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 저격수 카를로스 헤스콕 9부

슈퍼스탈리온 작성일 08.07.07 2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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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스콕은 50구경 기관총저격에서도 사격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미군은 한국전쟁에서도 M2중기관총에 스코프를 장착하여 장거리사격에 사용했었다.

 헤스콕은 논길을달려 도망가는 2명의 베트콩에게 기관총사격을가했다. 

베트콩은 자신들의 바로앞에 총탄이 떨어졌지만  계속 도주했다.

헤스콕은 위협사격을하여 그들이 멈춰 서도록하려했으나

결국 상관의 명령에따라 격발기 버턴을눌러 제거했다.

 

쌍안경으로 관측하던 중위하나가 아주 먼 거리에서 중국제 K-44소총을 든 병사를 발견했다.

헤스콕이 말했다.

 

" 뭘 발견했습니까?"

 

"한명이 보이는데 너무 멀어."

 

"내가 잡지요."

 

"어떻게 저 먼거리를 저격한단 말이오?"

 

헤스콕은 스코프를 겨냥하여 사격했다. 그 거리는 2250미터였다.

중위는 사람이 총에맞아 죽는 모습을 이날 처음 경험했다.

며칠 후, 헤스콕은 정글루트를따라 물자를운반하는 베트콩행렬을 목격했다.

해병저젹수들의 총격이 가해지자 양동이를 운반하던 할머니가 주저앉았다.

헤스콕은 양동이를 겨냥하여 한발을 발사했고 할머니는 그만 뒤로 넘어져 버렸다.

헤스콕은 낄낄 웃으며 기관총을 해체했다.
헤스콕은 베트남을 떠나는 날까지 자신의 임무를 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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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서내린 헤스콕은 자신을기다리고 있는 아내와 아들을 발견했다.

아들의 손을잡은 아내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헤스콕은 아내와 아들을 따뜻하게 포옹했다.

그는 수화물을 찾은다음 택시를타고 민간인으로서 새로운 생활을하게될

뉴 베른에 마련한 자신의 집으로향했다.

민간인이된 헤스콕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전기회사 직원으로서 일하게되었다.

그러나 8년간 몸담았던 해병대에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주말엔 가까운 캠프 리젼의 사격장을 배회하기도했다.

아내는남편이 전기기사라는직업을 좋아하지 않으며 현장에서 

매일매일 고생하는 것도알고 있었다.

그리고 특히 해병대를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당신은 이미 해병대에서 제대했어요. 이제 미련을 버려요."

아내의 말에 헤스콕은 신경질적으로 받아쳤다.

 

"나는 차라리 베트남에 있을 때가 더 안전했소.

동료가 전기에 감전되어 죽는 모습을봤어! 나는 이 직업이싫어."

 

"무엇이 당신을 힘들게해요? 당신은 다시 해병대로 돌아가려고 하는거예요?"

 

아내가 물었다.

 

헤스콕은 아들을 바라보며 잠시 침묵에 잠겼다가  아내에게 말했다.

 

" 여보. 왜 그것이 잘못인가?

다시 복귀하더라도 나는 사격선수이며 교관생활을 하게되는거야.

내가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 아니지 않소.

베트남에 가지 않겠다는 그것만은 꼭 약속하리다."



"카를로스, 나는 당신과 결혼할 때 결코 해병대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당신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였어요.

나는 당신이 행복하길 바래요.

당신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니까."

 

아내는 헤스콕이 해병대, 사격장이 없이는 결코 행복한 삶을 누리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재복무 신청서를 제출하여 이를 받아들인 해병대로 다시 돌아간 헤스콕은

해병대 사격팀과함께 국제 라이플 선수권대회에 참가하기위해

가족과함께 여름동안 버지니아의 콴티코 기지로 거처를옮겼다.

헤스콕은 1000야드 윈체스트 소총 사격과

400야드 M-14반자동 소총 사격을위해 훈련에 돌입하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1968년 멕시코에서 열리게되는  

올림픽 출전권을 따 내기위해 소 구경(22구경)사격경합을 벌이고있었다.

1967년 7월의 어느날,

집으로 돌아온 헤스콕은 아내에게서 한통의 편지를 건네받았다.

 

" 랜드 대위에게서 편지가 왔어요."


베트남을 떠난 이후 만나보지 못했던 상관이자 친구인

랜드 대위(현 소령)에게서 편지를 받은 헤스콕은 무척 반가워하였다.

