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소를 갓 나온 이진태(영화에서 따온 가명) 학도병은 포성과 총성으로 지난밤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종잡을 수 없었다.
연합군이 38선까지 전선을 회복했다지만 동부전선에서는 고지를 뺏고 뺏기는 탈환전이 되풀이되고 있었다. 한 달 전 중공군이 서울을 탈취하기 위해 펼친 1차 춘계 공세가 실패로 돌아가자 이번에는 동부전선을 탈환하기 위해 2차 춘계 공세에 나서며 며칠째 폭격을 쏟아붓고 있었다.
강원도 산악지역에 배치된 6개 한국군 사단을 괴멸해 미군을 고립시키면 서울 탈취가 쉬워질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이진태 학도병은 아군의 유일한 후방 통로였던 오마치(현 오미재) 고개를 중공군이 이날 점령했다는 불길한 소식도 들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무조건 이겨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만 맴돌 뿐이다.
"어머니, 꼭 살아서 돌아갈게요." 이진태는 입술을 깨물며 시계를 들여다본다. 오전 9시. 입학 기념으로 어머니가 사주신 시계다. 혹시나 깨질까 봐 안주머니 깊이 간직하며 잠시 어머니 얼굴을 떠올려 본다. 갑자기 '펑' 하며 옆 참호에서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중공군이 다시 반격을 시작했다.
함께 입대한 학우들이 바로 옆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훈련소에서 소총 한 자루와 몸에 맞지도 않는 군복을 지급받고 함께 동부전선에 배치된, 이젠 전우가 된 학우들이다. 이들 학도병은 군번을 받지 못해 신원을 확인해 줄 군번줄조차 없다.
'타, 타, 타, 타….' 포성에 뒤섞인 기관총 소리. 온갖 굉음이 뒤섞인 가운데서도 중대장 명령소리가 또렷하게 들린다. "사수하라. 중공군을 막아라." 이진태 학도병은 개미처럼 기어오르는 중공군을 향해 총을 겨냥했다.
그 순간 또다시 '펑'….
포탄 파편이 몸속을 파고드는 극심한 통증이 느껴진다. 그리곤 눈앞이 아뜩해지기 시작했다.
<유해 발굴 자료와 당시 사료를 참조해 기자가 재구성한 가상 이야기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