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동양 삼국의 자랑은 중국은 화약, 일본은 도, 조선은 활이라 했을 만큼 우리 역사엔 활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수 많은 명궁들이 있다.
화살로 파리를 잡았다는 주몽, 당 태종의 눈을 맞춘 양만춘, 적장이 쏜 화살이 입술에 박혔는데 도리어 화살을 빼내어 적장에게 쏘아 맞췄다는 최영 등 한민족 역사엔 수 많은 명궁이 있음이요. 현재도 그 피를 이어받아 올림픽 양궁 종목에서 국위선양을 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궁사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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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기록을 따지면 최고의 사기케릭이 여기있으니
두둥!! 바로 태조 이성계이다.(이래뵈도 젊었을땐 잘나가던 명사수)
오늘날 사람들은 이성계 라고 하면 역사에 관심이 없거나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들은 대개 '조선을 세운 왕' '조선의 1대 왕' 으로만 생각 한다. 그는 우리가 숙제에 자주 이용하는 백과사전에서도 이렇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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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제1대 왕(재위 1392∼1398).우군도통사(右軍都統使)로서 요동정벌을 위해 북진하다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우왕을 폐하였다. 막강한 권력으로 전제개혁을 단행하였고 신진세력의 경제적 토대를 구축하여 조선(朝鮮)을 세우고 도읍을 한양(漢陽)으로 옮겨 초기 국가의 기틀을 다졌다.
-네이버 백과사전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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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조선을 건국한 왕이기 이전에 한민족 역사상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장이요. 신궁(神弓) 였다. 오늘은 태조 이성계에 관한 무용담으로 포스팅을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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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사람들은 활을 잘 쏘는 위인을 꼽으라면 드라마의 영향으로 주몽이나 이순신을 꼽을 것이다. 하긴 전해지는 이야기를 보면 화살로 파리사냥을 할 정도로 무지막지한 명궁[名弓]이지만 이순신은 명궁이라고 하기엔 조금 모자라다 오죽하면 난중일기에 활을 10번 쏘았는데 7번 맞추었다고 흡족하다고 할까......(;;) 하지만! 이성계도 주몽 만만치 않게 실록이나 야사에 전해저 오는 활 쏨씨에 관한 에피소드가 많다. 그 중 필자가 요약하고 간추린 11가지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1.집에 손님이 왔을때 이성계는 손님들을 대접하기 위해 백보 밖의 배나무를 쏴 한 가지에 달린 배를 화살 한 대로 쏘아 떨어뜨려 대접했다고 한다.
-태조대왕실록-
2.그는 어린나이에 활 줄이 쇠로 만들어진 활을 가지고 놀았는데 그 모습을 본 이자춘(이성계의 아버지)이 그 활이 사람이 쓸 것이 아니라며 자신의 활을 주고 그 활은 길 바닥에 버렸으나 이성계는 도로 주워 그 활로 마침 하늘을 날아가던 새를 쏴 맞혔다고 한다. -용비어천가-
3.그는 왜구와의 격전을 앞두고 150보 떨어진 곳에서 투구를 놓아두고 세번 쏴 세번 다 맞추어 군사들의 사기를 높였다. 또한 가지고 있던 화살 20개중 17개를 쏘아 모두 맞추었는데 모두 왼쪽 눈초리에 명중했다고 한다. -태조대왕실록-
4.위화도 회군 당시 부하들의 결의를 다지기 위해 백 보 바깥에서 소나무를 맞추었다. -야사-?
5.태조대왕실록 중 이성계의 사냥 기록을 살펴보면 큰 곰 3~4마리를 각각 화살 한개씩으로 죽이거나 노루를 잡으려 화살을 쏘자 화살이 노루와 그 옆에서 도망가던 노루를 관통하고 화살이 나무에 박혔다고한다.
