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광개토대왕의 전쟁 3편

슈퍼스탈리온 작성일 08.11.08 20: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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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은 전장(戰場)의 중심은 물론이거니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다면 산성은 삼국시대 네트워크의 핵심임을 알게 되었다.  조선시대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봉수대도 산성을 따라서 네트워크화 되어 있고  나아가서는 역참제도의 역원도 산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산성이 역참제도와 연결되는 것에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그 이유는 이렇다.

어느 지역이 적에게 공격을 당하게 되면 산성에 웅거하여 방어전을 펼침과 동시에 인근 산성에 지원을 요청하게 된다. 그러면 인근 산성에 주둔하고 있던 병력이 집결하면서 적을 격퇴하게 되는 것인데  응원군이 오면 산성에서 방어하던 병력도 성문을 열고 나와서 적을 협공하여 격퇴하는 것이 우리나라 산성전투의 핵심이다. 이런 전술은 고구려와 신라가 매우 효율적으로 이용하였다.  반면에 조선시대에는 이런 유기적 연결이 거의 이루어 지지 못해서 일본과 청나라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 역사적 사실이 있다.그만큼 산성은 우리나라 역사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성왕조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성왕 26년 봄 정월,
고구려왕 평성이 예와 공모하여 한수 이북의 독산성(獨山城)을 공격해왔다. 왕이 신라에 사신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였다. 신라왕이 장군 주진을 시켜 갑병 3천 명을 거느리고 떠나게 하였다. 주진은 밤낮으로 행군하여 독산성 아래에 이르렀는데, 그곳에서 고구려 군사들과 일전을 벌려 크게 이겼다.

고구려 양원왕 4년   여기서 고구려왕 평성은 양원왕을 말하고 신라왕은 진흥왕이다.

고구려 본기에도 독산성전투에 대한 기록이 똑같이 기술되어 있다.

양원왕 4년 봄 정월, 예(穢)의 군사 6천 명으로 백제의 독산성(獨山城)을 공격하였다. 신라 장군 주진이 백제를 도왔기 때문에 승리하지 못하고 퇴각하였다.

나제동맹으로 고구려를 격퇴한 독산성(獨山城)이 오산 세마대(洗馬臺)가 자리잡고 있는 독산성(禿山城)인줄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전혀 다른 곳이었다. 한자 표기부터가 달랐다. 또 삼국사기 지지(地志)에도 보면 독산성(獨山城)의 위치는 알지 못한다고 적혀 있다. 그러던 중에 인터넷에서 본 독산성(禿山城)사진 한장이 내 눈을 의심케 했다. 아무리 봐도 축성법이나 구조가 우리나라 산성이 아니라 왜성(倭城)구조였기 때문이다.

 

 

독산성(禿山城)과 세마대(洗馬臺) 

오산에 있는 세마대는 임진왜란때 권율장군 이야기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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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독산성(禿山城) 정상부에 자리잡고 있는 세마대

 

122614170396373.jpg독산성과 세마대에 대한 설명 안내 입간판 

 

 

이곳 오산의 독산성은 위치적으로는 그리 높지 않은 지대임에도 불구하고 인근의 병점 수원 동탄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충분히 군사적 가치가 높기에 삼국시대부터 최근세사에선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그 이름을 아로세기고 있다.  한국전쟁때는 미군이 처음으로 북괴군과 교전하여 참패했던 오산지구전투로도 유명하다

 

독산성에서 보이는 왜성 구조

길을 따라 2~30분 올라가면 독산성 입구에 다다른다. 독산성내에는 보적사라는 사찰이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사찰로 들어가는 성문구조부터가 필자의 눈을 사로잡았다. 다음의 사진 두장을 눈여겨 보면 그 유사성에 놀랄 것이다.  오산 독산성과 일본 히메지성(姬路城)의 암문(暗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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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산성으로 들어가는 입구

 

122614180991535.jpg일본 히메지성(姬路城)의 암문(暗門)이다

 

위 두 사진을 비교해보면 너무나도 유사하다. 큰바위사이에 작을 돌을 끼어 놓는 방식이라든가 문의 구조적 측면에서 너무도 똑같다.  반면에 다음의 남한산성에 있는 암문은 어딘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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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의 암문(치성으로 연결되는 통로이다). 독산성과 히메지성의 암문과 비교했을때 비슷해 보이지만 축성법과 통로의 연결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름을 알 수 있다. 

 

더 결정적인 것은  성내로 들어가는 통로의 구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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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독산성 해탈의 문을 통과하여 성내로 들어가는 통로 구조.  이렇게 "ㄴ"자로 꺽여 있는 것은 군사적 방어의 목적에 있다.  이런 구조는 대표적인 왜성 구조이다. 일본에서 이런 구조의 출입구조를 마스가타(ますがた ?形) 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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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히메지성(姬路城)의 암문 연결 통로 구조역시 "ㄴ"자로 꺽여 있다. 일본성의 특징중 하나이다. 

