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8월 26일 오후 4시35분, 서해 연평도 24㎞ 상공. 갑자기 "꽝"하는 폭음과 함께 섬광이 번쩍여 아연 우리 군 관계자들을 긴장시켰다. 실상은 연평도 인근 지대공(地對空) 미사일기지에서 발사된 북한 SA-2 미사일이 폭발한 것. 이 미사일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쪽 24㎞ 고공에서 마하 3의 초고속으로 북한 지역을 정찰 중이던 미국 전략정찰기 SR-71을 격추시키기 위해 발사됐던 것으로 추정됐다.
▲ 미국 공군의 RC-135 전략 정찰기. 이번에 중국에 불시착한 EP-3E처럼 교신, 감청, 레이더 및 미사일 주파수 정보 수집 등을 주임무로 한다. 지난 98년 북한 대포동 1호 미사일이 발사됐을 때도 정보수집 임무를 수행했다.
SA-2 미사일은 지난 60년 구 소련 영공에서 정찰 중이던 U-2기를 격추, 미국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던 전력을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SA-2도 고공을 U-2기보다 훨씬 빨리 나는 SR-71 정찰기를 맞힐 수는 없었다.
이 SR-71 정찰기는 오키나와 카데나기지에 본부를 둔 미 전략공군사령부(SAC) 산하 제9 전략정찰단 소속이었다. 이 부대 소속 SR-71은 68년 4월부터 89년 11월까지 21년 동안 월평균 6차례 정도 한반도와 극동지역에 대한 정찰 비행을 했다.
한반도에 또 한번 군사적 위기를 가져올 뻔 했던 이 사건이나 4월 1일 발생한 미 해군 정찰기 EP-3E의 중국 불시착 사건처럼 세계 각국의 정찰활동 과정에서 생기는 위기 상황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각국의 정찰활동은 냉전 종식 후에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전쟁이 없어도 가상 적국 또는 경쟁국에 대한 정보 수집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정보 수집 활동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정찰기와 첩보위성이다. 정찰기 중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미국의 U-2기와 SR-71이다. U-2기는 1950년대 중반 개발됐지만 걸프전을 비롯, 현재도 미 전략 정찰의 핵심 무기로 활약하고 있다. 1960년 구 소련 상공에서 격추된 것을 비롯해 여러 차례 땅에 떨어지는 수모를 겪었지만 끊임없이 개량을 거듭, 지금도 건재하다.
구형 U-2기는 최대 200㎞ 떨어진 곳까지 촬영할 수 있었으나 최신형 U-2S는 적 후방 300여㎞ 지역까지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또 통신 감청과 전자정보 등 신호정보 수집범위는 500㎞를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형 U-2기의 고감도 광학카메라와 판독 장비는 17㎞ 상공에서 골프공에 씌여 있는 회사명까지 판독할 수 있을 정도였으나 신형 U-2기의 ‘시력’은 이보다 훨씬 더 향상됐다.
196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각각 개발된 U-2R과 TR-1은 ▲100㎞ 밖의 표적을 20×60㎞ 크기로 찍는 고고도 카메라 ▲140㎞ 떨어진 표적을 10×30㎞ 크기로 찍는 전자광학(EO)카메라 ▲210㎞ 떨어진 표적을 18×36㎞ 크기로 찍는 레이더 영상정찰 장비(ASARS-Ⅱ) 등을 장착, 전천후 정찰을 할 수 있었다.
