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해군의 공중항모

견우뎅이 작성일 09.02.04 19:09:16
댓글 3조회 3,811추천 2

1. 미국 해군과 비행선

1914년 발발한 1차 세계대전에서는 이전의 전쟁에서 보지못한 여러 가지 신병기들이 속속 등장했었지만 그중에 꽤 유명한 것중의 하나가 그 유명한 체펠린 비행선이었습니다. 1917년에야 전쟁에 참가한 미국은 유럽대륙에서 접한 여러 가지 신기술들을 검토하게 되었는데 그중에는 비행선의 군사적 효용성에 대한 것도 들어있었습니다. 1917년 말에는 육군이 뉴저지주의 레이크허스트에 비행장 기지를 건설함으로써 비행선 실용화의 첫 테이프를 끊었고 1919년 5월에는 해군 역시 비행선 기지용으로 1700에이커의 토지를 구입함으로써 뒤늦게 비행선 도입에 참여합니다.


이 당시 해군이 비행선에 부여하려던 역할은 대양에서 작전중인 함대를 위한 장거리 정찰플랫폼이었습니다. 아직 도약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항공기로서는 항속거리나 공중 체공시간 등 여러 가지 면에서 광대한 대양을 충분히 수색/정찰하기엔 성능이 부족했는데 반해, 비행선은 사실상 마음만 먹으면 무한에 가까운 체공시간을 지닐 수 있는 등 정찰기로서의 잠재성이 충분했던 것이죠. 그리하여 1921년에 영국으로부터 경식 비행선 ZR-2을 도입하는 것을 시작해서 1924년까지 2척의 비행선을 추가로 도입했습니다.

하지만 1921년에 ZR-2가 영국에서 스로틀 풀가동 시험중 구조적 결함으로 인해 공중폭발하고 1925년에는 ZR-1 셰난도어가 폭풍에 휘말려 추락하는 등 비행선의 실용화는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 당시 비행선이란 단독으로 행동하는 정찰 플랫폼으로 쓰기엔 뭔가가 좀 부족한 물건이었죠. 즉, 비행선은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대공화기도 장비하지 못했고 항공기에 비해 항속거리나 체공시간 등에서는 우수하나 속도 면에서는 토끼와 거북이 수준으로 차이가 나서 만약 공중전이라도 벌어진다면 추풍낙엽처럼 줄줄이 격추될 판이었죠. 실제로 1차대전 당시 독일의 체펠린 비행선이 항공기의 "폭탄투하"로 인해 격추된 사례도 있고 런던을 폭격하려던 체펠린 비행선들이 영국의 요격기에 큰 피해를 입는 등 공중전에서 비행선의 취약성은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이제까지는 드넓은 대양에서 적군의 항공기를 마주칠 위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대 항공기 대책이 그다지 절실하지 않았지만 1920년대 초반부터 항공모함이라는 물건이 등장하면서부터는 이 천적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고는 장차전에서 해군 비행선의 생존을 보장하기가 곤란한 실정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비행선에 대공화기를 달자는 등, 전용의 대공 호위함과 행동을 같이 하게 한다는 등 여러 가지 방안이 강구되었고 결국 장시간에 걸친 논의 끝에 나온 결론은 바로 1차대전 말기 독일이나 영국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비행선에 자체 방어용 항공기를 탑재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공중항모"라는 계획이 이렇게 시작된 것이었죠.

(*주 : 독일이나 영국 역시 비행선의 항공기 탑재 실험을 수 차례 한적이 있으나 본격적인 운용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2. 미 해군 사상 최초의 공중항모

1930년 봄, 미 해군은 용적 650만 입방미터 급의 신형 경식비행선 설계에 들어갑니다. 이전의 비행선들보다 훨씬 대형화된 선체에 따라 해상의 함선 못지 않은 여러 가지 부대시설들도 충분히 갖추었고 선체강도 부족으로 공중분해됐던 ZR-2의 전훈을 되살려 기골보강에도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역시 가장 혁신적인 기술은 비행선 최초의 항공기 탑재였습니다.

