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훈련은 팀스피리트 훈련(한,미 합동 군사훈련)이 북한의 태클로 인해,
없어지고 나서 생긴 대체훈련이였다.
큰 규모의 군단급 훈련이였다. 기간도 무려 2주였다.
내가 군생활 할 당시에 가장 긴 시간의 훈련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장장 2주....정말 지겹다...ㅡㅜ
준비태세와 함께 독수리 훈련은 시작되었고,
훈련지는 경기도 여주와 이천 일대였다.
규모가 큰만큼 색다른 훈련 계획이 수립되 있었다.
그중에 우리 중대에 떨어진 훈련은 "단종훈련"
다들 기억나시나? 명지루 연못에 단종띠어놓고 졸라게 젓던 훈련...
물론 훈련하다가 우리 중대의 낮은(?) 전투력덕분에 타중대로 넘어가 버렸지만,
ㅋㅋ 암튼 훈련은 정말 열심히 했다.
60공트럭에 몸을 싫고 춘천댐을 지나 여주대교까지 장장 6시간이 걸리는 대장정이였다.
아마 훈련중에 강원도를 떠난 훈련은 독수리 훈련이 처음이자 마지막 훈련이였던거 같다.
가는 도중에 정말 쪽이 지대로 팔린 일이 있었다.
6시간을 가는 동안 생리현상을 해결할 방법이 없는거다.
군용트럭이 고속도로로 사람태우고 가는 것이 군법으로 금지되 있다는 사실을
난 제대후에 알게 되었다.
더군다나 군용트럭 운전수들이 얼마나 조심스럽게<?> 운전을 하는지
정말 말도 못하게 천천히 간다.
국도를 이용해, 천천히 가다보니 정말 마려우면 대략 난감하다. ㅋㅋ
춘천을 지났을 무렵이다.
갑자기 군용트럭이 길가에 정차를 하기 시작하는 거다.
그당시 연대가 움직이는 훈련이였으므로 60트럭의 행렬은 정말 길었다.
쭈~~~~욱 정차를 하더니....볼일을 보라는 거다...길거리에서
백주대낮에.... 다행이 사람이 없는 길이라 다행이였다.
생리현상을 해결하고 나니 갑자기 전투식량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난 그때 "볶음밥"을 처음 먹어봤다.
분홍색 쏘세지가 들어있는 기름기 줄줄 흐르는 따듯한 볶음밥을 처음 먹어봤다.
정말 기분 죽였다. 얼마나 맛있던지...아마 내 군생활의 처음이자 마지막
볶음밥이였을 듯 싶다. 물에 불려먹는 비빔밥은 먹어 봣어도..ㅋㅋㅋ
더군다나 유통기한이 6개월 이상남은 전투식량은 처음 먹어봤다.
아시리라 생각하지만, 전투식량도 식품인지라 방부제를 아무리쳐도 유통기한이 있다.
주둔지 생활을 할때는 유통기한이 하루나 이틀을 남은 전투식량이
아침이나 점심을 대신해서 나올 때가 있다.
한마디로 버리기 아까우니 먹어라...이거지...
차가운 전투식량 먹어봣나? 방부제 맛이 그냥 난다...
소화도 안되고...특히 물부어 먹는 전투식량은 잘 불려서 따듯할 때 먹으면
정말 맛있다...하지만, 뜨신물이 어딧나...미적지근한 물 부어서 먹을라치면
불지도 않아서 누룽지말린거에다가 물부어서 먹는 그런 맛이다. 한마디로 지랄같다.
배고프니 안먹을수도 없고,, 병장들은 대체로 안먹고 뽀글이를 애용했던걸로 기억한다.
ㅋㅋ 나도 그랫으니까...하지만 밥안되는 일,이등병이야 그럴수 잇나...
먹어야지...ㅋㅋㅋ
근데 이노무게 더 웃긴게...배속에 들어가서 뿐다는거다..
배속에 들어가서 점점 뿐다...밥을 먹고나서 배가 점점더 불러지는 경험 해봤나?