6.여진족추장 고안위(高安慰)가 성에 웅거하면서 항전을 하자 이성계는 편전(애기살)을 이용하여 그 얼굴에 70발을 쏴 모두 맞췄다. 성 안의 적군들이 기겁을 하고 항복을 했다. -태조대왕실록-
7.이성계가 동북면 병마사로 있을 때 원나라 군사가 압록강을 넘어 의주까지 쳐들어 왔다. 이때 이성계가 군사를 이끌고 맞서 싸웠다. 전투가 끝나고 그는 군사들에게 " 이번 싸움에서 나는 적의 왼쪽 눈만 쏘았다." 라고 말했다 . 군사들은 그의 말을 확인하기 위하여 원나라 군사들의 시체를 살펴 보았다. 놀랍게도 원나라 병사들의 왼쪽 눈에 화살이 밖혀있었다. 그 후 이성계는 '신궁수'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야사-?
8.고려 우왕 6년 (1380)때 내륙으로 쳐들어온 왜구를 토벌하기위해 이성계가 군사를 이끌고 갔다. 황산에서 양 군은 크게 싸웠는데, 왜군을 이끌고 있는 장수인 소년장수 아지발도(阿只拔都)의 용맹에 고려 군사들이 나가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를 본 이성계는 화살을 쏘아 아지발도의 투구 끈을 끊었고 아지발도가 놀라 입을 벌리자 바로 그의 '아가리'에 화살을 쏴 맞혔다. 혹은 그의 오른팔인 퉁지란(이지란)이 투구 끈을 끊자 이성계가 '아가리 '를 맞혔다고 한다. 아지발도가 죽자 왜군들은 삽시간에 무너졌다. -태조대왕실록- and -야사-
9.이성계가 함주 관아에 있을때 군사들을 불러 모아서 하는 말이 "내가 몇번째 소나무 가지에 몇번제 솔방울을 맞추겠다" 라고 한 다음 유엽전[화살의 일종]을 쏘니 7발을 쏘아 7발 모두 자신이 말한 솔방울에 명중했다. -태조대왕실록-
10.태종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자 태상왕이 된 태조 이성계는 1402년 옥새를 가지고 함흥으로 떠났는데. 그 뒤 태종이 태조에게 용서를 구하고자 사신을 보냈는데...... 태조는 멀리서 사신이 오는것이 보이자 사신을 활로 쏘아 죽였다고 한다.(함흥차사의 유래) 1338년생인 이성계가 1402년이면 64살인데 그 시절까지도 활 실력이 녹슬지 않았다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야사-
11.★★태조 이성계의 무용담 중에 Best of Best★★
---------------------------------------------------------------------------------------------------------★이성계가 군사를 이끌고 지리산 밑에서 왜군과 싸우는데 양 군의 거리가 200보나 되었다. 그 중에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등을 보이고 몸을 숙이고 손으로 엉덩이를 두드리며 도발을 하자.......이성계는 편전(애기살)을 사용하여 적장의 똥꼬 를 맞추었다고 한다. 이를 본 왜구들은 혼비백산하여 달아났다. -태조대왕실록-
[대략 이런 자세에서 맞았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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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만 보면 레골라스,윌리엄 텔,로빈 훗,주몽을 능가함은 물론이요 올림픽 양궁종목에 그가 출전한다면 '사기캐'가 되기 십상이다. 게다가 저 11가지중 7가지가 야사가 아닌 조선왕조 실록 태조대왕실록이라니...... 물론 조금 과장되게 표현했지만,그래도 저런 이야기가 괜히 쓰여지진 않았을 거라 필자는 믿기에 태조 이성계 그 가 뛰어난 명궁 아니 명궁을 넘어선 신궁(神弓)임을 인정하고싶다.
[함경도 함흥에서 소장중이라는 태조 이성계의 활이라는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태조 이성계가 세상을 떠난 지(1408년) 60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활은 멀쩡하다는 것이다. 사진이 흑백이라 이미 소실 됐는지 모르겠지만 사진의 년도로 측정해서 어림 잡아 500년 동안에도 그 모습이 온전하다니 가히 신궁이 다룬 활이라 할 수 있겠다.
이만 포스팅을 줄이겠다. 허접한 글 보신 분들 안구 버리지는 않았나 심히 걱정이 된다.
출처 - 네이버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