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사고를당했던 하일랜드 대위(당시 중위)와 대원들은
헤스콕의 생일날 병실로 찾아와 케이크를 나눠먹었다.
하일랜드 대위는 명예훈장 추천서를 제출할 것이라했으나
헤스콕은 그상황에선 누구라도 자기처럼했을 것이라며 강하게 말렸다.
헤스콕이 그 뜻을 굽히지 않자 얼마 후 하일랜드는
개인적으로 만든 메달을 선물하였고, 헤스콕은 이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아내 조는 아들 헤스콕 3세의 5번 째맞은 생일을 축하하기위해
11월14일 금요일에 병원을 떠났다. 손자의 생일 며칠 후,
조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게되었다. 조는 이 사실을 헤스콕에게 알리지 않으려했으나
조의 여동생이 나중에 알게되면 헤스콕이 많이 실망하거라며 부르기를 권했다.
그날 오후 장모님의 사망소식을 접하게된 헤스콕은 집으로 일시 가게된다.
병원당국은 장모 상을당했으며 그동안 치료가 잘되어왔기 때문에 집으로 가는 것을
허가했고, 헤스콕은 12월30일에 병원으로 다시 돌아오게되어있었다.
1970년1월5일, 헤스콕은 중환자 실에서 회복실로 옮겨진 후 해병대로 복귀하게된다.
1월31일, 헤스콕은 해병대 라이플 사격팀의 일원으로서 콴티코 해병기지로 돌아갔다.
그러나 아무리 화상치료가 잘 되었다하지만 헤스콕은
사실 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의 망가진 몸으로는, 아무리 밴드로
사격쟈캣의 어깨를 감싼다한들 M-14 소총의 강한 반동을 이겨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헤스콕의 피부는 열과 추위또한 이겨낼 수 없었다.
피부가 햇빛에 노출되면 피부가 부서질 위험이 있었으며 상처가 덧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흰 장갑과 특별히 소매가 긴 셔츠를 착용해야했고
머리에는 항상 챙이 넓은 모자를 써야만 했다.
어떠한 경우에라도 햇빛에 피부를 절대 노출시켜서는 안되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오직 사격교관 뿐이었다.
병원에서 퇴원은 했지만 수 년동안 통원치료를 다녀야했으며, 의사는 화상들이
많이 호전되었다고 진단했지만 헤스콕은 여러가지 합병증을 가지고 있었다.
쉽게 지쳤으며 심한 어지러움증과 함께 근육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했다.
앉기도 힘들었고 걸음걸이는 몹시 부자유 스러웠다.
의사들은 화상의 후유증이라고 진단했을 뿐 다른 이상은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바깥 기온이 내려가면 심한 추위를, 온도가 올라가면 심한 열병을 앓는 것과도 같았다.
의사들은 헤스콕의 피부자체가 열에 견딜수 없고
땀을 조절하는 기능을 모두 잃어 버렸다고 말해주었다.
이것은 결코 회복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듣게되자 헤스콕은 자신에게 몹시 화가났다.
그러나, 몸은 망가졌으나 정신은 언제나처럼 강인했던 헤스콕 이었다.
해병 사격팀을 교육 중인 헤스콕(맨앞)
1972년2월13일,
헤스콕은 캠프 리젼에서 노스캐롤라이나 제2해병사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에서 그는 해병대 라이플 팀들의 사격 코치 중
가장 훌륭한 교관반열에 포함되는 명성을 얻게되었다.
그 어떤 팀들도 600, 1,000 야드 사격에서는 헤스콕 팀의 상대가 되질 못했다.
그러나 헤스콕은 웃음을 잃어 버린지 오래였다.
그는 사격을 하고싶었던 것이다.
시간이 갈 수록 어지러움 증상은 더 악화되었지만 그는 사격연습장에서 연습을 해왔다.
1973년10월, 워터게이트로 닉슨의 사임압력이 가해지고,
남 베트남군은 미국의 지원없이 스스로 북 베트남에 맞서 싸우고 있는 동안
헤스콕은 특무상사로서 맡은 바 임무들을 걸출하게 수행해냈다.
1975년5월, 헤스콕은 버지니아 해군병원에서 2개월 간 내과적인 테스트와 검진을 받았다.
8월5일에 나온 검진결과는 결코 좋지 못한 것이었다.
헤스콕은 다발성 경화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의사가 헤스콕에게 말했다.
"상사. 짧은 기간이지만 지금까지 당신을 죽 지켜보았소...
진단결과로 봐서는
아마도 해군 능력 평가관들이 당신에게 현역복무 부적격자로서
전역 판정을 내리게될 것같소."
"내가 내임무를 수행하지 못할것처럼 보입니까?"
"당신이 해병대의 편한 부서에서 근무한다면 몰라도...
아무튼 당신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야하고 휴식이 필요하오."
헤스콕에게 있어서 유일한 희망은 해병대 사격팀을 훈련시키는, 그것밖에 없었다.
"나는 내 일을하면서 필요할 때는 휴식을 취합니다."
