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 SEAL ...1편 (베트21 구출작전)

슈퍼스탈리온 작성일 08.10.05 07:2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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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21 구출작전

 

1972년 4월 2일 밤,

콜 싸인 배트-21인 더글러스 EB-66 전자전기가 북베트남 상공을 비행하고있었다.

북 베트남의 부활절 공세에맞서 보복출격하는 B-52 폭격기에 앞서

출격했던 EB-66전자전기는 급박한 상황에 내몰렸다.

갑자기 미사일 접근 경보가 기체내부에 울려퍼졌던 것이다.

비상 회피기동으로 첫 번째 미사일은 기체 측면을 비켜나게 했으나

두 번 째 샘 미사일에  피격되었고,  53세의 햄블튼(Iceal Eugene Hambleton)중령은

통산63번째의 출격에서 피격당했지만 승무원 중 유일하게 혼자만

낙하산으로 탈출하여 살아남게되었다.

 

그는 고공에서 탈출했기 때문에 오랫동안 낙하산에 메달려있어야했고,

밤하늘에서 산산조각이나는 전자전기의 화염을 목격할 수 있었다.

쿠아 강을낀 DMZ 남쪽 캠 로지역에 떨어진 그는 손목이 부러지는 부상을입은 채

북 베트남군이 장악한 지역의 중심에 갇혀있는 셈이되었다.

 

강변의 논에 떨어진 그는 낙하산을 숨기고 숲을 헤매다 순찰 중이던

북 베트남 군에게 발각되어 총격을 받았으나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다.

숲 속에 웅크린 햄블튼의 바로 몇 미터앞에서 북 베트남군들이 그를 찾고있었다.

그는 숨죽인 채 꼼짝없이 밤을 새워야했다.

북 베트남군은 생존자를 찾아내기위해 벌써 수색작전에 돌입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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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레이더 전파방해, 전파도청, 타격목표지시등에 쓰인 EB-66전자전기

 

 

 

 

 

 

공군은 햄블튼의 위치를  생존킷트에 내장된 위치추적기인

LORAN (long-range navigation systems)을통해 파악하였고,

정보당국은 그 지역에 3만명의 북베트남군이 있음을 알게된다.

미군은 전략공군사령부의 기밀을 모조리 머리 속에 담은 채 조난된 

한명의 중령을 구하기위해서는 아마도 많은 희생을 각오해야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대부분의 미군이 본국으로 철수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 공백을타고 남 베트남 지역을

접수하러 내려온 북베트남 군이 이지역을 완전장악하고있었던 것이다.

사실상 전쟁의 막바지에 1명의 전자전장교를 놓고

북 베트남 군과 미군의 치열한 게임이벌어진다.

 

 

다낭의 공군기지에서는 즉각 구조팀을 편성했다.

프레드 볼리 대위를 비롯하여 4대의 A-1H 스카이레이더와

2대의 HH-3E 졸리 그린 자이언트 구난헬기를 편성하여 

전방항공통제기들의 연락이오면 즉각 출동할 태세를 갖추고 비상대기 중이었다.  

 

다음날부터 OV-10 브롱코,  O-2 스카이마스터등

전방항공통제기(Forward Air Controller)들이

하늘로 날아올라 햄블튼과의 교신을 시도하여 그와 무선이닿았다.  

 

그 중1대의 OV-10 브롱코(호출부호-네일 38)가 샘 미사일에격추당해

2명의 승무원이 낙하산으로 탈출했다.

결국 북 베트남군의 소굴에 떨어져버린 브롱코조종사 윌리엄 핸더슨 대위와

관측장교인 마크 클라크 중위(마크 웨인 클라크 장군의 손자)도 구조대상에 포함되었다. 

또 다른 항공기는 햄블튼 중령과 교신하며 저공으로 하강했다가 여러대의 북 베트남군

전차를 목격함과 동시에 총탄세례를 받고 황급히 기수를돌려 빠져나와야했다.

 

북 베트남군 정보부는 미군과 햄블튼의 URC-64 무전기 간의 교신을

낱낱이방수하여 햄블튼의 위치를 추적해들어왔다.