U-2R은 길이가 18.9m인 데 비해 날개폭은 30m가 넘어 날개가 매우 긴 것이 특징이다. 조종사 한두 명만 탑승, 웬만한 대공미사일이 미치지 못하는 21~24㎞ 고공에서 정찰하지만 속도는 마하 0.8로 음속보다 느리다. 지금까지 약 80대가 생산됐으나 현재는 U-2R과 TR-1을 합쳐 50대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록히드(현 록히드 마틴)사의 저명한 항공기 설계자 켈리 존슨을 중심으로 한 ‘스컹크 웍스’팀 작품이다. ‘스컹크 웍스’팀은 U-2 외에 SR-71, F-104 전투기 등 걸작기를 많이 만들었다. 지금까지 U-2기의 활약상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1956년부터 1960년까지는 구 소련 영공을 누비며 군사력 배치 상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및 전략폭격기 개발과 배치 실태 등에 대해 방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1960년부터는 대만 조종사가 조종하는 U-2A기가 중국 원폭 실험지역 등 중국 영공에서 정찰활동을 벌였다. 1969년까지 계속된 중국 본토 정찰작전에서 모두 8대의 U-2A기가 격추됐다. 중국은 지금도 베이징(북경) 인민박물관에 당시 격추된 4대의 U-2기를 전시하고 있다.
U-2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도 결정적인 증거를 잡아내는 공을 세웠다. 1962년 10월 14일 U-2C기가 쿠바 영공을 통과하면서 소련이 쿠바에 제공한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기지를 촬영하는 데 성공한 것. 이 사진은 다음날 아침 케네디 대통령의 책상 위에 놓였고 이때부터 쿠바 미사일 위기가 시작됐다. 쿠바 미사일 위기 기간 동안 U-2는 82차례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으나 한 대가 쿠바 대공미사일에 의해 격추됐다. 베트남전과 중동전, 걸프전, 보스니아 사태 등 그 뒤의 주요 전쟁 및 분쟁 지역에서도 U-2기는 빠짐없이 모습을 나타냈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 군과 주한미군에게도 U-2기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다. 오산 미 공군기지에 배치된 U-2S 3대는 교대로 휴전선 인근 상공을 비행하면서 평양 이북 지역까지 북한군 무기나 시설, 훈련동향 등에 대한 사진을 찍거나 통신을 감청한다. 이들은 캘리포니아 빌기지에 본부를 둔 제9 전략정찰단 2파견대 소속으로 77년 이후 주둔해 왔다. 지난 99년 6월 연평해전 때도 북한 움직임을 감시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이 U-2기다.
지난 66년 1월 실전 배치됐다가 89년 퇴역한 SR-71은 ‘세계에서 가장 높이, 가장 빨리 비행한 군용기’라는 기록을 지금도 갖고 있다. 24㎞ 이상의 고공을 마하 3.3의 초고속으로 비행할 수 있는 군용기는 전투기와 정찰기를 통틀어 SR-71을 제외하곤 없기 때문이다. 음속의 3배가 넘는 고속으로 비행하기 때문에 기체 일부분은 570도가 넘게 뜨겁게 달궈져 동체 길이가 22㎝나 늘어나며, 착륙 후 30분 동안은 접근하지 못하게 돼 있었다.
길이 31m, 폭 17m에 무게는 30t에 달하며 공중 급유 없이 3250마일을 비행할 수 있었다. 공중 급유 횟수에 따라 최대 12시간까지 비행이 가능하다. 기체가 온통 검은색이어서 ‘블랙버드(Blackbird)’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광학카메라와 고감도 카메라를 장착, 90~120㎞ 떨어진 적 후방 지역을 시간당 15만5400㎢나 촬영할 수 있었다. 이론상으론 한시간 반이면 한반도 전체를 촬영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뛰어난 능력을 가진 SR-71이 진가를 발휘, 핵전쟁을 막은 일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3년 제4차 중동전 때 미국은 열세에 몰리던 이스라엘군이 핵탄두를 장착한 제리코 미사일의 사용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에 따라 캘리포니아 빌기지에서 SR-71기 한 대를 발진시켰다. 광학카메라, 적외선 스캐너, 전자정보 수집 장비를 갖춘 이 정찰기는 스페인 앞바다에서 한 차례 공중 급유를 받은 뒤 높은 고도로 제리코 미사일이 배치된 네게브사막 상공을 통과했다.