"나로서는 어떻게할 도리가 없소. 헤스콕"
헤스콕은 의사에게 전화를 사용해도 되겠느냐고 묻고는 콴티코 기지의
사격과 훈련담당 지휘관인 챨스 레이놀드 중령에게 전화를 넣었다.
헤스콕은 병원에서의 진단결과와 의사의 소견을 모두 말한다음
"나를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 나는 해병대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나는 해병대를 떠나는 것을 결코 원치않습니다." 라고 말을 맺었다.
헤스콕의 말을 전해들은 레이놀드 중령은 확고하게 말했다.
"헤스콕, 우리는 언제나 당신을 원하오. 의사에게 그냥 서명하라고 말하시오.
확신하건데 당신은 2주 내에 다시 임무를 맡게될 것이오."
여름이가고 가을로 접어들었다.
콴티코 소총 사격장 주변의 나뭇잎들이 황금색으로 변해가는 가운데
헤스콕은 산들바람을 느끼며 각 사선을 둘러보고 있었다.
당시 헤스콕은 자신의 명확한 목표를 정해놓고 있었으며,
1976년 시즌을 준비하면서 자신은 다시 챔피언이 되리라 결심했던 것이다.
그는 다시 방아쇠를 당기기로 결심하였고 고통을 이기기 위하여 마취제를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물리치료도 병행하여 소총을 어깨에 잘 견착시킬 수가 있었다.
그는 300야드에서는 무척 잘 쏘았지만 600, 1,000야드 서서쏴 사격에는 실망하였다.
불편한 몸으로는 안정된 자세를 유지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있었던 해병들은 경외감을 느꼈다고 한다.
소총 개머리판의 정확한 견착과 사격 반동 때문에 피부가 찢어져
터져나온 피에 축축히 젖은 그의 사격 쟈캣과 셔츠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해병들은 사격 후 타겟을 확인하는 그의 흰장갑에서 선혈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해병들은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장비를 챙겨 사격하는
그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어느날, 데이비드 윌리스 소령이 사격연습 중인 헤스콕을 만나러 사격장을 방문하였다.
윌리스는 하사관인 헤스콕을 진정으로 존경했던 장교였다.
"나는 병원에 공문을 보냈습니다. 그들이 당신의 문제를
곧 처리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요. 자, 여기 그 사본이 있습니다."
윌리스 소령은 헤스콕의 어깨를 툭툭 쳐주고는 사본을 건네주고 떠났다.
그러나 이것은 해병대 내의 다양한
일들을 결코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는 저격술 및 사격장비 수리,
격발 방법, 훈련, 풍속 등등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지식을 소유하고있다.
3. 지식은 오랜 기간을 경험한 산물이다. 결코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
그는 여러 해를 몸바쳐 사격 프로그램 개발에 열중했다.
사격팀의 성공은 교관에게 달려있다.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훌륭한 교관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그 어떠한 특별한 대우도 원하지 않았다.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한 조언과 사격술에대한 도움을 얻기위해 항상 그를 찾았다.
그 때마다 그는 우리를 결코 실망시킨 적이 없다.
4. 전투 중 당한 육체적 손실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극복해내려 애쓰는 모습은
젊은 해병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귀감이된다.
5. 우리는 그가 현역으로 남아있기를 원하며,
사격 교관으로서 함께할 수 있게되기를 정중히 요청한다.
우리는 국가에 충성하는 그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결국 병원은 그의 부적합 판정에 서명하지 않았고, 이내 복무 적합 통고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몸의 상태를 주기적으로 검사받아야한다는 조건이 따라 붙었다.
그리고 신경학 전문의인 브랜넌 주니어 해군 대위가
헤스콕의 책임 군의관으로 자원 임명되었다.
하지만.......
다발성 경화증이 악화되지만 않았더라도
그는 해병 사격교관으로서의 원하던 행복을 더 많이 누렸을 터이다...
발신: 해병 사격교육대 / 작전 장교.
수신: 매릴랜드 베데스다
국립 해군 의료 센터.
상사 카를로스 헤스콕
429 74 6238/0369, USMC
1. 신체상의 결함에도 불구하고
헤스콕은 수 년동안 사격팀의
큰 도움이 되었다.
그는 언제나 훌륭하게 자신의
임무를 수행해 내었다.
2. 진단결과로 봐서는 특정한 일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그와 우리모두는 잘 알고 있다.
타인이 기념으로 소장하고있던 모신나강 저격소총을 들고있는 헤스콕.
감회가 새로웠을 것이다...헤스콕의 오른 손을 자세히 보십시오. 안타깝습니다
지금까지 해병 저격수 편을 끝까지 애독해주신... 우리 짱 밀리 가족분들 대단히 쌩유~~~ 합니다
음 다음엔 어떤 것을 씨리즈로 올려볼가요? 댓글 달아주시면 제가 엄선해서 올려 보도록 하겠습니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 이라고 했던가요? 창 밖으로 보이는 활주로엔 자욱한 한개와 빗줄기가 보이네요...
여러분들 아무리 세강살기가 조오까타고 해도 어딘가에 분명 환한 빛이 보일겁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겠지만
오늘보다 멋지고 기분좋은 내일이 있을것입니다..
건강하시고 감기조심 하세요 ^^
내일은 부대 회식이 있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