정말 신기하기도 하고 짜증나기도 한다...하여간 이상 야릇하다...ㅋㅋㅋ
하여간 볶음밥 전투식량은 맛잇엇다...그나마도 분량이 부족해서 이등병들은 아마 그때
흰밥이랑 팥밥이 들어있는 전투식량을 받았을 것이다.ㅋㅋ
오줌냄새가 진동하는 바로 옆에서 먹는 볶음밥은 안먹어 본사람은 모른다...ㅋㅋ
그렇게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여주에 도착했다.
우리 중대의 임무는 여주대교로 진입하는 적을 조기발견하고,
여주강을 도하하여 적진으로 진입하는 2군단 예하 제2기갑사단의 여주강 도하를
연막탄을 이용해 서포트하고, 도하를 위해 공병여단에서 부교를 설치할 수 있도록
경게지원을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여주에 도착하여 기억나는 것은 숙영지 편성이였다.
건설중인 고속도로로 진입하여 고속도로 주변에 있는 야산에 숙영지를 편성하기 시작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차도 한대 안다니는 고속도로는 정말 적막강산 이였다.
밥도 이름모를 산소 위에서 먹었다.
우리의 호프 규수는 정말 예의바른 넘이였다.
가정교육을 정말 잘 받아서 묘지위에 올라가는건 절대 안된다고 하면서
혼자 떨어져서 밥먹으려는 걸 억지로 끌고와서 같이 먹였던 기억이 난다. ㅋㅋ
정말 대단한 넘이다.ㅋㅋㅋ
하여간 그곳에서 우리는 이틀인가 삼일을 대기하고 여주대교로 향했다.
우리를 태운 60트럭 (여기서 우리란 11중대를 의미함) 여주대교 바로 앞에서 정차하더니
다 내리란다...그러더니 중대장의 지랄맞은 한마디...
" 여주대교를 뛰어서 건넌다 "
참고로 여주대교 가본사람?? 여주대교....정말 길다........
조낸 뛰었다...근데...뛰는데....정말 뿌듯했다..ㅋㅋ
사단 헌병대 콘보이 차량이 여주대교 진입 사거리 차량을 통제하고 대교 위에는 출근차량이
가득했다. 우리는 사단의 지시로 앞면 위장부터 시작해서 철저한 위장을 했고,
개인화기도 각개매어를 한상태였다.
민간인이 보고 있으니 어찌나 멋지게 보여야 하는지....
정말 일사분란하게 여주대교를 뛰어서 건너갔다.
차량안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오고 .... 단순한 우리들은 좋다고 희죽희죽 웃으면서 정말 열심히
뛰어갓다...ㅋㅋ
아시리라, 군인들은 군인들끼리 있으면 뽀대 안난다...
민간인들이 봤을때, 전투장비를 착용한 군인은 예비역인 내가봐도
쪼금 멋있따.
그런데.........정말..........여주대교 길다..............
뛰가는 죽는지 알았다....남단에서 북단으로 종단을 한 후,
우리는 인근 야산으로 들어가 병력을 정비했다.
근데....ㅋㅋㅋ 다들 숨 헐떡헐떡대고 디질라고 한다...ㅋㅋ
중대장도 죽을려고 하고, 우리 힘좋고 씩씩한 소대장들만 신났다..ㅋㅋ
민간인을 모를꺼다. 군인도 나름대로 가다 잡을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을...ㅋㅋㅋ
하여간 우여곡절끝에 여주대교 북단에 도착한 우리중대는 여주대교 인근 야산으로 들어가
숙영지를 편성했다.
그날밤 3군단 소속 제3기갑여단(적)이 여주대교 근처에 정찰활동을 한다는 정보가 입수됬다.
11중대 2소대는 여주강변에서 정찰활동을 하는 적을 발견하고,
첩보, 보고활동을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그리고 명일(내일) 도하를 위해 부교를 설치하는
공병들을 위해 강변주변에서 연막탄(페인트통만한)을 설치, 폭파하는 임무가 11중대에
하달됫다.
난 여주강병 폐선안에서 밤새도록 강 반대편을 보고 잇었다.
그당시 나와 같이 하던 사람이 누군지 지금은 기억이 잘 안난다.
하여간 그 안에서 몰래 추진해서 먹었던 컵라면은 정말이지 일품이였다.