일본 성의 출입구를 고구치(虎口)라고 한다. 하지만 일본의 성에는 한국의 성에서 방어기능을 담당하는 옹성구조가  없기 때문에 이를 대신해 옹성의 역할과 비슷한 마스가타(ますがた ?形)가 있다.이렇게 "ㄴ"자 형으로 꺽여 있기에 방어에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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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3대 성(城)의 하나인 히메지성.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일본의 성곽구조 특징

일본은 센고쿠(戰國)시대를 거치면서 방어기능이 극도로 잘 구성된 성곽구조를 갖게 된다. 그 방어적 기능을 크게 나누어 보면 첫번째가 성을 둘러싸고 깊은 해자를 갖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성을 다층구조로 하여 연결통로마다 꺽이게끔 만듦으로써 농성전에서 전투력을 극대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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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화서문의 옹성구조

한국 산성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고구려 산성은 방어기능으로서 치(雉)와 함께 옹성구조가 발달되어 있다.  또한 옹성을 만들 수 없는 위치에서는  성곽을 서로 어긋나게 하여 성문을 "어긋문'형식으로 만드는데 이것 또한 방어기능에 목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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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국내성의 어긋문 형식 (성곽을 어긋나게 축성한 다음 그 사이에 성문을 만들어서 방어에 유리하게 하였다)

그러나 한국의 산성이 일본의 성곽구조에 비해서 최대 약점은  다중 방어기능이 취약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성문 하나라도 뚫리게 되면 성 전체가 한번에 무너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122614206537319.jpg수원 화성 모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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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히메지성의 성곽구조 모형

  일본의 성은  수많은 전쟁을 통해서  전투기능이 극대화된 다중 방어 기능으로 구성되어 있다.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가 축성한 울산왜성을  조명 연합군 6만명이 공격하였지만 끝내 함락시키지 못한 사례가 있다. 현재도 남해안 곳곳엔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축성한 왜성이 남아 있는데 대표적으로는  진해 웅골포 왜성과 사천 왜성이 있다. 그리고 마산 곳곳에 왜성 흔적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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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 독산성엔 성문 출입구가 모두 왜성형식을 하고 있다. 이곳도 "ㄴ"자로 꺽여진 곳이다. 흙과 바위가 무너지면서 그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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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위에서 내려다 본 또 다른 성문 출입구 . 성내로 꺽여져서 들어가는 일본의 마스가타(?形)성곽구조가 드러난다.



그 다음으로 의혹으로 보는 것이  치로 나온 성벽의 기울기 각도와 축성법이다122614219879878.jpg
마치 일본의 천수각에서 보이는 그런 각도와 형식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들여쌓기로도 볼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미짐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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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메지성의 천수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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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산성 성 안쪽에 허물어져 방치되어 있는 원래의 한국 산성 성곽 돌무지들 .
 
한국의 산성 축성에 사용하는 돌은 대체로 1~2 사람이 들어서 나를 수 있는 돌로 축성되어 있다. 그에 비해서 일본의 성은 엄청나게 큰 바위를 사용하여 방어기능을 극대화 하기도 한다.

 

 

 

이런 콱~~ 국적 불명의 이상한 축성 복원공사

122614233846364.jpg독산성 일부 복원공사하는 부분이다.  국적 불명의 축성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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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산성의 또 다른 출입성문에 복원한여 축성한 모습이다. 제대로 고증한 것인지 심히 의심이 간다122614239810189.jpg

가깝게 보이는 석축은 오산 독산성내  무너진 원래(백제?)의 석축이고 뒤에 보이는
        석축은  새로 복원하여 쌓고 있는 석축이다. 한눈에 봐도 돌의 재질도 다르고 축성방식도
        상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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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이 잘 보존된 단양의 온달산성 (고구려 산성이 아니라 신라계 산성이다 최근 지표조사결과 신라계 토기만 출토되었으며 신라의 적성산성과 똑같은 구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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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 시간을 초월한 만남.  단양 온달산성의 복원된 부분이다. 1500년전 바위에 비해서 색깔만 달리할 뿐 석판의 재질이 똑같다. 아주 잘 복원된 모습이다.

  그런데 삼년산성등 다수의 우리 문화재복원을 보면 전혀 구조가 다른 바위나 돌을 마구잡이로 이용한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잘못된 복원은 아니하느니만 못하다.



독산성에서 왜성구조가 보이는 군사적 추론

오산의 독산성은 분명하게 재조사를 해야 하는 산성이다. 기본적으로 산성은 군사시설이다.  따라서 기록이 없을 경우엔 군사적 관점에서 고찰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렇다면 왜 권율장군이  왜군의  조롱을 슬기롭게 넘기면서 지켰던 산성에서 왜성의 구조가 나타나는 것일까?

권율장군이 다른 전투지역으로 이동한 후에 이곳이 왜군에게 점령되었을 가능성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아무튼  성의 구조면에서 독산성은 재조사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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