그는 집으로들어가 아들을 껴안아 준 다음 안락의자에앉아 편지봉투를 뜯었다.

그때, TV에서 6시 뉴스가 막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는 편지를 탁자 위에 놓아두었다.

헤스콕은 베트남 전쟁 소식과 제1해병사단, 그리고 자신의 부대에관한 소식을

듣고자하여 매일마다 뉴스시간엔 어김없이 TV를 켜왔던 것이다.

잠시 후 헤스콕은 편지를 집어들었다.

 

"사랑하는헤스콕. 자네가 살아있음에 난 기쁘다네.

처음엔 해병대를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지금은 큰 팀을 이끌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네.

친구여. 자네는 그럴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네.

나는 자네가 잠시 군대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며 다시 해병대로 돌아와

있어줘서 나는 몹시 기뻐하고 있다네.

그리고 해병대는 자네를 필요로하고있어.

 

헤스콕,

한가지 나쁜 소식을 자네에게 알려주게되어서 유감스럽네.

얼마전 웨잇 소령으로부터 편지를받았는데

베트남의 저격학교와 저격활동들은 아주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소식이었네.

자네 파트너 버크 상병은 제3해병사단 제26해병연대 제1대대 본부중대 소속

스카우트 스나이퍼 소대로 배속되어 저격분대를 맡게되었는데

그는 이를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했다더군.

자넨 버크 상병을 아주 멋지게 교육했었던 모양이야.

그는 자네한테 배운대로 임무를 무척 잘 수행했다하네.

그런데 버크가 케산에서 그만 전사했다는 소식이네.

아주 용맹한 전투끝에 전사했다는 것외에 나는 아는 것이없다네.

버크는 자네만큼 내가좋아했던 해병 중 한사람이었네.

버크가 자네곁에 있어 든든했던 기억이나네.

지금 그를 생각하자니 너무 슬프네.

나보다는 자네의 아픔이 더 클 것이라 생각해.

그는 정말 좋은 해병이었어.

우리는 그를 그리워하게 될거야."

편지를읽던 헤스콕은 눈물을흘렸다.

방을나온 그는 뒷 마당을 거닐며 나무들 사이로 비치는 석양을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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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케산기지 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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죤 로날드 버크(John Roland Burke)상병

 

케산은 제1군단 지역의 라오스국경을따라 걸쳐진

비무장 지대의 바로 남쪽에 있었으며

제2의 디엔비엔 푸로 불리우는 전략요충 지역이었다.

죤 로날드 버크상병과 저격수들은 케산 외곽의

외딴 봉우리인 950고지에서 전진기지방어임무를

맡고 있었다.

 

1967년 6월 6일 밤8시. 병사들은 뜨겁고 불편한

벙커를벗어나 바깥에서 잠을 청했다.

얼마 후 엄폐호에서 야전 전화기의 호출음이들려왔다.

인접한 엄폐호에서 넣은 신호였다.

버크가 야전 전화기를 들었다.

 

"외곽 철조망에서 소리가났다. 거기에서 무엇이 보이는가?"

 

"아니 나는 아무것도 볼 수 없어."

 

주위를 둘러본 버크가 대답하자

 

"지금 적이 접근하고 있어. 분명해!" 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적이 부비츄랩의 인계철선을 절단하고 침입해들어오는것이 분명했다.

 

전화기를놓은 버크는 해병들을 깨우기시작했다.

다시 "따르륵 따르륵" 야전 전화기가 울어대자 버크가 그것을받았다.

 

"이봐! 지금 적이 철조망을 끊고 있어. 나는 지금 그모습을 보고 있어!"

 

버크는 다급한 야전 전화기 보고와 함께 친숙한 RPG-7 로켓 추진탄 비행소리도 들었다.

"피해!"

 

날아온 탄은 캠프의 중앙에서 폭발해 몇 명의 해병에게 부상을입혔다.

버크는 엄폐호에 화재가 발생하자 그것을 끄며

청음초들이 쏘아대는 M60 기관총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더 많은 로켓 추진탄들이 전진기지로 쏟아져들어왔다.

버크는 조명탄 발사를 요청했다.

 

"버크 상병입니다. 조명탄 발사를 요청합니다! "

 

근처의 해병이 소리질렀다.

 

"적이 철조망을 뚫고 공격하고있다!"

 

버크는 적을 공격하였고 방금 소리를외쳤던 해병이 수류탄에 맞아 부상을 당했다.