레이더로 SR-71의 접근을 감지한 이스라엘은 F-4 팬텀 2대를 긴급 발진, SR-71을 요격하려 했다. 하지만 지중해상의 미 항공모함 탑재 조기경보기 E-2C가 F-4 팬텀의 발진을 일찌감치 발견, SR-71에 미리 경고를 해줬고 SR-71은 F-4가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속도 및 고도로 내뺐다. SR-71이 찍어온 사진으로 이스라엘의 핵무기 사용 의지를 확인한 당시 닉슨 미국 대통령은 소련 브레즈네프 서기장과 핫라인을 사용,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미·소간 대규모 핵전쟁으로 발전될 우려가 있다며 이의 예방을 위한 직접 협상을 벌였다고 한다.
미 공군의 RC-135기는 이번에 중국에 불시착한 EP-3처럼 교신 감청, 레이더 및 미사일 주파수 정보 수집 등을 주임무로 하는 전략 정찰기. 임무에 따라 탑재 장비가 달라지고 명칭도 RC-135 M,S,U,V,W 등으로 구분된다. 미 해군의 EP-3에 비해 훨씬 크고, 성능도 강력한 첨단 장비를 많이 갖췄다.
지난 98년 8월 북한 대포동1호 미사일이 시험발사됐을 때 동해상을 맴돌며 주요 정보를 수집한 것이 이 RC-135다. 당시 오키나와 카데나기지에서 출동한 것은 ‘코브라 볼’이라 불리는 RC-135S형. 지상 기지에서 발사된 미사일에 송신되는 각종 전송자료를 도청하면서 항공기 창문을 통해 미사일 궤적까지 TV카메라로 촬영할 수 있다. 지난 83년 9월 사할린 근해에서 구 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추된 KAL 007의 항로를 한 시간 앞서 비행, 의혹을 자아냈던 미국 정찰기도 RC-135S다.
RC-135 V/W형은 ‘리벳 조인트’라는 별명을 갖고 있으며 적국의 교신, 레이더 주파수 정보 등을 수집한다. 한반도 상공에도 매달 여러차례 출현, 북한군 교신을 감청하거나 대공 레이더 및 미사일 주파수 등에 대한 엄청난 정보를 진공 청소기로 먼지를 빨아들이듯 ‘흡입’해간다.
미국은 이와 함께 신형 전략 미사일 탄도를 추적하는 EC-18, 300~400㎞ 떨어진 수백개의 지상 목표물을 탐지하는 E-8 ‘조인트 스타스’, 통신 감청을 하거나 텔레비전 방송 등을 이용해 심리전을 펴는 EC-130 등 다양한 정찰기들을 보유하고 있다.
▲ (위)프랑스의 C-160 가브리엘 정찰기. C-160 수송기를 개조한 것이다. (아래)러시아의 IL-20 정찰기. 미국의 RC-135와 비슷한 신호정보 수집 임무를 수행한다.
한때 미국과 자웅을 겨뤘던 러시아도 냉전 시절엔 많은 정찰기를 갖고 있었으나 90년대 이후 경제난으로 정찰기 전력이 크게 쇠퇴한 것으로 평가된다. TU-95 폭격기를 개조한 TU-95D는 해상초계와 함께 신호 정보 수집 임무를 띤 러시아의 대표적인 정찰기다. 일본 근해와 우리나라 동해상에 종종 출현, 한·일 양국의 전투기들을 긴급 발진하게 만들곤 했다. 러시아는 또 미국의 RC-135와 비슷한 신호 정보 수집 임무를 수행하는 IL-20을 비롯, TU-16 폭격기를 개조해 통신 감청 및 전자정보를 수집하는 TU-16 ‘배저D’ 수송기를 개조한 AN-12 등을 보유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와 함께 최고속도 마하 3으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전투기 MIG-25를 개조한 MIG-25R 등 전투기를 개조한 정찰기도 상당수 운용하고 있다.
유럽 각국도 미국보다는 크게 떨어지지만 몇몇 정찰기를 갖고 있다. 프랑스는 C-160 수송기와 DC-8 여객기를 각각 개조, 통신 감청 장비와 측방감시레이더(SLAR) 등을 탑재해 정찰기로 활용하고 있다. 미국의 P-3C와 비슷한 영국의 님로드 대잠(對潛)초계기는 신호 정보 수집기로도 활동 중이다.
