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뭐니 해도 중고 아파치 도입 문제였다. 국방부는 중고 아파치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나섰고, 국회의원들은 이를 질타하는 분위기였다. 오는 5월이면 대형공격헬기 획득방안에 대한 선행연구 결과가 나올 예정인 가운데, 국방부의 중고 아파치 도입 추진에 대한 불협화음은 여전하다.
중고 아파치 도입 검토가 처음 알려진 것은 지난해 5월. 중고 아파치 36대를 한국에 반값으로 판매할 수 있다는 미국의 제안이 국방부를 통해 알려지면서부터다. 당시 공격헬기의 전력공백을 우려하고 있던 국방부로서는 미국의 제안이 사실상 가뭄에 단비처럼 달가운 소식이었다.
물론 미국이 갑작스레 한국을 위해 선심을 쓴 것은 아니다. 알려진 바로는 미국이 아파치 블록I을 판매한 금액으로 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블록II를 블록III으로 업그레이드할 예정이다. 미국이 반값에 판매하는 이유야 어찌됐던 국방부는 육군의 노후 코브라 대체 헬기를 개발하는 데 8년이 걸리고, 이에 따른 전력공백이 생긴다는 이유를 들어 지난해 8월 합동참모회의를 통해 대형공격헬기 소요를 결정했다.
물론 이번 중고 아파치 도입건이 느닷없이 튀어나온 얘기는 아니다. 국방부는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아파치급 공격헬기 36대를 도입하는 AH-X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고, 실제로 2조 1천억원을 들여 당시 가장 유력했던 아파치 헬기를 도입하려 했다. 그러나 사업이 돌연 취소된 후 지난해까지 AH-X 사업은 갈팡질팡 하고 있던 차였다. 때마침 미국의 반값 판매라는 제안이 아파치 헬기를 도입하려는 국방부의 의지에 불을 댕겼고, 이에 따라 AH-X 사업도 급물살을 타게 됐다. 그러나 문제는 이 과정에서 아파치를 도입하려는 국방부와 이해 당사자들 사이에서 불협화음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파치 도입은 이미 낙점?
중고 아파치 도입을 반대하는 주장 중 하나로 천문학적인 비용발생을 꼽는다. 지금까지 알려진 비용만 하더라도 획득비용이 약 1조~1조5천억원, 한 해 유지비용이 약 1천억원이다. 여기에 더해 수명주기 30년을 고려한 대미(對美) 지불비용은 획득비용을 포함해 운용유지비 2조원 등 최소 3조원 이상 들어갈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가히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물론 반값 도입이라 국내에서 공격헬기를 개발하는 비용보다 저렴하다. 하지만 이들 전력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획득비용의 2배 이상 훌쩍 뛰어넘는다.
▲중고 아파치 도입시 수명주기 30년을 고려한 대미(對美) 지불비용이 최소 3조원 이상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중고 아파치 도입에 따른 비용이 이렇게 천문학적으로 들어가다 보니 당연히 KHP 사업 추진동력이 상실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올해 전력투자비 편성 부족액만 약 6천억원에 달하는데, 앞으로 중고 아파치 도입에 따른 예산이 추가되면 KAH(한국형공격헬기) 개발 예산 확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는 격이란 주장이다.
▲한국형기동헬기. 중고 아파치 도입에 따른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들어가다 보니 KHP 사업 추진동력이 상실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AH-X 사업과 별개로 KAH 개발을 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와 아울러 전력공백 방지와 KHP 사업으로 확보한 인프라를 유지하기 위해 KAH 개발을 조기에 추진할 수 있도록 관련부처와 협의하고 있다고 달랬다. 하지만 국방부의 이러한 발표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를 미덥지 않게 생각하는 여론은 여전하다.
이는 지난해 국방부가 올해 국방예산 중 KAH 연구개발 예산을 삭감하려 했기 때문이다. 국회가 연구개발 예산 10억원을 지난해 11월 복원하면서 이에 대한 논란은 일단락됐지만, 이를 계기로 지금까지도 국방부는 KAH 개발에 관심을 덜 기울이는 것처럼 비춰지고 있다.
실제로 육군 내부에서는 KAH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이 적지 않다. 특히 KHP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도 AH-X 사업을 계속 이끌고 왔을 정도로 대형공격헬기, 특히 아파치 공격헬기 도입에 대한 육군의 요구는 절대적이다. 이런 분위기가 조성되나 보니 육군 내부에서 개발이 보장되지 않는 KAH보다 아파치 공격헬기 도입 대수를 오히려 늘리고, 기존 500MD를 업그레이드하자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주목할 만한 것은 육군 내부에 반(反) KAH 기류가 흐른다는 점이다. 현재 KAI는 유러콥터와 협력, KUH(한국형기동헬기)를 개발하고 있는 상황으로, 오는 7월 시제 1호기에 대한 롤아웃을 실시하고, 내년 3월에는 KUH를 처음으로 하늘에 띄운다는 계획이다. 표면상으로는 KUH 개발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내부에서는 육군이 KAI와 유로콥터의 사업 진행에 대해 일부 불만족스러워했다는 얘기가 있다. 그런 만큼 육군 내 일각에서는 KAH에 대한 기대가 그리 높지 않다는 후문이다.
