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으로 훔친 기술.
- 쓰시마 해전의 시모세 화약
러일 전쟁
1905년 5월 28일 일본 해군은 대한 해협에서 멀리서 온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맞아 거의 완벽할 정도로 섬멸시켰다.
세계를 놀라게 한 일본 함대의 완벽한 승리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먼저 일본은 여순 함대와 황해 해전을 치루어서 포격전의
경험이 풍부 했었다
더해서 내부적인 포술의 인적 시스템의 우수함도 돋보였다.
수시로 내당포 사격을 실시해서 포수들의 기량을 측정하고는
명중률에 따라 甲乙丙으로 나누었다.
[내당포 사격이란 주포의 포신에 소총을 설치하여 배가 끄는
이동 표적을 쏘는 사격이다.전차의 축사포 사격과 비슷하다.]
이와 같이 선발된 우수 포수 일수록 갑급[甲級]은 전함의
주력 함대의 주포 포수로 썼다.
을급[乙級]은 다음으로 중요한 순양함의 포수로, 병급[丙級]은
구축함과 어뢰정의 포수로 쓰는 그런 배치를 한 것이다.
여기에 해전 전 조선의 진해만에서 수개월간 엄청나게 실시한
포수들의 내당포 사격 연습도 포격 명중률에 향상에 큰 역할을 했다.
일본 해군이 개발해낸 각 포의 임의 사격을 금지하고
전 함포를 함교의 포술장이 포격 지휘를 하는 집중 포격의
사격 지휘도 큰 역할을 했다.
중상을 입고 포로가 된 발틱 함대 사령관 로제스트벤스키
중상을 입고 포로가 된 발틱 함대 사령관 로제스트벤스키
이 일제 사격은 U 回頭후 일본 연합 함대 주력 전함들의 전 주포와 부포가
선두의 적 기함 수와로프에 집중했을 때
이미 발틱 함대의 운명이 결정 되었다고
봐야 했다.
단 한 번의 집중 포격으로 수와로프
함상이 농염한 연기로
휩싸일 정도로 대 화재가 발생했었다
그러나 이런 소프트적인 요소 외에 일본 해군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일본 함대의 시모세 화약이라는 포탄은 발틱 함대에 명중하면 엄청난
고열과 연기를 뿌려서 함상에 대 화재를 발생시켰다.
이 시모세 화약은 그 전 해 황해 해전부터 러시아 함대에
사용 되어 함상에 고열로 화재를 일으키는 마왕과 같은 역할을 헸다
일본 연합함대 기함- 미카사
시모세 화약을 쓰는 포탄은 철갑탄이 아니다.
그러나 맞으면 즉시 폭발하며 독한 냄새가 나는 연기를 뿌리며
주변을 고열로 태워 버리고 사람들을 죽였다.
그 견디기 힘든 고열의 화재는 나중에 나온 네이팜탄과
효과가 비슷했다.
물론 일본 함대가 살상력만 있던 시모세 탄만 보유했던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통상의 철갑탄도 사용했었다. 기록에 의하면 시모세 탄에
파괴되어 전투력을 상실한 러시아 함에게 다가가서 최후의 일격을
가할 때는 철갑탄을 발사했다.
민감한 신관은 포탄이 적함의 근처 바다에 떨어져도 그대로 수면에서
폭발하여 펄펄 끓는 물을 고열과 함께 함상으로 뿌려대 수병들에게
심한 화상을 주기도 했다.
시모세 화약의 원형은 원래 미국의 1880년대에 미국의
스테판 에먼스가 발명했다.
이것이 프랑스의 건너와서 더욱 세련되고 개발되어
브르게르 화약이 되었다.
프랑스는 이를 부인하고 자국인
Paul Ville이 1884년에 개발했다고 주장한다.
이 브르게르 화약이나 시모세 화약은 피크린 에시드를
주 원료로 사용했다.
화약의 위력을 알게된 일본의 산업 기술,아니 군사 기밀
절도 사건이 비밀리에 실행되었다.
일본의 기술 계통에 근무하던 한 해군 중좌가 손톱을 길게 기르고
프랑스의 연구소를 방문했다.
미리 연락한대로 다른 프로젝트로 온 듯이 위장한 그는 친해진
관계자에게 유창한 프랑스어로 너스레를 떨며 그 화약을
구경만 해보자고 요청을 했다.
보기만 한다는데 그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화학자는 병속에 든 소량의 화약을 보여주었다.
일본인은 그 화약을 테이블에 쏟고 손가락으로 헤쳐 보는 체 하면서
길게 자란 손톱 사이에 이 화약립을 최대한 끼워 넣었다.
다 끼워 넣은 그는 별 관심 없다는 듯이 화약을 병속에 담고
돌려주었다.
숙소에 돌아온 그는 정성스럽게 손톱 사이의 화약을 털어서 모았다.
그리고 소중히 보관하고 일본에 돌아와서 이를 시모세에게 넘겼다
시모세 마사치카
시모세는 절묘하게 훔쳐 온 소량의
절도품을 정밀히 분석해보고
그 성분을 알아내서 꼭 같은
복제품으로 만들어 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성능을 개선했다
일본 해군은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간다,
시모세와 일본 해군의 기술진은 연구의 방향을 그때까지 돌아가던
세계 해군 포탄 개발의 조류를 거꾸로 가는 결단을 내렸다.
즉 그 때 세계 추세는 어떻게 하면 포탄이 장갑을 조금이라도
더 두껍게 뚫고 들어가서 더 강하게 폭발하는 쪽이었었다.
그러나 일본만은 과감하게 포탄의 관통력을 전혀 무시했다.
단지 폭발하는 고열로서 함상의 엷은 구조물들만을 화재로 파괴하는
방향으로 개발 방향을 설정하였다.
그리고 포탄을 그런 쪽으로 개발해갔다.
포탄 껍질을 아주 얇게 만들었고 충격하자마자 폭발하는 예민한
이슈인[伊集院] 신관을 개발해서 부착했다.
뚫기 어려운 장갑보다 장갑이 얇은 함상 구조물의 인명살상과
화재 유도를 노리는 시류를 거꾸로 가는 도박은 앞에서 보시다시피
쓰시마 해전에서 대 성공을 했다.
연합함대 기함 미카사의 주포 - 미카사는 지금 보존 전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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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화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원체 비밀이 많은 일본이라서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았지만
쓰시마 해전 뒤 자기들이 가진 탄과 비슷한 화약이 대활약을
한 결과를 보고 이상하게 생각해서 자체 조사를 해보고
내막을 알게 된 프랑스가 떠들어서 소수의 관계자들에게만
알려져 왔었다.
여기에 대해서 일본은 침묵으로 일관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