. 한국 해병대 가운데 1개 사단은 경북 포항에 포진하고 있다. 이 사단은 전쟁이 발발하면 짐을 싸들고 어디론지 떠난다. 바로 상대방의 후방을 기습 공격한다는 것이다. 해병대는 이런 해병사단이 있기 때문에 북한군 5개 군단이 휴전선 지역에 전진 배치되지 못하고 그대로 후방에 고착돼 있다며, 해병대 1개 사단이 북한군 5개 군단 18만명을 감당하고 있는 셈이라고 어깨를 으쓱거린다. 해병대 장교들은 북한 지역의 도로에 놓여진 다리와 터널을 줄줄이 외우고 있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다. 마치 자신들의 영역인 것처럼.
미 해군 공대지 순항미사일(SLAM-ER)도 한국 공군 전투기에 장착
F-15K의 무장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슬램 이알(SLAM-ER, Stand-off Land Attack Missile-Extended Response)이다. 물론 미 공군 F-15E에는 장착돼 있지 않다. F-15K를 조종하는 이영수 소령(38)은 “미국 현지에서 F-15K 적응훈련을 받을 때, SLAM-ER은 미 교관 조종사들이 탐내던 장비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원래 SLAM-ER은 미 해군 장비다. 미 해군의 F/A-18 전폭기와 A-6E 공격기에 장착되던 미사일이다. 미군은 각 군별로 영역이 분명하기 때문에 ‘사전 허가’ 없이는 해군 장비가 공군 영역으로 넘어올 수 없다.
그렇다면 미 해군 미사일이 어떻게 하여 한국 공군 전투기에 장착되게 되었는가. 이는 차기전투기(F-X) 사업과 연관돼 있다.
당시 F-15K와 수주 경쟁을 벌이던 프랑스 라팔과 유럽 4개국 컨소시엄의 유러파이터는, 프랑스 이름으로는 스칼프(SCALP) EG, 영국 이름으로는 스톰 섀도 공대지 미사일을 한국쪽에 제안했다. 같은 미사일이지만 이름이 다른 이유는 이 미사일을 프랑스 Matra와 영국 BAe Dynamics가 공동 개발했기 때문이다. 이 미사일의 사정거리는 한국이 가입한 미사일기술 통제체제(MTCR)가 최대한 허용하는 300km에 육박하는 것이었다. 공군은 눈이 번쩍 띄였다. 이 미사일은 미국의 토마호크 미사일과 마찬가지로 원거리에서 발사돼 상대 레이더망을 피해 초저공으로 날아가는, 스텔스 성능을 갖춘 장거리 순항미사일이다. 이 미사일이 도입되면 공격가능 범위가 미사일 사정거리만큼 넓어지는 효과가 있다. 휴전선에서 평양까지 거리가 150km이니, 남쪽 영공에서 북쪽 중요 시설을 공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라팔은 1999년 4월 프랑스 카조 전투실험 기지에서 최초로 발사실험을 벌였다.
이에 F-15K의 제작사인 보잉은 이와 경쟁할 만한 공대지 순항미사일을 찾았고, 미 해군 SLAM-ER이 한국 공군에 넘어오게 된 것이다. SLAM-ER은 1997년 미 해군에 실전 배치된 최신형 미사일이다. 미군은 SLAM-ER보다 구형 버전인 SLAM을 1991년에 처음 실전 배치해 걸프전에 참가시켰다. 당시 걸프전에서 사정거리가 1000~2500㎞인 토마호크 미사일의 명성에 가려 SLAM은 배치 사실조차 일반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SLAM의 사정거리는 111㎞이고, SLAM-ER의 사정거리는 이보다 2배 이상 늘어난 280㎞로 알려져 있다. SLAM-ER은 미사일 동체 후반부에 부착된 2장의 평면 날개가 접혀진 채 전투기에 장착된다. 그러나 일단 발사되면 이 날개가 펴지면서 보다 먼 거리를 비행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설계돼 있다.
SLAM-ER이 토마호크 미사일보다 사정거리가 짧아 우려의 목소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공대지 공격의 방어무기인 지대공 미사일의 성능을 따져보면 기우다. 재래식 무장 수준이지만 세계적으로 방공망을 잘 갖췄다는 나라가 이라크였다. 1991년 걸프전 당시 이라크가 가졌던 방공무기 가운데 고고도를 담당하는 미사일은 제4차 중동전 당시 이집트가 이스라엘 공군을 당혹케 했던 SA-2 미사일이다. 그러나 이 미사일의 사정거리가 고도 30㎞까지, 사거리 30여㎞ 정도였다. 또 여기에는 약간 못미치지만 호크 SA-3 SA-6 미사일은 20㎞ 안팎의 유효사거리를 갖고 있었다. 따라서 SLAM-ER처럼 우수한 미사일은 이라크 대공미사일 사거리 밖에서 여유있게 공격을 할 수 있었다. 이라크는 85㎜ 대공포 700여문, 75㎜ 이하 대공포 400문 등으로 촘촘한 대공망을 구축했지만 다국적군의 대지공격 미사일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라크전 기간 이라크 방공망은 산발적인 대공포 사격과 저공 항공기에 대한 미사일 공격으로 항공기 37대만을 격추시켰다. 그러나 이라크가 보유한 엄청난 양의 대공무기와 다국적군이 모두 1만600회 출격을 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라크 방공전투력은 미미했다고 할 수 있다.
