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rc="http://www.dkbnews.com/img/2006/07/123/k/1.jpg" width=690 name=img_resize> ▲1948.9.13 항공부대는 정부수립 이후 최초로 L-4 연락기를 인수하여 우리 정비사들의 손으로 직접 조립을 완료하고 단기간의 비행훈련을 마친후 9월 15일 10대의 L-4 연락기로 서울상공을 비행했다.
공군웹진에서는 '사진으로 본 공군사'를 통해 아득한 해방 전후와 한국전쟁 당시 우리 공군의 모습을 보며 잊혀졌던 기억들을 반추해 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이 중에는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제5공군에서 근무한 플라르드-레오(Ainsley K.Fullard-Leo, 74)씨의 컬러사진도 일부 포함되어 있어 역사기록으로서의 가치를 한층 더하고 있습니다.
"사진속에는 현실이 있고, 때때로 더욱 현실적이다"라는 사진작가 알프레드 스티그리츠(Alfred Stieglitz)의 말처럼 시공을 초월한 빛바랜 사진 한 장은 우리에게 분명 큰 감명을 안겨 줄 것입니다.
src="http://www.dkbnews.com/img/2006/07/123/k/2.jpg" width=690 name=img_resize>▲여자항공대는 1949년 2월 15일 김포기지에서 창설해 초대 부대장에 이정희 중위가 보임되고 제1기생 15명이 입대하였다.
src="http://www.dkbnews.com/img/2006/07/123/k/3.jpg" name=img_resize>▲1949년 10월 1일 1,600명의 병력과 20대의 연락기로 육군에서 분리, 마침내 공군으로 독립하게 되었다.
src="http://www.dkbnews.com/img/2006/07/123/k/4.jpg" width=690 name=img_resize>▲1950년 6.25일 북한의 대대적 남침이 시작되고 오전 10시에 서울상공에는 적 전투기들이 나타났다. 급박한 상황에서도 카메라는 서울 상공에 나타난 2대의 적기를 셔터에 담아냈다.
src="http://www.dkbnews.com/img/2006/07/123/k/5.jpg" width=690 name=img_resize>▲낙동강 전선에서 후방차단작전을 위해 정찰비행을 하던 도중 적 지상포에 피탄된 L-4 연락기로 대전기지에 귀환한 박재호와 박문기 상사(1950.7.13)
src="http://www.dkbnews.com/img/2006/07/123/k/6.jpg" width=690 name=img_resize>▲재반격에 나선 대한민국. 서울재탈환을 눈앞에 두고 한강 남쪽둑에서 정찰을 하던 공군 정찰대원이 긴장되는 표정으로 카메라를 쳐다보고 있다.
src="http://www.dkbnews.com/img/2006/07/123/k/7.jpg" width=690 name=img_resize>▲1952년 8월 29일 UN군은 1,080대의 항공기로 평양 군사시설에 폭격을 감행한다. 일명 평양 대폭격작전. 이 작전에는 한국공군의 F-51 전폭기 36대가 참가했는데 사진은 출격 직전의 한국공군 f-51의 전폭기 이륙장면.
src="http://www.dkbnews.com/img/2006/07/123/k/8.jpg" name=img_resize>▲한국 공군 최초로 1952년 1월 11일100회 출격을 기록한 김두만 소령이 동료들로부터 축하를 받고있다.
src="http://www.dkbnews.com/img/2006/07/123/k/9.jpg" width=690 name=img_resize>▲한국군과 UN군은 10월 19일 평양에 입성, 승리를 눈앞에 두었지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역전되자 결국 비행단 주력을 제주도로 집결했다. 여의도 기지에서 서울에 있던 고아들을 제주도로 수송하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 모습. 단발의 소녀는 처음 보는 비행기가 마냥 신기한듯 하다.(1950.11.28)
src="http://www.dkbnews.com/img/2006/07/123/k/10.jpg" name=img_resize>▲하늘에서 바라본 강릉 비행단의 모습. 한국공군의 F-51 무스탕 전투기들이 정렬해 있다.
src="http://www.dkbnews.com/img/2006/07/123/k/11.jpg" width=690 name=img_resize>▲강릉비행단 활주로 바로 옆에 선 미 공군 관제사들. 저 너머로 항공기가 이륙하고 있다. 불필요한 접근을 금한다는 경고판과 출입 통제용 신호등이 보이지만 오늘날의 활주로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이륙모습이 신기한 듯, 부대를 돌아다니던 흰둥이 개 한마리도 활주로를 응시하고 있다.
src="http://www.dkbnews.com/img/2006/07/123/k/12.jpg" width=690 name=img_resize>▲100회 출격을 기념하며 자신의 애기(愛機)에 기념마크를 그려넣는 조종사. 지금과 비교하면 꽤나 낭만적인 모습으로 보인다.
src="http://www.dkbnews.com/img/2006/07/123/k/13.jpg" width=690 name=img_resize>▲미제6147전술항공통제 비행부대와 합동근무중인 모스키토 요원. 부대모토는 '몰래 날아가 따끔하게 쏘고 온다'가 아니었을까? 사진은 아마 홍보를 위한 것이었으로 짐작되는데 환한 미소를 띄고 있는 사진 속 인물들의 포즈가 다소 연출(?)스럽기 때문이다.
src="http://www.dkbnews.com/img/2006/07/123/k/14.jpg" width=690 name=img_resize>▲한국 공군 소방대 모습. 당시에는 임무 중 피격당하거나 기체 고장으로 불시착하는 사고가 많았기 때문에 소방차의 엔진은 언제나 식을 줄 몰랐다.
src="http://www.dkbnews.com/img/2006/07/123/k/15.jpg" name=img_resize>▲미공군 관제사 Fullard-Leo가 근무한 관제탑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