밤이 세도록 아무일이 없어서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그때였다. 세벽이 어름프레 밝아오던 세벽 5시경,
강 건너편에서 "뚜르르르르르" 하는 굉음과 함께 전차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소리와 가루수 넘어로 언뜻 보이는 것은 적의 전차가 틀림 없었다.
적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P85K로 보고를 하고 우리는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중대에서는 그상태에서 대기명령을 지시했고,
잠시후, 우리의 뒷편에서 60트럭 6대가 도착했다. 그리곤 공병과 단종도하를 위한 부대가
내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하늘에서는 공격형 헬기였던 "코브라"헬기와 정찰용 헬기인
잠자리헬기(어떤 헬기인지 대충 알지?)가 애략 6대정도가 떠있었다. 드뎌 도하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소대장은 복귀 명령을 내렸고 강어귀까지 올라가니 11중대가 연막탄통을 분대마다 하나씩 들고
대기중이였다. 단종에 바람이 다들어가고 공병대가 부교를 깔기 시작하자
중대장은 연막통을 100m간격으로 설치하고 폭파명령을 기다리라고 했다.
졸라 무거운 연막통을 들고 100m간격으로 서는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외냐? 중대가 9개 분대가 있다.(소대본부 소대(포반)과 소대 본부분대(기관총분대)제외)
처음 설치하는 분대는 편하다. 근데 뒤로 가면 갈수혹 멀리 뛰어가야 된다.
마지막 분대는 거의 900m, 1km가까이 뛰어가야 한다. 얼마나 멀겠나...
또 연막통은 외그렇게 무거운지...에휴...
그렇게 설치를 하고 단체로 연막통은 폭파하라는 명령이 떨어졌고,
일체히 9개의 연막통은 폭파됬다.
연막통에서 나오는 연기는 여주강변을 가득채웠고,
우리중대는 또 뛰기 시작했다...ㅜㅜ 맨날 뛰어...달리 보병이겠느냐 만은....ㅋㅋ
근데 왼일인가...차량복귀란다......
차량에 올라탄 우리는 명성황후 생가 뒷편에 있는 야산에 숙영지를 편성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저녁 6시가 지났다.
원래 도착해 있어야 할 텐트 추진차량과 식사추진차량이 시간이 지나도 오지를 않는거다.
배는 고프고, 텐트설치를 위해 까놓은 땅은 점점 젓어가고, 정말 미치겟는거다.
점심때 나눠준 건빤 한봉지가 방독면가방안에 들어 있었지만,
꺼내기가 왼지 미안한거다. 그래도 어쩌누 배고픈걸...그걸 나눠 먹으면서
우리는 전우애를 다졋다. 물도 떨어지고, 배는 고프고,
어쩔수 없이 민가로 물추진을 보내기로 했다.
물추진을 내려간 동료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할머니 혼자 사시는 집에 간 동료가 말했다.
"할머니 물좀 떠 가겠습니다. "
"훈련 왔나부내? 어여떠가 저기 우물물 시원해 떠가."
"감사합니다. "
물을 뜨는 사이 할머니는 집으로 들어가셔서 손에 무언가를 들고 나오셨다.
"이거 볶은 고추장인데 가져다가 먹어. 우리 손자도 군인가서 손자생각이 나는구먼."
역시 우리나라는 인정이 살아있다. 나라지키는 일에 자부심과 보람이 드는 순간일 것이다.
결국 10시를 넘어서 식사차량과 텐트차량이 도착했고,
우리는 11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에 들수 있었다.
훈련을 종료하고 복귀하는 머리속에는 정말 많은 추억들이 함께 했다.
김선태의 개머리판 깨진일, 밥먹고 있는데 적의 군단장이 지나가는데
적이니가 쌩까라며 경례하지말라고 하던 부소대장님의 목소리, ㅋㅋ
판쵸우의 한장 걸어놓고 내리던 비를 피하며 나눠먹던 건빵 한봉지...
지금도 아릇하게 떠오르는 추억은 내가 살아가는 인생의 가장 큰 경험이였고,
다시한번 해봐도 좋을 법한 사람들과의 소중한 만남이였다.
행복하고 그리웠지만, 돌아가지 못하기에 더 애틋한 그시절을
함께 기억하고 있는 11중대 중대원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
- 끝 -
제 고참이 썻던글인데 재밌어서 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