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원문 기사전송 2009-03-05 03:07 최종수정 2009-03-05 10:57
강화된 예비군 훈련… "직접 해봐야 문제점도 안다" 52사단장 방원팔 소장 휘하 지휘관과 훈련 동참 "훈련은 실전처럼 하되 더 재미있게 해야겠어"
"충성!" 위병이 목청껏 경례를 붙였다. 4일 오전 8시40분쯤, 경기도 안양시 관동예비군훈련장에 붉은색 2성장군 번호판을 단 검은색 그랜저가 들어왔다.
육군 제52보병사단장 방원팔(方元八·54·육사 35기) 소장이 "예비군과 똑같이 훈련을 받아봐야 문제점을 알 수 있다"며 몸소 입소한 것이다. 현역 사단장이 예비군 훈련에 참가한 것은 창군 이래 처음이다.
키 171㎝, 몸무게 68㎏의 방 소장이 별 두 개가 붙은 전투모에 반들반들한 전투화를 신고 예비군들 사이에 줄 섰다. 입소장병의 휴대전화를 걷던 김용석(21) 일병에게 방 소장이 물었다. "전원 안 끄면 안 되나?" 김 일병이 순간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저…. 안 끄시면 저희들이 어려움이 좀 있습니다."
방 소장의 '지휘부 전원 참가' 지시에 따라 52사단 연·대대장급 지휘관과 참모 35명도 훈련에 참가했다. 일병 조교가 부는 "삑삑" 호루라기 소리에 맞춰 연병장에 도착한 방 소장이 반 편성 표를 보고 4반 팻말 뒤에 앉았다. 같은 반 양인국(24·서울 보라매동·대학생)씨가 한숨을 쉬었다. "아, 골치 아프다. 왜 우리 반이야."
오전 9시, 진중남(52·3사 18기) 중령이 교육을 시작했다. 방 소장이 오른쪽 가슴에서 수첩을 꺼내 고개를 갸웃거리며 뭔가 적었다. 진 중령이 긴장했다. 1시간 동안 방 소장은 수첩 두 장을 채웠다. "휴대전화를 이미 걷어놓고 '휴식시간을 이용해 휴대전화를 쓰라'는 건 앞뒤가 안 맞아."
오전 10시, 주위를 순찰해 적을 잡는 '탐색격멸' 교육이 시작됐다. 전날 내린 진눈깨비로 땅바닥이 질척거렸다. 경계조인 방 소장은 눈 녹은 흙에 서슴없이 배를 깔고 총을 겨눴다. 조교 전선범(21) 일병은 냉정했다. "경계조 행동이 조금 굼뜨셔서 경계작전이 부실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휴식시간에 방 소장은 다시 수첩을 꺼내 적었다. "훈련이 재미없다. 수류탄도 한 번씩 던져봐야 하는데 산만 오르락내리락한다."
이동하면서 총을 쏘고 장애물을 통과하는 '전술종합' 교육이 시작됐다. 방 소장은 5분대 소총수를 맡았다. 분대장 정희두(37·서울 낙성대동·개업의)씨가 외쳤다. "분대, 돌격 앞으로!" 방 소장은 23년 만에 처음 잡아본 M-16 소총을 들고 눈 쌓인 들판을 뛰었다.
조교 강한(21) 이병이 철조망 앞에 선 5분대 11명에게 "바닥이 좋지 않아 우회통과하겠다"고 했다. 방 소장이 "나만 하단통과 한번 해보면 안되겠냐"고 물었다. 강 이병이 망설였다. "음…. 그럼 선배님 조만 하단통과를 실시하겠습니다."
분대원들의 얼굴이 굳었다. 예비군훈련 입소자 437명 가운데 5분대만 '기어서' 철조망을 통과했다.
오후 1시, 구겨진 전투복에 흙투성이 전투화를 신은 방 소장이 식당에 앉았다. 훈련을 캠코더로 촬영한 52사단 정훈병 김성진(22) 일병이 "이중에 사단장님만 'FM(야전교범)'으로 훈련받으시는 것 같다"고 했다.
52사단 감사실장 신동명 중령(48·육사40기)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감기에 걸렸지만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어 이를 악물고 나왔습니다."
오후 5시까지 화생방 교육, 구급법 교육 등이 이어졌다. 이재준(26·서울 상계동·대학생)씨는 지친 얼굴로 퇴소하며 "각개전투를 이렇게 실전처럼 받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52사단 지휘부는 오는 6일 부대에서 예비군 훈련 개선을 위한 자유토론을 벌일 계획이다. 방 소장은 "훈련은 실전처럼 고치고, 대기시간과 식사 등 복지는 개선시키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