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설명 : 관산성 전투 후반기 주전장(主戰場)의 이동 : 굴산성 -> 관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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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산성 전투 직후의 백제와 신라 양진영의 분위기를 극화하여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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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 삼년산성 신라 최고 지휘자 회의
이사부 :
병부령으로서 이자리를 빌어서 여러 장졸들에게 치하를 드리는 바이오. 일찌기 없었던 최대의 국난을 맞아 목숨을 내던지는 우리 신라군의 용맹함에 대왕마마조차 마음을 가누지 못한다 하오이다. 이제 백제군의 예봉은 꺽은것 같고 이제 국면을 전환하고 반격을 해야 할 시점이라 사료되오. 기탄없이 말해주기 바라오.
거칠부 :
신 거칠부 아뢰옵니다. 지금 백제군은 병력보충이 안된다는 첩보를 입수했사옵니다. 장기전화 되면서 병력을 차출한 백제귀족세력은 조속히 전쟁을 끝내고 휘하 병졸을 되돌려 주길 원하고 있다 하옵니다.
이사부 : 이제 봄이 다가오니까 농사지을 인력이 필요한 모양이외다.
거칠부 : 저도 그렇게 생각하옵니다.
이사부 : 백제 성왕을 맞아 싸우던 각간 우덕과 이찬탐지는 어찌 되었는가?
거칠부 : 아뢰기 황송하오나 모두 전사했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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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나레이터 : 실제 삼국사기 기록을 살펴보면 진흥왕 15년 기록은 이렇습니다.
백제 왕 명농(明?)이 가량과 함께 관산성에 쳐들어왔다.
군주인 각간 우덕(于德)과 이찬 탐지(耽知)등이 맞서 싸웠으나 불리하였다.
여기서 백제왕 명농은 바로 백제 성왕을 말합니다. 삼국사기 기록을 보면 관산성 초기 전투당시 관산성, 즉 옥천일대의 군주(軍主)는 각간 우덕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각간이라는 벼슬은 신라 6두품 벼슬중 최고 관직을 말하고 이찬은 각간 바로 다음의 관등입니다. 즉 당시 옥천지역 일대를 관장하는 군사령관이 우덕이라는 말인데 삼국사기에선 "불리하다"고만 설명하였지만 그 후 각간 우덕과 이찬 탐지에 대한 기록은 그 어디에서도 찿을 수 없고 전쟁 진행과정상 전사하였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백제와 신라가 격전을 치뤘던 굴산성이 있는 옥천군 청성면엔 지금도 장군무덤이라고 전해 내려오는 곳이 있는데 어쩌면 각간 우덕과 그 당시 신라군 전사자를 수습하여 합장한 무덤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역사의 상상일까요?
아무튼 가야와 왜까지 동원한 백제의 주력 3만은 신라의 방어선인 보청천을 사이에 두고 굴산성전투에서 발이 묶이게 됩니다. 급기야 백제군은 수세로 몰리게 됩니다. 그 상황을 계속 극화하여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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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부 : ( 지긋이 감은 눈에서 눈물이 한줄기 흐른다 )
거칠부 : 시신은 잘 수습해서 좋은곳에 장례는 치뤘사옵니다.
이사부 :
이제 우리 장졸에 대한 복수를 할 때가 왔소이다. 여러 장수 모두 지금보다 배가 하여 전투에 임해야 할 것이오.
거칠부 :
상주방면군은 백제편에선 대가야군을 추격하여 섬멸하라 지시하엿사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신라군이 숫적으로는 열세라서 병력 보충이 시급하옵니다.
이사부 : 지금까지 총동원력을 내려서 남아 있는 사람이라곤 늙거나 다친 사람외엔 없다는 것 모르오?
거칠부 : 신주의 김무력군이 있지 않사옵니까?
이사부 :
(아차 하는 마음에) 신주 김무력이라 하면 작년에 신주에 군주로 임명된 자 말 아니오?
대왕마마가 직접 임명한 곳인데 게다가 고구려가 만에 하나 넘어오기라도 한다면 어찌하겟소?