 

4월3일밤, 브롱코 조종사 윌리엄 핸드슨 대위가 북 베트남군에게 발각되어 쫓기다

생포되었다. 숲속에 숨어있던 햄블튼 중령은 이 모습을 숨죽인 채 지켜보아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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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에 맞기직전의 OV-10 브롱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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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2 수퍼 스카이 마스터

4월4일,

출격한 10대의 스카이레이더가 햄블튼과 교신하며 주변의 적을 공격하다가

1대의 스카이레이더가 격추되고 8대가 손상당했다.

3대의 HH-3E 졸리 그린 자이언트 구난헬기도 지독한 총격을받아 황급히 기수를

되돌려야했다. 헬기는  FAC의 유도를받아 햄블튼과 약 100m 지점까지 접근해들어가다

집중사격을받아 한 대는 조종석 캐노피가 몽땅 날아가 버렸던 것이다.

헬기들은 기총사수가 필사적으로 응사하는 가운데  운좋게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북 베트남 군은 두명의 조난 조종사를 미끼로삼아

출격하는 항공기들을 대공포로 공격했던 것이다.

 

날이 어두워지자 상처투성이가된 헬기들은 기지로 철수했다.

이날 밤, 스카이레이더가 생존키트를 낙하산으로 투하했으나

햄블튼이 회수하려는 순간, 북 베트남군이 들이닥치는바람에 실패했다.

 

 

미군정보부는 북 베트남군이 구조기들을 해치우기위해

조난자들을 교묘하게 이용한다는 것을 명백히 알게되었다.

작전 만 이틀 째인 4월4일까지 3대의 항공기가 격추되고 3명의 승무원이 죽었다.

호출부호 블루 고스트-39 헬기도 추락하여

승무원3명이 죽고 한명이 포로로 붙잡혔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 뿐만이 아니었다.

직접 구조에 참가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작전의 여파로 다른 곳에서도

1대의 휴이 헬기가 추락하여 1명이 죽고 1명이 포로로붙잡혔다.

그는 1973년 하노이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1973년 포로교환으로 귀향할 수 있었다.

 

 

4월6일, 4대의 B-52 폭격기를 포함한 총 52대의 항공기가

캠로지역의 북 베트남군을 공격했다.

밀림 속에 숨어있던 두명의 조종사도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많은 비가 쏟아지자 구조작전은 24시간 연기되었다.

 

4월7일에도 또 한 대의 OV-10이 격추당하여 낙하산으로 탈출한

브루스 월커 중위와 래리 포츠 중위가 포로로 붙잡혔다.

월커 중위는 도망다니면서 무전기로 연락을 취했으나 곧 체포당했다.

포츠 중위는 훗날 북 베트남군의 포로명단에 사망자로 등재되어있었으나

그의 시신을 찾지 못해 행방불명 처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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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3E 졸리 그린 구난헬기

 

이 작전이 너무나 위험하다는 것을 명백히알게된 다낭기지의

헬기 승무원들은 작전에 참가하기를 꺼려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망설이는 가운데 졸리 그린 비행대대장 빌 헤리슨 대령은

자신이 직접 나서기로 결정하였다. 그때, 얼마 후 귀국하기로 예정되어있던

피터 챔프맨 대위가 자원하여 헤리슨 대령을 만류하고 제67번 졸리 그린을 조종했다.

 

구조팀은 다시 햄블튼과 클라크 중위를 구하기위해 지옥으로 날아갔다.

4대의 스카이레이더와  F5A 프리덤 파이터들이

로켓과 폭탄을 투하하고 햄블튼 주변에 연막탄을 투하했다.

스카이레이더 조종사 프레드 볼리 대위는 햄블튼에게

적색 연막신호탄을 던져 위치를알리라고 연락했다.

볼리 대위는 지금 이상황이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했으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60번, 67번 헬기들은 연막의 차장을 뚫고 들어가 햄블튼을 구해내기로했다.

지상에는 5개 대대규모의 북 베트남군이 포진해있었고,

약 6km 떨어진 곳에는 전차들이 목격되었다.

헬기가 지상으로 접근하여 햄블튼으로부터 약 100m전방에 도달하기위해  

날아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대공화기들이 불을 뿜었다.

