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5월 25일 15시30분, 미국 네바다 주 네이컨트리의 NTS 실험장에서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같은 해 3월 17일부터 주 1회 간격으로 수행된 ‘오퍼레이션 업샷 - 노트홀’ 프로젝트의 10주차 실험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이날 실험에서 폭발한 ‘그레블’ 원자폭탄의 폭발력은 겨우 15kt. 폭발 규모만으로 보자면 52년 11월 1일 에니위톡 환초에서 수행된 수소폭탄 실험 성공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초라한 결과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레블 원자폭탄이 항공기 투하나 탑에 고정된 것이 아닌 구경 280㎜ 포에서 발사된 것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질 것이다. 육군 포병대가 전술적 용도로 원자폭탄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전까지 원자폭탄은 적의 주요 도시에 투하하는 전략적 용도만 생각했지만 전선의 적 부대 같은 전술적 표적에도 핵무기 사용 범위를 넓힐 수 있게 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중(重)전차의 전선 출현은 방어자에게는 악몽 같은 일이었다. 보병부대가 동원할 수 있는 웬만한 대전차 전력은 고사하고 빈약한 방어력의 중(中)형 전차로는 중전차부대의 공세를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령 반경 0.5㎞, 면적 0.8㎢ 내의 전차중대 집결지를 155㎜ 야포로 일시에 제압하려면 약 13개 대대(234문)의 일제 사격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나마도 운에 따라 몇 대의 차량이 대파되기를 기대할 수 있을 뿐 주로 파편 효과가 발생하게 될 통상 포탄으로는 전차의 장갑을 뚫기가 어렵다. 때문에 전차 중대의 전력을 약화시킬 수는 있지만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포대가 10kt의 핵폭탄을 쓸 수 있다면 모든 전차와 차량·병력을 순식간에 궤멸시킬 수 있다. 다시 말해 핵 투발이 가능한 포가 몇 문 있다면 이론적으로는 군단급 공세의 핵심인 중전차대대조차 일차 방어선에서 막아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레블이 등장하면서 전술핵병기의 길이 열렸다. 그레블은 길이 1.38m, 직경 28㎝, 무게 360㎏ 포탄으로 구경 280㎜포에서 초속 627m의 속도로 발사돼 지상 160m에서 폭발, 15kt의 폭발력을 보였다.
비슷한 폭발력을 가졌던 히로시마의 원자폭탄 리틀보이가 길이 3m, 지름 71㎝, 무게 4.36톤이었음을 감안하면 그레블은 크기를 대폭 줄인 것이다. 기술적으로도 엄청난 발전을 이룬 것임과 동시에 육군도 전술적 판단에 의해 핵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는 점도 의미가 컸다. 그레블은 결국 ‘Mk.9’로 제식명이 부여되면서 정식 무기체계가 됐다. Mk.9의 등장은 동시에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이후 어네스트 존을 시작으로 수많은 전술 핵미사일이 등장했다.
또 무기 자체뿐만 아니라 전술과 편제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게 됐다. 핵전 상황에서는 부대를 대량으로 집결시키는 것은 핵무기에 공격받을 위험도를 높이게 된다. 반대로 적을 격파하기 위해서는 집중된 전투력의 투사가 필요하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생존한 부대만으로도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소형이면서도 강력하고 독립된 전투 능력을 가진 부대가 필요해졌다.
그 결과 58년 7월, 미 육군은 사단을 5개의 동등한 전투력을 가진 집단으로 재편한 펜토믹 편제를 도입했다. 육군의 재래식 장비에서 중전차가 사라지고 현대적 개념의 주력 전차(MBT)가 등장했으며, 해군도 대함거포주의의 산물인 전함을 일선에서 확실하게 퇴출시키고 항모 중심의 수상함대와 잠수함대로 전력을 재편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