거칠부 ; 고구려는 걱정 안하셔도 괜찮사옵니다. 지금 그들은 자신들 코가 석자라서 이곳엔 신경쓸 겨를이 없사옵니다.
이사부 : (한 창 생각에 잠긴다) 으음.. 김무력이라... 가야출신인데...
거칠부 :
그러니까 이참에 충성도도 시험해 볼 겸 여러가지가 좋습니다. 김무력이 내려오면 백제의 뒤를 공격할 수 있사옵니다.
이사부 : 그렇긴 한데... 그래도 뭔가 좀 부족하단 느낌을 지울 수 없소이다. (뜸을 들이다가) 요즘 성왕의 근황은
아는바가 있소이까?
거칠부 : 길동현(핏골)에서 우리 신라군에 패퇴하고 물러난 후 금산과 추부에서 병력을 추스리고 있다고 들었사옵니다.
이사부 : (눈을 반짝이며) 허면... 백제태자 여창과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는 아시오? 본시 백제군은 두갈래로 공격해 왔는데 지금은 백제왕과 태자의 부대가 하나로 합치었는지 아니면 분리 되어 있는지 알고 있는가?
거칠부 :
아직 완전히 합지지 않은 것으로 아옵니다. 태자 여창은 고리산에 진을 치고 있고 백제왕은 우리신라군에 밀린 이후 금산에서 마전으로 이어지는 군영에 진을 치고 있다 하옵니다.
이사부 :
그렇다면 태자의 백제군과 백제왕이 이끄는 백제군이 서로 합치지 못하게끔 길을 차단하시오. 그리고 신주의 김무력군의 이동에 대해서는 대왕마마의 윤허를 얻은 후이 지시토록 할것이오. 무엇보다도 백제왕과 태자의 양군이 합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급선무요. 명심토록 하오.
거칠부 :
명심토록 하겠사옵니다. 삼년산군에서 가장 날쌘 기병을 추려서 길목을 차단토록 즉시 시행하겠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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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사진은 관산성위치에서 바라본 백제 진영의 사진이다. 아마도 관산성에 주둔하고 있던 신라군은 바로 이런 백제의 전선을 주시하면서 전쟁에 임했을 것이다.
사진 설명 : 신라 관산성에서 본 백제군 산성의 전경 파노라마
1번은 태자 여창이 진을 치고 있는 고리산성(환산) 2번은 성왕이 참수된 구진베루 3번은 백제의 보급기지역할을 한 식장산 줄기
다음사진은 신라군과 마주하고 있는 백제진영에서 보는 신라진영의 모습이다. 산성의 높이로 본다면 백제진영의 환산성이 신라의 관산성을 내려다 보고 있는 형세이다
사진설명 : 그림설명 : 백제진영의 이백리산성에서 본 신라 진영이다. 관산성등 신라의 보루산성등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장면 2 : 백제의 태자 여창의 군영 (백제 군사들의 넋두리 소리)
백제병사 1 : 우라지게 날씨도 덥네 지난 겨울에 시작한 전쟁이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으니 미치고 환장하것네
백제병사 2 : 이넘아 그런소리 말어. 죽지 않고 아직 살아있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지 무슨 군소리가 많아?
백제병사 3 : 제길 죽는게 더 낫것어 이거 사람이 할 짓이 못돼
백제병사 2 ; 이사람아. 죽으면 처자식은 어쩔려구 그래? 고향에 있는 처자식 생각해 봐.
백제병사 1 ; 그러게 내가 미치고 환장하것다고 하는거 아녀? 장가들고 3개월만에 여길 끌려 왔다니까
백제병사 3 : 허긴 나도 마누라가 만삭인거 보고 왔는데 그거 생각하면 ( 고개를 돌린다 )
백제병사 2 : 젠장 야밤에 도망이라도 갈까.
백제병사 1 : 쉬잇. 누가 듣것어.
백제병사 2 : 들으라지 뭐. 이판사판인데 뭐가 무서워. 이래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 한가지 아녀?
백제병사 3 : 허긴 . 가야에서 온 짜슥들은 아예 장수가 이끌고 돌아갔다지 아마
백제병사 2 : 어디 가야병사뿐인 줄 알어? 산너머 군영쪽은 농사때문에 벌써 돌아간지 오래지 아마.