헬기 기총사수가 7.62mm 미니건으로 응사하는 가운데 집중사격을받은

 챔츠맨 대위는 황급히 후퇴하기 시작했으나 동체에 불이붙었다.

챔프맨 대위는 헬기를 안정시키려 필사적으로 노력했으나

몸부림치는 헬기를 바로 잡을 수 없었다.

볼리 대위의 수신기로 절망적인 음성이 날아들었다.

 

" 67번 헬기다. 우리가맞았어!"

볼리 대위는 스카이레이더들에게 헬기주변을 청소하라고 지시한 후

자신도 저공으로 내려가 67번 헬기의 전방을 향해 기총을 쏟아부었다.

그 동안 사력을 다해 위험지역을 벗어나려던 챔프맨 대위의 67번 헬기는

순식간에 폭발하며 숲 속에서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나머지 헬기들은 지상을향해 응사하면서 안전지대로 탈출했다.

자신을 구하기위해 6명의 동료가 전사하는 모습을

숨어서 바라보던 햄블튼은 눈물을 흘렸다.

 

볼리대위는 지상의 잔해들을 안타깝게 쳐다보았다.

볼리는 사방에 흩뿌려진 잔해에서 피어오르는 거센불길을보며

생존자는 하나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클라크 중위도 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있었다.  

두 사람은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채 각자 밀림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탐조등을 밝힌 전차와 대규모의 병력을 동원하여 햄블튼을 찾기위한

북 베트남군의 대대적인 수색작전이 밤마다 벌어지고 있었다.

일단의 병사들은 숲 속의 햄블튼과 거의 스치 듯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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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대는 즉시 기지로 돌아갔다.

볼리대위는 항공기로의 구조는 더 이상 불가능하며 희생만 클 것이라 보고했다.

헤리스 대령은 이 비참한 소식을 전달받고는 다른 방안을 강구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이공 사령부의 머헤드 대령을불러 항공구조의 중단을 알리며

다른 방법을 찾자고말했다. 햄블튼을 구출하기위해 벌어진 4월9일까지의 작전에서

벌써 5대의 항공기가 격추되고 사망자만 9명, 포로2명,

행방불명자 2명(아직 불확실한 상태에있었던 포츠와 월커중위)이 발생했던 것이다.

머헤드 대령도 이에 동의하였고 상부에 헬리콥터 구조는 매우 어렵다는사실을 보고했다.

 

 

 

 

구출작전에대한 회의가 열렸다.

현재 상황으로서는 공중을통한 네일38과 배트21의 구출이 매우 어렵다.

다른 방안 즉, 육상으로의 구출작전을 생각해보자는 것이었다.

 

4월8일 오후, 알 그레이 해병 대령이 강을이용하여 그들을 구출한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이작전을 앤디 엔더슨 해병중령에게 위임했다.

엔더슨 중령은 특공대를 조직하기 시작하여 SOG(특수작전그룹)에 배속된

SEAL팀의 탐 노리스 중위에게 햄블튼 구출작전을 맡겼다.

 

베트남에 얼마남아있지 않았던 SEAL 대원 중의 한명인 28살의 노리스는

베트남전에 2번째 파병됐던 사람이었다.

그는 겉으로보기엔 키가작고 왜소하여 몹시약해보이는 사람이었으나

강인한 정신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5명의 남 베트남 SEAL팀의 프로그 맨들과 함께 작전에 나서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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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 21 햄블튼 중령                                      탐 노리스 중위

 

이즈음, 공군 정보부는 구출을위한 온갖 방법들을 찾아내고 있었다.

그러다 햄블튼이 터크슨 골프장에서 자주 골프를 즐겼던 것에 착안했다.

북 베트남군이 모든 무선을 방수하고있었기 때문에

긴급히 입수한 터크슨 골프장 조성도를 펼쳐놓고  코스에 관련된

전문용어들을 통고하여 햄블튼을 강가까지 유도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정찰기들을 긴급출격시켜 구출작전 지역의 항공사진을 촬영하도록했다.

그다음 지도에 강변까지 3km가 넘는 골프코스를 완성시켰다.