버크는 헤스콕에게 배웠던 그대로 행동했다.

크게 고함을 지르며 조심스럽게, 그리고 빠르게 아픔을 호소하는 해병에게로

달려가 그를 엄폐호 안으로 끌고갔다.

또 다른 추진탄이 터졌고 버커는 유산탄에 맞아 부상당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 부상당한 해병의 비명소리를들은 그는

그곳으로 달려가 다른 해병과함께 부상자를 엄폐호로 끌어들였다.

그 때 추진탄이 그의 바로 뒤에서 폭발하여 온몸에 부상을당했다.

청음초의 기관총 소리도 들리지않았다.

그들이 당한 것이 분명했다.

버크는 M-16자동소총과  10여발의 수류탄을 집어들었다.

부상당한 해병이 그 모습을보고는 "어떻게하려고?" 라며 놀라서 물었다.

평소 방어보다 공격적인걸 더 좋아했던 버크는

 

"여기에 이렇게있는걸 나는 별로 좋아하지않아."

 

라고 대답하고는 엄폐호를 뛰쳐나갔다.

온몸에 부상을당한 버크는 철조망으로 접근하여

자신들을 공격했던 적들에게 고함을지르며 사격을가했다.

이 공격에 놀란 적은 철조망에서 벗어나려다 버크의 총탄세례를 받았다.

 버크의 수류탄이 적에게로 날아가 작렬했다.

살아남은 적은 그대로 도망쳤지만 기지에는 밤새도록

로켓 추진탄의 공격이 계속되었고 중상을입었던 버크는 결국 전사하고말았다.

자신이 부상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동료해병을 구했던 버크,

격렬한 그의 고함소리는 해병들에게 용기를 사기를 북돋아주었다.

그리고 두번의 심각한 부상을 무릎쓴 채 적을 공격하여

더 많은 해병의 목숨을구하고 자신은 죽어갔다.

해병대는그의 영웅적 전투를 기리기위해 해군 십자훈장을 추서하였다.

1968년 4월 30일, 린든 죤슨 대통령은 해군장관에게 훈장수여를 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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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0고지

 

헤스콕의 가족은 1967년 여름부터 계속된 사격 때문에

거의 일주일에 한두번만 만날 수 있었다.

만약 자주보기를 원한다면 헤스콕과 함께 여행하여야했다.

헤스콕의 아내는 한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콴티코 기지의 이웃들과 주일예배를 드리면서

남편을 베트남에보낸 부인들보다는 자신이 행복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부상당하거나 시체가되어 헬리콥터에 실리는 병사들의 모습을

TV뉴스를 통해 자주보았던 그녀였다.

1969년 4월,  

헤스콕은 자신의 시보레 승용차로 동부 텍사스의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미국 총포협회가 주관하는 각주별 사격대회에 참가하기위하여

샌 안토니오로 달려가는 중이었다.

헤스콕은 샌 안토니오에서의 사격에 큰 기대를걸고 있었다.

만약 여기서 성적이좋으면 다음 주에 캠프 페리에서 개최되는

세계사격선수권에 참가할 수 있게되는 것이다.

헤스콕은 1965년의 윔블든 컵수상의영광을 1969년도에도 다시 재현하리라 확신하고있었다.

 

 

 

헤스콕의 집 전화벨이 울렸다.

그녀는 시계를 쳐다보며 샌 안토니오에 도착한 남편이 틀림없다 생각했다.

그녀는 전화를받으러 걸어가며 아들에게 말했다.

"얘야. 아빠한테서 전화가왔구나. 이제 샌 안토니오에 도착한 모양이구나."  

 

그녀는 전화를 들었다.

 

"여보. 나쁜 소식을 전해야겠어.

이번 주말에 사격에 참가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가게 생겼소."

 

"무슨 잘못된일이 생겼어요?"

 

"모르겠소. 바틀렛 상사가 내게 짐을풀지 말라고 하였소.

관티코 기지에서 급한 임무를 전달받으라는거요.

아무튼 나는 내일 바로 기지로 돌아가야하오."

 

그녀는 뭔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헤스콕. 무슨 임무죠?"

 

"나도 모르겠소. 나도 자세히 물어보지 못했오.

나는 내일 밤이나 늦어도 일요일 아침엔 집에 있게될거요.

그때 이야기합시다. 사랑하오."

전화는 끊겼다.

헤스콕이 명랑한 목소리로 말하였지만 그녀는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10편으로 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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