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하 계획에 대한 브리핑을 듣고 있는 승무원들
1945년 8월 6일 새벽 2시 45분 12명의 승무원과 4.5톤의 폭탄을 실은 에놀라게이 호는 티니언을 떠났다. 약 15분 뒤 2천 1백m 고도에서 연속 총 11단계를 요구하는 섬세한 조립작업에 들어갔다. 승무원 가운데 어떤 중사는 아직도 임무를 확실히 모른 채 티베츠에게 "대령님, 질문이 있는데 우리가 혹시 원자핵을 분열시키려는 것 아닙니까?"하고 물었다.
출격 대기 중인 에놀라 게이
티 베츠는 그 중사를 뻔히 쳐다보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도 그 단어를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포로로 붙잡힐 경우 각자 자유재량으로 사용하도록 승무원들에 제공할 청산가리 캡슐을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아무에게 말하지 않았다. '꼬마소년'의 플러그를 갈아끼우고 투하준비를 완료했을 때 비로소 티베츠는 기내 방송장치를 켜고 "우리는 세계 최초의 원자폭탄을 수송하고 있다."고 말했다.
히로시마에 쓰인 원자폭탄 "little boy"
오전 7시 9분 히로시마 라디오 방송은 공습경보를 발령했다. 기상 정찰용 B-29의 접근을 경보한 것이었다. 에놀라 게이 호는 8시 12분 드디어 폭격개시점에 도달했다. 일본 레이더는 이것을 놓치고 히로시마 30km동쪽에 위치한 지상 감시소가 B-29기 접근을 보도했다. 폭탄에 지장을 초래할 일본 레이더의 전파는 없었다. 08시 15분 폭격수는 "폭탄투하"하고 소리쳤다.
"에놀라 게이호"가 아군기의 엄호 속에 투하를 위해 비행하고 있다.
순식간에 섬광이 나타나고 그 충격파 때문에 비행기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인형처럼 내던져졌다. 승무원 가운데 한 사람은 그 순간 녹음기록을 역사에 남겼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후에 생긴 버섯구름...
히로시마의 원폭 투하 장면이다.
"연기 기둥이 급속히 솟아오르고 있다. 그 속에는 화염의 붉은 핵이 보인다. 자줏빛과 회색의 이글거리는 덩어리가 그 붉은 핵과 함께 보이고 있다. 그것은 온통 광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불길이 마치 거대한 용광로에서 내뿜는 화염처럼 솟아오르고 있다. 도시는 그 밑에 있음이 틀림없다."
오후 2시 58분, 에놀라 게이 호는 티니언 섬으로 무사히 귀환해 착륙했다. 이튿날 트루먼 대통령은 원자폭탄 사용에 관한 성명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만약 일본이 아직도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또다시 사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투루먼 대통령
원폭소식을 들은 히로히토 천황은 대경실색하고 말았다. "우리는 불가항력에 머리를 숙여야 하오. 과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라도 우리는 가능한 한 속히 전쟁을 끝내야 하오."라고 말했다.
히로히토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한 박스카의 기체사진
위의 글은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한 "ENOLA GAY"의 원폭 투하일의 정황이다.
그리고 이 글의 제목인 "The buck stops here."은 투루먼 대통령이 일본에 대한 원자폭탄
의 사용을 허락하면서 전쟁의 끝을 알리는 유명한 한마디 였다.
원자폭탄은 모든것을 송두리째 없애버리며 길고 거대했던 전쟁에 마침표를 찍었지만..
다른 한곳에선 지옥의 시작을 뜻하기도 했다.
히로시마의 여성 원폭 피해자의 사진이다.
히로시마엔 우리 민족도 많이
있었다 한다.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던 토머스 패러비 대령은 2003년 3월16일에 81세의
나이로 플로리다에서 사망했다. 패러비 대령보다 3일 후에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한 커미트 비한 대령은 1989년에 사망했다.
투루먼의 재가로 원폭이 투하됨에 따라 대전은 끝나게 되었지만,,
다른 전쟁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