신형 비행선의 선체 중앙부에는 함재기를 위한 격납고가 마련되었고 함재기는 격납고 천장에 설치된 후크에 매달리는 방식으로 수납되었습니다. 이함시에는 그대로 후크에 매달린채 격납고 외부로 내려진 다음 거기서 엔진 풀스로틀로 충분한 자체 추진력을 얻으면 후크에서 떨어져 나와 비행하는 방식을 택했으며 반대로 착함은 모함에 서서히 접근하면서 속도를 낮추어 격납고 바로 밑에서 모함과 상대속도가 0에 이르면 후크가 내려와 함재기를 구속하여 끌어올리는 방식이었죠.

다만 격납고 용적은 그다지 크지 않아서 소형기 3∼4기 정도를 수용할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나, 당시로서는 비행선에 항공기를 수용하여 자체 방어와 함재기를 이용한 정찰이라는 2마리 토끼를 동시에 달성함으로써 정찰플랫폼으로서의 비행선은 비약적인 발전을 할 수 있게된 것입니다.

함재기로 탑재될 기체는 여러 기체를 검토한 끝에 커티스 사의 F9C 「스패로우 호크」 복엽기가 선정되었는데, 이는 당시 실용화된 항공기중 「스패로우 호크」기가 가장 크기가 작았던 탓에 비행선 격납고의 좁은 도어를 여유있게 통과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스패로우 호크」는 원래 소형 항모에서의 운용을 전제로 한 소형 복엽전투기였으나 비행선에서 운용하는 것으로 전용됨에 따라 기체 상부에 격납고 수용을 위한 후크를 설치하는 개조를 받았고 1934년에는 랜딩기어를 제거하고 대신 증가연료탱크를 탑재한 형식이 등장하는 등 점차 완전한 비행선 함재기로 변모해갔습니다.

신형 비행선에 탑재된 것중 또하나 재미있는 것이 「스파이 바스켓(Spy Basket)」이라고 불리는 장치입니다. 이것은 관측장비 등을 탑재할 수 있도록 한 일종의 바구니로써, 비행선이 구름층 위에 위치해있을 때 본체로부터 이 바구니를 늘어뜨려서 비행선은 구름에 가려 적에게 보이지 않고 이쪽은 적을 관측할 수 있도록 하는 장비였죠. 바스켓과 본체를 이어주는 케이블은 대략 1,200m 정도 되었는데 막상 바스켓에 타는 사람은 이리저리 흔들리는 바스켓 안에서 상당한 공포감을 느꼈을 것 같네요.

여하튼 이런 설계과정을 거쳐서 1931년 초에는 ZR-4 아크론(USS Akron)이 기공되었고 동년 10월에 준공되어 최초의 공중항모로서 취역했습니다. 아크론의 생애는 그녀가 미 해군 "최초"였다는 사실 때문에 이런저런 평가와 기술실험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취역 직후 아크론은 함재기의 이·착함 테스트를 받았고 「스패로우 호크」 함재기가 무사히 아크론의 후크에 구속됨으로써 비행선에서의 항공기 운용이 실현 가능함을 과시했습니다. 1931년 말에는 북대서양 연안에서 함대 정찰임무 테스트를 실시하여 양호한 결과를 얻었으며 1932년 4월에는 격납고 확장 개수공사를 받아 함재기 운용능력을 한층 더 강화했습니다. 동년 6월에는 태평양 방면으로 옮겨져 함대 기동훈련에 참가하기도 했죠.

그렇지만 함대 정찰플랫폼으로서의 성공적인 임무 수행과는 별도로 아크론은 운용하기가 까다로운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운항이나 항공기 운용 등에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이·착륙 시에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아 해군 일각에서 안좋은 평판이 나돌았던 것이죠. 당시 비행선의 착륙방식은 우선 고도를 낮춘뒤 케이블을 내려 기지의 마스트에 비행선을 계류한후 하강을 계속하여 완전히 착륙하는 방식이었는데, 1931년 12월경에 레이크허스트 기지에 착륙을 위해 계류중이던 아크론이 갑자기 균형을 잃고 상승하기 시작하여 지상요원들을 케이블에 매달고 떠있다가 승무원이 추락사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한편 1932년 2월에는 반대로 착륙중에 갑자기 급격히 하강하여 승무원 2명이 사망하고 비행선 후미가 파손되는 사고를 겪었고 이로 인해 "대형 비행선을 지상기지에서 운용하는 것은 극히 위험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게 되었던 것이죠.