백제병사 1 : 우리 주군은 지금 뭐하는 거야 아주 충신이 났어요 충신이 났어. 우리 졸개들 다 죽이고 말이여
백제병사 3 : 이봐. 우리 주군은 충성할 만하지 뭐. 좌평자리 하나 얻었잖여. 그러니께 충성해야 말고. 암.
장면 3 ; 백제 태자 여창의 지휘본부
태자 여창 : 지금 상황이 어떻소?
좌평 1 ; 현재 전선은 전쟁 직전의 상황으로 돌아갔사옵니다.
태자 여창 ; 금산쪽 대왕마마의 기마부대 소식은 들어온 것 없소이까?
좌평 2 : 관산성에서 신라의 방어선에 걸려서 손실이 많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태자 여창 ; 허허. 이거 뜻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구려. 아바마마가 이끄는 군과 연합작전도 물거품 되는거 아니요?
좌평 1 : 그러게 말입니다. 신라군의 방어가 워낙 두텁다 보니까 (말끝을 흐린다)
좌평 2 : 우리도 굴산성에서 신라군을 뚫지 못했지 않사옵니까? 대왕마마께서도 혹시나 그런것 같사옵니다.
태자 여창 : 현재 우리 병력은 어떻소?
달솔 1 : 아뢰기 황송하오나 전투에서 죽은 병사보다 도망치는 병사가 더 많사옵니다.
태자 여창 :(얼굴이 불어지며 크게 노한다) 그게 무슨말이요? 도망치는 병사가 더 많다니?
달솔 2 : 문제는 공주에서 사비로 천도하는 과정에 불만이 있던 귀족세력들이 병사들을 철수 시킨 경우가
많사옵니다.
좌평 1 : 지방 귀족들이 자신들의 식솔과 농사일 때문에 그런거 아닐까요?
태자 여창 : (대노하며)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한단 말이요?
좌평 1 :(고개를 못든다)
좌평 2 : 전쟁이 생각보다 길어진 것도 염두해 주셔야 하옵니다. 아군의 사기문제도 그렇고 (말 뒤끝이 흐려진다)
태자 여창 :
(전쟁이 길어졌다는 말에 좌평 2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이내 눈을 떨구며 한 숨지며 말한다)
허긴 지난 겨울에 시작한 전투가 현재 벌써 한여름이 지나고 있으니.. 가야군은 현재 어떻소이까?
좌평 1 : 가야군 8천중에 벌써 절반 이상이 전장에서 죽거나 다쳐고 나머지도 상당부분 이미 철수한 상태이옵니다.
태자 여창 : 허허 이거 큰일이구려 빨리 대왕마마의 군진과 합쳐야 할터인데 전령은 아직 소식이 없소?
달솔 2 : 전령은 이미 보냈사옵니다만 관산성에서 신라가 길을 끊고 있는지라 시간이 좀 걸리는 것 같사옵니다.
태자 여창 : 그렇다면 왜에 좀 더 병력을 지원해 달라고 하는것이 어떻소?
좌평 1 : 왜까지 구원병을 요청한다는 것 자체가 워낙 힘들지 않사옵니까? 바다를 건너고 또 왜 조정까지 간다는 것도 현재는 시간도 없고 말입니다.
태자 여창 : 그러면 도대체 뭐를 할 수 있단 말씀이오? 답답하구려
백제가 언제부터 저 보잘것 없는 신라에게 조차 이렇게 끌려 다니게 되었단 말이오?
여러 좌평들 입이 있으면 한번 말을 해 보시오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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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나레이터) :
신라의 반격에 밀려서 전쟁초의 진영으로 되몰린 백제군의 상황을 가상으로 역어 본 것입니다.