 

햄블튼은 전방항공통제기에서 알려주는 이 골프장의 코스를따라 움직여

최종 홀인 강변까지 도달해야만했다.

코스에는 적기지, 진지, 또는 적대적일 것으로 판단되어 꼭 피해가야하는마을,

하천등 특정지역을 면밀히 검토하여 탈출의 골프코스를 완주하도록 계획되었다.

햄블튼은 골프장을 속속들이 잘알고 있었기 때문에 공중에서 불러주는 용어들을

통고받고는 기억을 떠올리며 땅바닥에 코스를 그려보기도했다.

그는 낮에는 꼼짝없이 숨어있다가 밤에만 움직이라는 통고를 받았다.

식량은 오직 생옥수수와 빗물을 먹었을 뿐이었다.

 

 

4월10일, 무선으로 작전을 통고받은 클라크 중위는 어두워지면

가까운 쿠아 강변 쪽으로 이동할 준비를 한 채 숲 속에 숨어있었다.

그러나 햄블튼 중령은 북 베트남군에게 둘러싸인 채 

강으로부터 1.6km떨어진 부근에 있었다.

 

 

노리스 중위의 SEAL팀은 북 베트남군 장악지역으로부터 남쪽으로 1.6km떨어진

남베트남 군 전초기지에서 출발하여 좀더 가까운 지역에있는 클라크 중위를

먼저구출한 다음, 햄블튼 중령을 구하기로 되어있었다.

 

4월 10일 밤,

어둠 속에 나타난 SEAL팀은 강을 수영하여 거슬러 올라가기로했던

최초의계획을 변경해야했다. 물살이 너무 세 수영이 불가능하다

판단되어 강변을따라 육상침투형태로 변경해야했다.

상류로 은밀히 침투하던 그들은

북 베트남군의 전차와 트럭, 대규모의 병력이동을 목격했다.

그들은 강변의 진흙 위를 뱀처럼 움직이며 나아갔다.

중 무장한 대규모의 북 베트남군을 목격한 SEAL은 

자칫 실수하면 모두 죽는다는 것을 다시한번 더  상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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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에서는 전방항공통제기가 날아다니며 클라크 중위에게

강변의 진흙지대로 내려와 은신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유령처럼 강상류로 기어들어온 노리스일행은

새벽 2시와 3시 사이 쯤에 클라크가 있는 지점까지 도달하였다.

조용히 전방을 주시하던 그들은 어둠 속에서

뭔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했는데 바로 클라크였던 것이다.

그들이 구조를위해 움직이려는 순간 북 베트남 군 순찰대가 나타났다.

그들은 조용히 몸을앉혀 물 속으로 스르르 밀려들어갔다.

물살이 너무세서 강 하류로 밀려났기 때문에 순찰병들이

지나가고나서는 이미 클라크의 위치를 잃어 버린 뒤였다.

몇 명의 팀대원이 강하류로 밀려났고 물살을 헤치며 수영을하던 노리스는

나머지 대원과함께 강변으로 다시 그 지점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노리스는 무전기로 상황을 전달 한 후 강 동쪽으로 움직였다.

 

새벽이되자 시간이 촉박해졌다.

날이 밝으면 발각될 위험이 매우클 것이다.

마침내 노리스 팀은 강변의 어떤움직임을 발견했고 곧 클라크 중위와 연결되었다.
전방항공통제기 조종사가 흩어진 팀원들을 한 곳에 모이도록 유도했다.

여전히 주변에는 북 베트남 군이 우글거렸다.

SEAL은 아침내내 은밀히 조심스럽게 남쪽으로 탈출해나갔다. 

그날 오후, 마침내 쿠아 강의 최북단 남 베트남군 전초기지에 도달하여 클라크 중위를

장갑차에 태워 대기 중이던 다낭행 항공기로 후송하였다.

비록 클라크는 구출했지만  햄블튼이 여전히 적의 수중에 남아있었기 때문에

작전은 완벽한 성공이 아니었다.

 

 

탐 노리스와 그의 대원들은 여전히 전초기지에 남아있었다.

노리스는 햄블튼을 구출하기위해 11일밤 다시 출발할 준비를하고있었다.

