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를 넘어서다. 조국 최전방에 청춘을 바친 남자

슈퍼스탈리온 작성일 08.10.26 09: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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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면 사회로 돌아가는 군인, 김종화(53) 원사에게 군대는 고향이다. 그가 32년 6개월간 생활한 부대 탄약고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스타를 넘어서다  - 늙은 군인의 노래

비무장지대(非武裝地帶)는 무장하지 않은 곳이라는 의미다. 동시에 가장 무장이 심한 곳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세계 유일의 분단지역인 한반도에만 존재하는 역설(逆說)이다.

1953년 정전협정(停戰協定)을 맺은 미국과 북한은 임진강변에 세워진 표지물 0001호와 동해안의 1292호를 잇는 248㎞의 선(線)을 그어 군사분계선으로 정했다. 그 선으로부터 남과 북은 각각 2㎞씩 후퇴해 폭 4㎞, 길이 248㎞의 비무장지대를 만들었다.

이 곳에서 남과 북은 서로를 믿지 못한다. 정전협정을 어기며 비무장지대 안팎으로 GP(감시초소)와 GOP(최전방소초)를 세운 까닭이다. 무장하지 말아야 할 곳에서 무장을 하고, 서로 믿어야 할 형제끼리 믿지 못하는 곳. 비무장지대는 냉전(冷戰)의 상징이 됐다.

사람의 자유를 제한한 탓에 동식물은 자유를 얻었다. 비무장지대를 표시하는 철책선 주위엔 고라니와 산양이 펄쩍펄쩍 뛰어다닌다. 이름 모를 꽃들은 지천으로 피었다. 환경보존구역은 비무장지대의 새로운 이름이다.

비룡부대 김종화(53) 원사는 비무장지대를 지킨다. 그 세월이 벌써 32년 6개월이다. 정년퇴임까지 1년 남았다. 그는 곧 국가의 명령에 따라 정든 군대를 떠나야 한다.

“저는 정문을 위병소라 부르고 운동장을 연병장이라 부릅니다. 사회로 나가려면 빨리 군대 물을 빼야죠. 그런데 쉽지 않습니다. 다시 이등병이 된 기분입니다.” 조국의 최전방에 청춘을 바친 남자, 그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 사회가 두려운 늙은 군인

김 원사를 처음 만난 곳은 경기도 수원에 위치한 보훈연구원이다. 그는 사회적응훈련을 받고 있었다. 사회적응도 배워야만 하는 과목인가? 그는 대답했다. “민간인들에게는 희한한 일이겠죠. 우리는 지하철 타는 방법도 잘 모릅니다. 전방엔 지하철이 없거든요. 서울의 한 예식장에 왔다가 지하철 타는 법을 몰라 곤란한 적도 있습니다. 사회의 모든 것들이 우리에겐 낯선 것들이랍니다.”

그는 사회적응훈련을 받으면서 창업하는 방법과 재테크 비법을 수강했다. “새 인생을 살아야죠. 그런데 군인들이 참 순진하거든요. 평생 명령에 복종하면서 살았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합니다. 제대한 직업군인이 사기 당하는 1순위라고 말이죠.”

그리고 그는 말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할 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불안하네요.” 그는 손을 만지작거리다 먼 산을 바라봤다. 늙은 군인의 갑작스런 고백에 기자는 숙연해졌다. 말하면 깨지는 것. 유리그릇보다 조심스러운 게 고백이란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화를 중단했다.

다음날, 그는 사회적응훈련을 마쳤다. 저녁엔 군대 동기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직업군인의 길을 함께 걸은 친구들. 백발이 성성한 군인들은 술의 힘을 빌어 스무 살의 그 어느 날로 돌아갔다. 이들의 대화 주제는 역시 비무장지대다.

“70년대 만해도 북한 경제력이 좋았어요. 당시에 북한군의 심리전은 기가 막혔죠. 펄럭이는 옷에 백마를 탄 엄청난 미녀가 철책선에 자주 나타났어요. 그럼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은 정신이 혼미해지죠. 이젠 먹고 살 것도 없으니 그런 일도 안하더라구요.”