백제 성왕의 경륜과 카리스마에 훨씬 못 미치는 태자 여창의 입장에선 전쟁에서 수세로 몰리게
되자 여러가지 곤경에 직면하였을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태자 여창은
전쟁의 피로도 피로지만 리더쉽의 문제등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몸져 드러눕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식은 전령을 통해서 아버지인 백제 성왕의 귀에 들어갔음은
자연 스러운 것이라고 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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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새로운 국면으로의 전환
백제 태자 부여 창이 지휘한 백제 주력군은 굴산성과 저점산성의 신라 방어선을 끝내 뚫지 못하고 후퇴를 하게 된다. 신라는 전군의 동원령을 내려서 격전지로 이동하여 병력 손실을 보충하고 전열을 가다듬었던 반면에 백제는 그렇지 못하였다. 특히 겨울에 시작한 전투는 봄을 지나면서 장기화 되자 지방귀족 소속의 병력은 보충되기는 커녕 이탈조짐까지 보이고 만다. 결국 백제는 후퇴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주 전장터는 굴산성에서 다시 전쟁발발 직전의 상황으로 돌가갔다.
이렇게 후퇴하면서 태자 부여 창은 몸져 드러눕게 된 것이다. 태자 부여창 휘하엔 백제군사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가야와 왜의 병력까지 함께 있었다. 게다가 태자 부여 창은 백제 귀족들의 열렬한 지원하에 전쟁을 감행 한 것이 아니라 원로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개전한 터라 전황이 불리하게 되자 그 심적 압박은 이만저만 크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 환산이라고 불리는 고리산의 산성 축조물들은 이때 축성되지 않았나 추정해 본다.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고리산에서 이백리산성과 노고산성으로 이어지는 식장산 능선을 따라서 많은 보루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것이 백제의 주 방어선이었다. 고리산성은 이 근처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그런 위치였다. 또한 이백리산성과 노고산성은 탄현고개를 방비하는 게이트같은 역할을 하는 산성으로서 그 어느곳보다 방어가 엄중하였을 것이다.
그림설명 : 관산성 부근 확대. (서화천을 사이로 하여 양쪽 능선으로 양 진영 재편) 삼성산을 재건산이라고도 하는데 이 곳을 현재 관산성터로 비정하고 있다. 관산성터 바로 아래가 구천(구진베루)이다.
성치산성은 백제의 주요 주둔지로서 보급은 물론이고 곤룡재와 닭재를 통해서 대전과 사비성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자리잡고 있다. 특히 성치산성은 백제산성으로서 대표적인 곳이기도 하거니와 성치산성의 위치는 대전으로 넘어가는 게이트 뿐만 아니라 금산 추부 마전으로 연결되는 교통의 삼각로에 위치하고 있다.
백제의 진영 맞은 편으로는 신라가 어렵게 찿은 마성, 용봉 삼성산(관산성), 서산성, 구건리 산성으로 이어지는 신라의 방어선이 구축되었다. 백제와 신라 양진영 사이로는 금강의 지류인 서화천이 구비구비 흐르고 있고 관산성 바로 아래 돌출된 지역이 바로 구진베루라고 알려진 구천이다. 그곳이 성왕이 전사한 곳이다.
이것을 좀더 확대한 그림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양진영 사이로 흐르는 서화천은 양군을 가르는 경계이기도 하거니와 한편으로는 금산 추부 마전(馬田)의 백제군의 이동로이기도 하다. 즉 성치산성에서 태자 여창의 고리산성으로 이동할 경우 서화천을 따라 가는 교통로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백제와 신라는 팽팽한 힘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것이 순식간에 무너지게 된 계기가 바로 백제 성왕의 죽음이었다. 그렇다면 어찌해서 성왕이 바로 저 구진베루에서 죽게 되었는지 그 역사추적을 심층적으로 파헤쳐 보자.
사진 설명 : 이곳이 바로 구진베루라 불리는 곳이다.
벼랑아래로 휘돌아 나가는 서화천을 따라 가던 성왕은 이 언저리에서 신라 복병에 걸려들었다.
이러한 첨예한 대치상황에서 어찌하여 성왕은 신라의 관산성에서 빤히 내려다 보이는 서화천을 따라 가다가 구진베루에서 신라 복병에 걸려 들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지금으로 치자면 한마디로 비무장 DMZ 사이로 이동한 것과 같은 것인데 군사 논리상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그 이유를 지금부터 풀어 가고자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