상부에서는 북베트남군 전차의 활발한 움직임을 감지하고는 노리스에게

출발하기 전에 먼저 캠 로 다리를폭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출발하기 전에 베트남 군의 맹공격을 받게되고 대원들이

부상당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무선을 방수하여 클라크가 구출된 사실을 알게된 북베트남군은

 다량의박격포를동원하여 전초기지를 공격해들어왔다.

쌍방은치열한 전투를 밤새도록 치뤘다.

다음날 아침, 전초기지의 피해상황은 매우컸다.

밤 사이의 방어작전에서 2명의 SEAL 대원이 부상당하여 헬기로 후송되었다.

 

노리스의 팀원은 이제 3명이 남았다.

12일밤, 노리스는 햄블튼 구출작전을 다시재개하여 더 더욱 증강된

북베트남군의 눈을피해 4km의 거리를 파고들어가야했다.

은밀히 북상하던 도중 전차를 비롯한 강력한 무기로 장비한 북 베트남군이

속속보강되는 모습을 목격한 2명의 SEAL대원은 심한두려움을 느끼게된다.

그리고는 마침내  작전에 참가하기를 거부하는 사태에 이르고만다.

노리스는 그들을 설득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러는 동안 날이밝자 어쩔 수 없이 후퇴해야만했다.

노리스는 심한 좌절감을 느꼈다.

북베트남군은 첨단 무선장비와 도청장비, 그리고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햄블튼을 잡기위해 혈안이되어 있었다.

 

 

조난 11일 째,

부상에다 제대로 먹지도 못한, 이 나이많은 공군중령의 체력과 정신은

인내의 한계점에 도달해있었다.

또한 어둠 속에서 정해진 루트를 따라가는 것도 결코쉽지 않았다.

극심한 혼란에 시달렸던 햄블튼은 낮에는 숲속에 몸을 숨기고

좌절과 분노에 눈물을 흘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체력은 극도로 쇠약해져갔다.

 

공중에서는 전방항공통제기의 조종사가 햄블튼을 끈질기게 격려하고 있었다.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구출되지도 못하고 체력이 극도로

소진된 햄블튼이 혹시 자포자기하지나 않을지 걱정스러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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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10 브롱코

 

노리스는 조난 13일째되는 날 오후에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는 이날밤 다시 구출작전을 전개하려 준비하고 있었다.

 

"만약 오늘밤에도 실패하면 두 번 다시 기회는 없다."

노리스는 오늘밤을 넘기게된다면 체력이 다해 버린 햄블튼이

접선장소까지 결코오지 못하리라 예상하고 있었다.

작전에참가한 공군 FAC조종사들도 똑같은 생각이었다.

 

 

공포에질려 작전을 거부한 2명을 설득해봤지만 결국 그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

노리스는 남아있던 단 한사람, 자신도 함께 가겠다고 자원한

남 베트남군 장교인 구엔 반 키에와 함께 조그만 어선을 타고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이것은 강변 곳곳에 설치된 북 베트남군의 진지에

발각되지 않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없는, 완전히 자살행위였다.

 

그들은 어부차림을하고 미리 봐두었던 작은 산판선을 어두운 강으로 밀어넣었다.

노리스는 전방을 감시하고 키에는 조심조심 상류를향해 노를 저었다.

강언덕에서는 북베트남군의 차량과 우렁찬 전차엔진소리가 들려왔다.

강안개 때문에 위치를 정확히 찾기에는 불리했으나

반대로 적에게 들킬염려는 조금줄었음에 위안해야했다.

 

강변의 진지에서는 2명의 SEAL대원이 산판선을타고

강을 거슬러올라가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마침내 노리스와 키에는 캠 로 다리아래를 한참지나 상류의 강변에 배를 끌어올렸다.

다리 위에는 북 베트남 군들이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무척 조심스럽게 통과해야했다.

그다음 강변을 따라 은밀히 걸으며 햄블튼을 찾아내야하는

극도로 위험한작업을 시작하였다.

 

노리스는 지금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햄블튼이 지시된 코스대로 빠져나왔다면 그를 금새 찾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얼마 후,

그들은 강변의숲속에서 조용히 "여기"라고속삭이며 쓰러져있던 햄블튼을 찾아냈다.