아파치는 500MD 대체용?
아파치 도입 명분에 대한 반대 여론도 드세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전력공백 부분이다. 현재 공격헬기전력 중 가장 시급하게 도태될 헬기가 바로 대전차 미사일이 장착된 500MD TOW. 지난해 21대를 시작으로 오는 2012년부터 20****까지 총 73대가 도태될 예정이다.
전력공백을 우려하고 있다는 국방부 발표대로라면 아파치를 도입하려는 2012년은 500MD가 본격적으로 도태되는 2012년과 맞물린다. 특히 육군의 주력 공격헬기인 AH-1 코브라가 20****부터 본격적으로 도태되고, KAH도 내년부터 개발에 착수, 20****에 전력화가 가능해지면 사실상 아파치 도입은 500MD 대체 효과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당연히 아파치 헬기 도입이 500MD 대체용이라는 얘기가 나올 만도 하다.
설령 아파치가 도입되지 않더라도 500MD가 보유한 전투능력이 미약해 전력공백에 대한 부담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란 주장도 내놓고 있다.
▲500MD가 보유한 전투능력이 미약해 500MD가 퇴역하더라도 전력공백에 대한 부담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란 주장도 내놓고 있다. / 육군
또 하나 제기되고 있는 문제는 아파치 헬기가 정작 500MD 전력을 대체하기도 힘들 것이란 점이다. 500MD는 지상군과 협동으로 근접전투에 운용되는 헬기인 만큼 지상군이 있는 모든 전선에서 운용돼야 하는데, 36대의 아파치로는 기존 500MD TOW 역할을 대신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결국 전력대체 효과도 없는 헬기를 막대한 비용을 들여 도입한다는 것은 전력공백 해소를 주장하는 국방부의 논리에도 맞지 않다는 것이다.
아파치는 종심작전용?
국방부가 아파치 헬기를 도입하려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유사시 아파치를 종심작전용으로 운용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현대전 개념에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헬기에 의한 종심작전(deep strike)은 말 그대로 적 지역 깊숙한 곳에 있는 전차 및 장갑차를 공격하는 작전으로 1980년대에 등장한 개념. 그러나 이라크전 및 코소보전 등을 통해 헬기가 휴대용 미사일 공격에 매우 취약하다는 것 등 헬기에 의한 종심작전에 문제가 제기되면서, 현재는 미국도 헬기를 이용한 종심작전은 더 이상 실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오늘날에는 정밀타격무기의 발전으로 항공기 및 지대지 미사일 등을 통해 종심작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추세여서 헬기 종심작전은 더욱 구시대적인 작전개념이라는 주장이다.
한국형공격헬기 성능 반토막?
중고 아파치 도입이 실제로 추진된다면 KAH가 반 토막 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는 아파치 도입에 따라 KAH의 사양을 당초 계획보다 크게 낮출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특히 고성능 헬기와 상대적으로 저성능 헬기를 운용(High-Low Mix) 하는 육군 헬기운용 개념을 감안하면 KAH의 요구성능(ROC)이 하향 조정돼 소형공격헬기 형태로 개발될 가능성 크다.
그러나 KAH는 향후 30년 이상 사단 및 군단급 작전에서 다양한 근접전투를 수행해야 할 주력 공격헬기인 만큼 오히려 우수한 성능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세다. 실제로 전술적 운용측면을 보더라도 공격헬기는 지속적인 전투수행능력이 필수다. 이를 위해서는 긴 항속능력과 다량의 무장탑재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 기체가 소형이고 무장 탑재능력이 떨어지면 지속적인 전투수행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기체가 소형이면 항속능력이 떨어져 재급유 및 재무장을 위해 전장을 자주 이탈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안전성 측면에서도 소형공격헬기 개발은 불가하다는 입장으로, 산악지형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계곡풍에도 작전운용이 가능한 중형급 이상의 헬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부품 없는 헬기 도입?
이미 사용된 중고 기체를 도입하는 만큼 후속군수지원 비용이 증가할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물론 항공기는 재생 및 업그레이드 등 수명연장사업을 통해 수명주기를 늘릴 수 있다. 하지만 수명주기를 늘린다 해도 30년 가까이 운용한 기체인 만큼 향후 고장 발생이나 수리부속 부족 현상이 증가할 것이란 주장이다.