다른 친구가 말을 이었다. “예전엔 전방부대에 100일 작전이라는 게 수시로 걸렸어요. 그러면 적어도 3개월은 집에 들어가지 못했죠. 집사람 보기가 참 미안했는데. 아직 사과를 못했네요.” 김 원사가 맞장구를 쳤다. “내 군대 생활에서 가장 가슴 아픈 게 그겁니다. 한번은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니까 둘째 놈이 내 얼굴을 보고 펑펑 우는 거예요. 낯선 아저씨가 나타나니까 무서웠던 게죠. 지금이니까 우리가 이런 말을 웃으면서 하지….”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빈 술병은 금새 늘어났다. 그렇게 밤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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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 근무 32년 6개월을 한 육군 비룡부대 김종화(53) 원사가 부대 보급창고에서 전투화를 정리하고 있다.

 

◆ 대한민국을 지킨 강한 군인

김 원사가 군인이 되기로 결심한 것은 중학교 시절이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 사진을 보면서 소년은 결심했다. “다시는 저런 일이 없어야 해.” 1976년 군대에 입대를 하고 곧장 하사관에 지원했다. 그리고 배치된 곳이 비룡부대다. 근무를 시작하고 열흘 만에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을 맞았다. 그는 유서를 쓰고 작전에 나섰다. “탄약과 식량을 휴대하고 앉아있는데 손톱, 발톱, 머리카락을 잘라 유품으로 남기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부모님이 그걸 받지 않았으니 다행입니다.”

결혼은 1981년에 했다. 결혼식 직후 대간첩작전에 투입됐다. 한달 동안 아내는 멀리서 울리는 총소리에 가슴을 쳐야 했다. 아내 장순자(51)씨는 추억했다. “오후 4시만 되면 동네에선 불도 켜지 못하게 했어요. 후방에선 군인들이 계속 올라왔구요. 무서웠지만 저는 집에 있으니까 괜찮았어요. 그래도 저런 총소리에 남편이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싶어 걱정을 했지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했던 둘째 아들은 어엿한 대학 졸업반이다. 김현(26)씨는 이제 아버지를 이해한다. “저도 최전방에서 근무를 했어요. 저희는 2년의 군복무기간도 꽤나 힘들었어요. 그런데 아버지는 30여 년을 그 곳에서 보냈습니다. 존경스런 분이죠.”

김 원사는 비무장지대 인근 부대에서 군 생활을 정리하고 있다. 군수보급관이 그의 마지막 직책이다. 그의 하루는 여전히 바쁘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잔소리를 하는 게 그의 역할이다.

“아껴 쓰고, 바꿔 쓰고, 나눠 쓰고, 다시 쓰면 됩니다. 자원도 없는 나라 아닙니까? 우리나라는.” 김 원사는 말을 마치자 군수품을 싣고 비무장지대로 향했다. “군인은 자부심 하나로 사는 겁니다. 조국을 지킨다는 거, 멋지지 않습니까?” 그는 트럭에서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 빛나지 않는 별

모든 별이 빛나지는 않는다. 스타라면 정치인, 사회활동가, 연예인, 스포츠 선수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회 곳곳의 원로들도 우리에겐 소중한 스타들이다. 그들이 있기에 박지성도 있고, 원더걸스도 있다.

남북이 총칼을 겨누고 있는 비무장지대는 오늘도 평화롭다. 남북화해 이후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우리 사회의 평화. 그 뒤에는 청춘을 바치고 떠나간 늙은 군인들의 땀이 숨어있다. 사명감 하나로 빛나지 않는 별의 자리를 지켜온 사람들. 그들에게 우리는 충분히 사랑을 돌려주고 있는지 궁금했다.

기자는 물었다. “원사님, 여전히 군대가 좋으십니까?” 그는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군대요? 아…. 사랑하죠. 아주 사랑하죠. 군대가 떠나라고 했다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게 사랑인가요?”

 

..............."군대요? 아…. 사랑하죠. 아주 사랑하죠. 군대가 떠나라고 했다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게 사랑인가요?” 이말이 와 닫는군요

 

 

 

자료제공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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