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1944년6월6일 프랑스의 노르망디 해안에서 감행된 인류역사상 가장 규모가 컷었던 지상최대의 상륙작전이었다.
미군은 오마하.유타비치,영국군은 골드,소오드비치,캐나다군은 주노비치에 상륙하였다.
상륙당일 2316대의 수송기와 연달아 꼬리를문 수많은 글라이더에 탑승된 병력이 독일군의 후방에 침투되었다.
1만3천대의 각종 항공기와 6000 척의 함선과, 7개사단의 방대한병력이 상륙에 성공했다.
7월2일까지 도합 병력100만명 물자는 57 만톤과 각종차량 17만량이 상륙하였다.
독일군의 거센저항에,초기연합군 사상자수는 8975명과 5만1796명의 부상자가 발생되었다.
독일군포로는 약4만1000명이잡혔으며. 연합군은 비로소 성공한 이작전으로 인하여 유럽해방의 교두보를 확보하였던 것이다.
연합군의 침공을 보고받은 롬멜원수는 그시각 아내의생일이라 후방에서 휴가를 보내고있었다.
부관인 카이텔은 이소식을 보고받고 히틀러가 잠이들어있어서, 깨우지는않았고 히틀러는 연합군의 상륙이 거의 끝나갈무렵쯤에, 보고를 받았었다.
한편으로 상륙작전을 개시하기전 고차원적이었던 연합군의 위장전술은 연합군의 더큰 희생을 줄이는작전으로 들어맞았다.
노르망디가 아닌 칼레를 공격하리라 믿었던 독일군의예측을 속였던것이 독일군의 대비공격을 막아 연합군희생자를 크게줄인,주효했던 일면이었던것이다
독일군은 부랴부랴 칼레방면에 배치시켰던 SS디트리히의 기갑부대를 빼돌려,노르망디로 급파시켰지만 때는 이미늦어 버린뒤였다.북아프리카에서 2년전 롬멜은 기다렸던 영국 몽고메리군의 총공세로 영국군에게 패퇴했다,
히틀러는 아프리카군단을 최후사령관 아르니므에게 맡기고,18개월간의 격무로 지친 롬멜원수를 만성간염에의한 건강악화로 독일로귀환시켰다,
히틀러는 롬멜의 건강이호전되자 다시 프랑스 해안방위사령관의 임무를 맡겼다,
롬멜은 서구권과 동구권의폴란드,러시아,우크라이나 포로등 모든노동력을 동원하여 대공사를 벌였다
연합군의 침공을 대비하여 견고한요새인 대구경포의 콘크리트 토치카와 수많은 대전차 바리케이트로 대서양의 벽을 설치했지만,연합군의 대대적인 함포사격과 공중폭격에 의한 대규모물량전 앞에서는 소용이없었다.
독일군은 제공권이 상실된상태라 콘크리트의 굳건한 건조물 들은 함포사격의 표적으로 인해 쓸모없는 돌덩어리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결과는 히틀러와의 견해차이에서 벌여졌던 롬멜의 예언이 맞았던것이다,
히틀러는 연합군을 내륙으로 끌어들여 패퇴시키자고 했었고, 롬멜은 상륙과 동시에 바로 해변격멸을,벌여야된다고 했던것이다.
나찌의 청년들은 모조리 동부전선으로 투입되어소련군과의 분전으로인해 이국땅에서 불귀의객이 되어 거의 사라져버린입장이었다.이러한 젊은남자인구의 부재에 독일은 해안수비병력을 둘수있는 독일내 청년인구가 바닥이 난 상태였다.
그리하여 별수없이 남아있었던 남자라면 10대초반의 소년부터 60대의 노인까지 동원시켰다,
또한 점령국가의 청년들을 징집하여 아무런 관련도없는 러시아의 총알받이 전위대가 되어야했었다.
즉 프랑스와 네덜란드.오스트리아, 발트해3국국가와,헝가리, 체코, 루마니아.이태리등 에서 징집되어 온 병사들은 독일군복을입고 영하40 도의 혹한인 러시아겨울전선에 투입되어 소련군을 상대로 필사적으로 살아남는전쟁을 벌여야했다.
반대로 독일군에게 잡혀온 포로들중, 그중에는 동부전선에서 항복하여 끌려온 러시아인들도 많았다,
이들은 독일군을 위해 싸우지는않고 곧 연합군들에게 항복해 버렸다.
그러나 이들은종전후 연합군의 협정에따라,소련군에게 넘겨져 본국으로끌려가 사형당하는 비참한최후를 맞이해야했다.
이중에는 중앙아시아와 몽고에서소련군에게 징집되어, 전선에 투입되자마자 독일군에게 포로가되어 끌려온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독일군수품공장에서 죽도록 사역당하며 노동력을 착취당했다.
2차대전 후반에는극심한 미군과 영국군의 집중폭격으로 곳곳의 군수품공장가동이 중단되자 곧바로 이들은 독일군복을 입고 일선에서 연합군의 총알받이가 된것이었다.
심지어 만주에서 흘러들어와 여러차례의 기구한 상황끝에 독일군복을 입게된 일본인도 있었다.
사진중의 한장면은 항복한 일본인과 연합군을 보고 미소짓는 러시아인 독일포로병사들을 볼수있다.
이러했던 인간사에 있어서 어쩔수없었던 장면은,한명의 독재자와 그의 추종세력이된 인종집단이 벌인 인류최대의전쟁으로 빚은비극이었다.또한 2차대전시에 볼수있었던 우월적 아리안인종주의를 내세워 타민족을 하등민족이라고 멸시했던, 독일이 막판에추구한 아이러니중의 하나라고 볼수있는 장면이었다.
2차대전을 일으킨 나찌독일의 비인간적인 단면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던것이다.
자료제공 : (주) 천년천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