실제로 2007년에 이미 18개 품목에 대한 부품 단종 문제가 제기됐고, 이 영향을 받는 아파치 헬기 수도 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198대를 포함해 총 535대에 이를 것으로 분석된 바 있다. 특히 아파치는 해외에서 도입되는 장비여서 수리 부속 확보는 더욱 힘들고, 외주정비에도 많은 시간이 소요돼 결국 가동률도 저하될 것이란 지적이다.
후속군수지원 비용 문제와 함께 노후 동체 및 부품에 대한 신뢰성도 의문스럽다는 주장이다. 현재 국방부가 도입하려는 중고 아파치는 1980년대 중반에 생산된 기체로 동체 등에 대한 재생이나 교체 없이 도입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만큼 도입 이후 운용에 적지 않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2007년에 이미 18개 품목에 대한 부품 단종 문제가 제기됐고, 이 영향을 받는 아파치 헬기 수는 총 535대에 이를 것으로 분석된 바 있다. / 미 육군
아파치, 전략무기인가 전술무기인가
이처럼 아파치 도입에 대한 반대 주장이 거센 가운데 찬성하는 주장도 설득력을 키워가고 있다. 아파치 도입을 찬성하는 주장의 핵심은 바로 아파치가 가지고 있는 전략적 가치. 아파치가 근접전투를 수행하는 전술적 가치보다, 전쟁을 억제하는 전략적 가치에 더 무게를 둬야 한다는 주장이다.
육군헬기 조종사 출신인 한 군사전문가는 “무기체계를 도입하는 것은 전투를 수행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전쟁을 억제하기 위해 도입하는 목적도 크다”면서 “아파치 도입을 전쟁억제 차원에서 평가할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주한미군의 아파치 헬기를 예로 들면서 “단순한 전투자산이 아니라 지금까지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전력으로 기능한 부분도 사실상 많았다”고 덧붙였다.
▲지금까지 주한미군의 아파치는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전력으로 기능한 부분도 사실상 많았다. / 박병우
아파치 도입을 찬성하는 주장에 따르면 아파치는 비단 전쟁억제 기능 외에도 국지전이 발생했을 경우 신속대응전력으로서 단기간 내에 결정적 투사도 가능한 전력이다. 즉 적 도발을 조기에 저지시킬 수 있는 전력이란 얘기다. 대표적인 예로 적 특수부대의 해안침투 저지를 들 수 있다. 현재 북한은 특수부대 침투용인 20인승 공방급 공기부양정을 130여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기습침투용으로 운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만약 이들 공기부양정들이 기습침투를 감행할 경우 해상에서의 무력화는 필수다. 이에 대해 신속한 기동성과 강력한 무장운용 능력을 갖춘 대형공격헬기가 현재로서는 가장 효과적인 방어수단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실제로 AH-64D 아파치 롱보우의 무장능력을 보면 70mm 로켓 38발과 분당 약 630발을 발사할 수 있는 30mm 자동기관포, 사거리가 8km 이상인 헬파이어 대전차 미사일 8발을 동시에 탑재할 수 있다. 특히 최대 256개의 표적을 추적할 수 있는 레이더와 적외선장비 및 조종사 야간투시경 등 야간작전을 위한 장비들도 장착돼 있어 해상으로 침투해 오는 고속이동 표적을 무력화하는 데 가장 적합한 기종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PAASM(Precision Attack Ait-to-Surface Missile)과 같은 사거리가 최대 20km에 달하는 헬기 탑재용 공대함(지) 미사일도 개발돼 이를 운용할 경우 아파치의 공격능력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한국국방연구원에서 발행된 <05 국방예산 분석·평가 및 06 전망>에 따르면 한국군의 군사적 능력은 전면전에 집중돼 있고, 주한미군의 군사적 능력은 분쟁 및 위기 억제에 집중돼 있다. 여기에서 AH-X는 국지전 발생시 신속대응전력으로 분류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신속대응전력 범주에 속한 주요 전투자산에는 AH-X를 비롯해 차세대 전차 및 신형 자주포, KDX-III, F-15K, 차기전투기(F-X) 등 포함돼 있다.
물론 아파치는 전쟁억제 및 신속대응 전력으로서 기능할 뿐만 아니라 기존 공격헬기가 수행하는 근접전투 임무도 수행할 수 있다. 즉 아파치는 평시 전쟁억제에서부터 전시 근접전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는 만큼 한국군에 오히려 꼭 필요한 전력이라는 주장이다.
[출처 월간항공 김재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