관성항법장치, 위성항법시스템 갖춘 하푼미사일
또 F-15K에는 공대지 미사일로 하푼(Harpoon) Ⅱ 미사일이 있다. 이 미사일은 1998년에 개발돼 2002년부터 작전 배치돼 있다. 미 공군의 F-15E는 이보다 한단계 낮은 하푼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하푼 Ⅱ 미사일은 하푼 미사일보다 사거리를 연장하고, 유도방식을 개선해 정확도를 높인 것이다. 하푼 미사일은 유도방식과 내부 컴퓨터의 제한으로 함정 공격만 가능했지만, 하푼 Ⅱ 미사일은 대함공격뿐만 아니라 항구 인근의 시설물 등 대지공격도 가능하다. SLAM-ER과 하푼 Ⅱ 미사일의 개발 원형은 하푼 미사일이다.
하푼 미사일은 1975년에 개발된 대함 미사일이다. 사거리가 90㎞이어서 최초로 수평선 너머 함정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로 당시에는 칭송을 받았다.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수평선은 바다에서 하나의 장애물로 여겨지며, 수평선 너머에 있는 함정 공격이 당시에는 숙제였다. 하푼 미사일은 이후 개량을 거듭했다. 1980년에 들어와 해면고도 3∼5미터를 유지하면서 바다 위를 스치듯이 비행(Sea Skimming)하는 기술이 추가됐다. 이어 1982년에 들어서 사거리도 124㎞로 연장됐다.
하푼 미사일은 영국-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전쟁에서 활약한 엑소세 미사일과 함께 대함 미사일로 명성을 날렸다. 1986년 미 해군 A-6 공격기는 리비아 시드라만에 있는 리비아 함정에 대해 하푼 미사일 5발을 발사해 리비아 전투함 2척을 격침했고, 1척에는 치명상을 안겼다.
그렇다면 이들 미사일은 어떻게 원거리에서 목표물을 찾아가는 것일까. 먼저 이들 미사일은 공통으로 관성항법장치(INS, Inertial Navigation System)와 인공위성을 이용한 위성항법시스템(GPS, Global Positioning System)을 갖추고 있다. INS는 민간 항공기와 선박에서도 볼 수 있다. 관성유도장치에는 미사일의 속도를 감지하는 가속도계, 방향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자이로 안정장치, 발사 이후의 시간을 계산하는 시계, 그리고 이들이 내놓은 정보를 종합하는 컴퓨터와 계산을 마친 컴퓨터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자동조종장치가 있다. 관성유도장치에 위치 정보를 입력해 두면 이들 미사일은 최대한 낮은 고도로 목표물을 향해 움직인다. GPS는 미사일의 위치를 보다 정확히 하기 위해 추가된 것이다.
그러나 목표물에 접근했을 때 목표물을 추적하는 방식은 다르다. 하푼 미사일은 자체 능동형 레이더를 작동시켜 목표물의 탐지 추적해 들어간다. 미사일이 알아서 목표물을 탐지하기 때문에 발사 항공기는 발사된 위치에서 벗어나도 된다. 하푼 Ⅱ 미사일은 보다 정교한 레이더를 갖고 있어서 간단한 해상 상황과 달리 보다 복잡한 지상 구조물과 지형도 읽어낼 수 있다. 이 때문에 하푼 미사일은 함정용에 국한되지만 하푼 Ⅱ 미사일은 대지공격도 가능하다.
그러나 하푼 미사일은 여기서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능동형 레이더 탐지 방식은 미사일 내부에 장착된 레이더를 가동해 목표물에 레이더파를 보내고 수신된 레이더를 따라 목표물을 향해 날아가는 방식이다. 발전된 기술로 여겨지지만 상대방이 날아온 레이더파를 산란시키거나 엉뚱한 레이더파로 잘못된 정보를 보내는 전자전 대응책(ECM, Electronic Counter Measure)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SLAM-ER에 적외선 영상 탐지기 장착…야간에도 목표물 적중
이에 따라 등장한 방식이 SLAM-ER에 장착된 적외선 영상(IR, Infra Red) 탐지기(Seeker)이다. SLAM-ER은 발사되면 사전에 입력된 좌표대로 운항하다가 목표물에 접근하면 IR Seeker를 작동시킨다. SLAM-ER이 탐지한 적외선 영상은 나중에 설명할 데이터 링크에 의해 조종사에게 전달된다. 이 시리즈의 지난 편에 소개했던 IRST 경우처럼 적외선은 레이더파와 달리 상대방에게 들킬 염려가 없다. 조종사는 이 영상을 보면서 주·야간을 가리지 않고 목표물을 정확히 명중시킬 수 있다.
또한 SLAM-ER의 탄두는 지하 벙커 등 콘크리트 구조물을 격파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콘크리트 구조물에도 견딜 수 있도록 티타늄으로 감싸져 있으며, 탄두가 콘크리크 구조물에 들어간 뒤 폭발하도록 지연 신관이 내장돼 있다. 콘크리트 관통력은 1m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