주변에 북 베트남군이 많았기 때문에 두사람은 살금살금 다가가

햄블튼의 입을 손으로 꽉 막았다. 햄블튼은 고통을 이겨내고 FAC의 지시에따라 

밤마다 악착같이 통고받은 베트남 판 골프장의 풀 코스를 타고내려왔던 것이다.

그동안 햄블튼의 체중은 20kg이 감소되어있었다.

두사람의 SEAL은 햄블튼을 산판선 중간에 눕힌 뒤 바바나잎으로 그위를 덮었다.

 

 

노리스는 무전기로 베트21을 구출했다고 통고했다.

그러나 지금상황은 단지 햄블튼을 찾은 것 뿐이지

안전지대로 빠져나가기 전까지는 완전한 성공이아니었다.

남쪽으로 향하는 동안 하늘은 밝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부터 극도로 위험해 질 수 있었다.

허술한 나무로 만들어진 베트남식 거룻배인 산판선은 그 어떠한 총탄도

막아낼 수 없으며 심지어 소구경화기에도  침몰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노리스로부터 구출보고를 받은 기지에서는 환호와함께 항공기들을

비상출격대기시켰으며 이미 몇대는 작전지역 가까운 상공을 배회하고있었다.

 

 

남쪽으로 향하던 도중 강변에서 북 베트남군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웅성거림과함께 총탄이 빗발치 듯 날아와 물기둥을 만들어냈다.

두사람의 SEAL은 미친 듯이 노를저어 속도를 높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모조리 죽을 것 같았다.

노리스가 대응사격을하는동안 키에는산판을 강변의 우거진 숲 쪽으로 몰아갔다.

노리스는 황급히 긴급공중지원 요청을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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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장 날아온 A-1H 스카이레이더들이 강변에 폭탄과함께

연막탄을 연속투하하여 그들을 숨겨주었다.

다시 전 속력으로 출발하여 남쪽 전진기지 가까이에 이르는 동안에

북쪽강변에는 비상걸린 북 베트남 군으로 빽빽히 채워져있었다.

그들은 연막 구름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했다.

총탄이 핑핑 허공을 가르는가운데  두 사람은 다시 미친 듯이 노를 저어야했다.

남 베트남군 쪽에서도 북쪽으로 사격을 가했다.

가까스로 남쪽에 도착한 두사람은 남북간에 교전이 벌어지는 동안

햄블턴을 부축하여 지하 엄폐호로 몸을 숨겼다.

엄폐호에 들어오자마자 노리스는 부상당한 햄블튼의 상처에 응급치료를 하였다.

 

 

수색작전을 펼치던 북 베트남군은 미군들의 구출성공 무선을

방수하고는 패배를 인정하고 작전을 종결시켰다.

 

구엔 반 키에는 베트남 전쟁 중 베트남 사람으로는
최초, 최후의 미국 2급 명예훈장 수여자가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키에는 미국에 거주하면서 탐 노리스와 계속 우정을 나누었다.
탐 노리스도 대통령으로부터 명예훈장을 수여받아 베트남전쟁의 마지막 수훈자가되었다.

그는 제대 후 FBI에서 인질구조팀에 근무하였고, 은퇴 후 아이다호에 살고있다.

추락한 호출부호 67 졸리 그린 구난헬기 승무원들의 여섯 유해는

1997년에 미국으로 돌아왔다.

 

이 이야기는 비밀로 유지되어 오랜동안 일반에 공개되지않았다.
그 후 세월이흘러 영화로 만들어졌고, 많은 관객을 모은 히트작이된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비로소 이일을 알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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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헬기에 태워진 햄블튼 중령을 군의관이 보살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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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에 누운 햄블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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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기지에 도착한 헬기에서 햄블튼을 내리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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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군 SEAL 대원 구엔 반 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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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훈장을 수여받는 탐 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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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엔 반 키에와 탐 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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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 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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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샬 햄블튼 중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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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엔 반 키에 남 베트남해군 신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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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흘러 다시만난 햄블튼 중령과 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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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영화로 제작되여 큰흥행을 거듭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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