●우리 군 정찰기 능력은 걸음마 수준
일본의 경우 이번에 중국에 불시착한 EP-3E와 유사한 EP-3 수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자체 개발한 C-1 수송기를 개조, 각종 전자정보 수집 장비를 탑재한 EC-1을 만들어 한국과 북한, 중국 등에 대한 신호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 군의 정찰기 능력은 그야말로 걸음마 수준이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항공기가 우리 군에 도입되기 시작한 ‘금강’ ‘백두’사업을 통해 독자적인 정보 수집 능력을 갖기 시작했다. U-2기처럼 영상 정보를 수집하는 ‘금강’은 휴전선에서 평양 인근 지역까지, 신호 정보를 수집하는 ‘백두’는 북한 전역을 탐지 범위에 넣는다. 종전에 우리 군이 갖고 있던 정찰기 중 가장 우수한 것은 휴전선에서 40~50㎞ 떨어진 북쪽 지역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RF-4C가 고작이었다. 한편 주한미군은 U-2외에 영상 정보를 수집하는 RC-7과 신호 정보 수집기인 RC-12 수대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세계 각국 중 미국은 가장 우수하고 다양한 정보수집 수단을 갖고 있으며 활동도 가장 활발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미군 정찰기들은 지난 50~69년 사이에만 20여차례나 구 소련, 중국, 월맹, 북한 등에 의해 격추되는 수난을 겪었다. 1969년 4월 14일 전자정찰기 EC-121 한 대가 동해상에서 북한 MIG-21기에 의해 격추, 승무원 31명 전원이 사망했으며, 56년 8월엔 P-4M이 중공 전투기에 요격돼 16명이 순직하기도 했다.
이런 위험 부담은 첨단 정보수집 장비 개발과 첩보위성의 발달에 따라 크게 줄어들었다. 특히 수백㎞ 상공에서 요격당할 위험 없이 24시간 적진을 감시할 수 있는 첩보위성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첩보전의 총아로 활약하고 있다.
‘열쇠구멍(keyhole)’이라는 별명을 가진 미국의 KH-11,12 사진 촬영 첩보위성은 130~900㎞ 고도의 궤도를 돌며 10~30㎝ 크기의 물체까지 식별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 영변 핵시설이나 대포동미사일 시험장, 영저동 등 지하 미사일기지 등에 대한 감시활동을 펴고 있는 것도 이 KH-11,12 첩보위성이다. 그러나 이들 위성은 구름이 끼어 있으면 제대로 촬영할 수 없는 한계를 갖고 있다.
미국은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레이더로 구름을 뚫고 사진을 찍는 ‘라크로스’라는 첩보위성을 운용하고 있으며, 무선 교신 및 전자파 도청 등 신호 정보를 수집하는 ‘매그넘’‘보텍스’‘점프시트’등 신호 정보 위성도 보유하고 있다. 또 초대형 적외선 감지기로 탄도미사일의 발사를 즉각 탐지할 수 있는 DSP 조기경보위성도 갖고 있다. 98년 8월 한·미 양국이 북한 대포동1호의 시험발사를 즉각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이 DSP 조기경보위성 덕택이었다.
*알림!! 위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합니다* 사진설명 1)그리스공군의 조기경보기 EMB-145 AEW & C 2)영국공군의 원격감시기 ASTOR 3)브라질공군 지상관측기 R-99B(EMB-145RS) 4)러시아 TU-16R(RM) Badger E 정찰기 5)독일해군의 대잠초계기 Br1150 Atlantique 6)요르단이 만든 SEEKER SB7L-360A JY-SEA 정찰기 7)캐나다공군 CP-140A Arcturus 초계정찰기 8)미국 CIA소속 개량형 U-2D Dragon Lady 9)심리전 병기 EC-130J Commander Solo 10)한국 해양수산부소속 해경의 수색 정찰기 CASA C-212-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