그리고 결국에는 아크론 그 자신마저 최후를 맞고 맙니다. 아크론은 1933년 4월 3일, 카리브해에서 계획된 함대 기동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플로리다로 이동하던 중 뉴저지 부근 해상에서 폭풍우에 휘말려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아크론에는 구명조끼가 구비되지 않았고 구명보트는 단 1척만이 배치되어 있었으나 그나마도 아크론이 너무 급격히 추락하는 바람에 사용할 기회가 없었죠. 승무원 76명중 생존자는 3명이었으나 어이없게도 생존자들을 회수하여 돌아오던 연식비행선 J-3마저 폭풍에 휘말려 추락하는 바람에 2명이 추가로 사망, 결국 살아남은 것은 단 1명뿐이었다고 합니다.

아크론의 추락후 미 해군의 비행선 열기는 급격히 식어버렸고 1935년에 아크론의 자매함인 메이컨(USS Macon)이 추락한 후에는 경식 비행선 운용을 전면 중단하기에 이르릅니다. 이런 풍조는 미국뿐만이 아니어서 1930년 영국의 R101, 1937년 독일의 힌덴부르크 등 비행선 참사가 잇달았고 경식 비행선의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여명기를 벗어나 나날이 비약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던 항공기에 비하면, 악천후에도 약하고 폭발하기 쉬운 수소가스 때문에 날아다니는 폭탄 같았던 경식 비행선들은 거대한 공룡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역사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비행선과 같이 공중항모의 짧았던 시대가 잊혀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3. 공중항모, 영원한 꿈

오늘날 밀리터리 매니아 사이에서 공중항모라는 것을 진지하게 언급한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입니다. 잘해야 "그런건 불가능해요." 정도의 말을 듣기 일쑤고 심하면 이상한 놈 취급 당하기가 일쑤죠. 분명 현재의 기술이나 전장환경으로는 공중항모가 실현될 가능성도 없고 필요도 없다고 하는 것이 맞을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 애니 등 여러 가지 매체나 많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공중항모를 갈구하고 또 언급하곤 합니다.

사람이 날 수 없었던 시절, 하늘을 날아다니던 새는 동경의 대상이었고 그리하여 고대로부터 여러 사람들은 지금의 관점으로는 다소 엉뚱한 방법으로 하늘을 나는 방법을 생각해왔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꿈이자 동경, 로망이었기 때문이었을테죠. 그리고 그런 꿈은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만들어내면서 비로소 실현되었던 것입니다. 비록 다른 형태였지만 말이죠.

공중항모라는 것도 지금은 허황된 것에 불과하지만 아크론이 그랬던 것처럼 기술이 뒷받침되고 시대와 주변환경이 그것을 필요로 한다면, 언젠가 우리의 상상과는 다른 형태로라도 현실화되지는 않을런지요. 그것 또한 밀리터리 매니아들의 로망이니까요.

123374215961118.jpg

[참고문헌 / 자료 출처]
- Naval Historical Center (http://www.history.navy.mil/)
- Navy Lakehurst Historical Society (http://www.nlhs.com/ussakron.htm)
- DJ's Zeppelin (http://www.airships.net/zepakrn.htm)
- Arlington National Cemetery (http://www.arlingtoncemetery.net/uss-akron.htm)

 

----------------------

출처 : 비운의 함선 (http://board-2.blueweb.co.kr/board.cgi?id=grim1980&bname=ship&action=view&page=1&unum=14&noInc=1&SID=df54bbcfacb22c958ab1cfa5b4660323)


 

견우뎅이의 최근 게시물

밀리터리 인기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