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전초 GOP(General Outpost)
'주력부대를 방호하기 위하여 운용되는 부대'가 정확한 뜻이지만,
일반인들에겐 '휴전선', '산골짜기', '지뢰가 잔뜩 묻힌 곳' 등의 이미가 더욱 친숙한 곳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따뜻한 봄날, 강원도 중부 전선의 어느 GOP 소초를 지키는 사람들의 일상을 기록하고 왔다.
군용 짚차를 타고 소초로 향하는 길.
곳곳에 보이는 지뢰 경고판은 지금 내가 가고 있는 목적지가 어디인지
명확하게 알려주는 듯 했다.
마침 내가 소초에 도착했을 때, 경계근무 투입을 앞둔 소초원들에게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게임과 운동, 노래방 이용으로 달콤한 휴식을 취하고,
밀리 빨래와 너저분한 머리를 다듬기에 그 자유시간은 너무나 짧은 듯 보였지만
이미 소초원들은 그 소중한 시간을 어떻게 써야할 지 알고 있었다.
모두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은 아니었다.
동료들이 달콤한 휴식을 즐기고 있을 때, 소초원 전체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취사병의 몫이다.
GOP 지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과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기록하고
상급부대로 보고하는 상황병에게도 '자유시간'은 과분해 보였다
부대가 가진 탄 보유량을 일일히 확인하는 일도 그들이 낮에 해야할 과업 중 하나이다.
실타을 사용하는 부대인만큼 '실탄실셈'은 꽤나 손이 가고 신경을 써야하는 일이라고...
태풍의 눈 안에 있는 배의 선원들이 이런 느낌일까...
긴장감이 가득 차 있을 것만 같았던 최전방이 그들의 평범한 일상과 교차되며
평화롭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때...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DMZ 비무장 지대 안쪽에서 산불이 발생한 것....
북한군은 아직 재래식 화전농법으로 현지에서 식량을 조달하는 전술을 구사하기 때문에
가끔 강풍을 타고 불씨가 남쪽으로 번져온다는 것이 부대 정훈장교의 설명.
보안고 안전상의 문제로 산불이 난 지역을 촬영할 수 없었던 것이 못내 아쉬웠다.
산불은 순식간에 모든것을 태워버렸다.
인원출입이 극도로 통제된 곳이라 불이 더 이상 남쪽으로 진화하지 못하도록
맞불을 놓는 것 이외엔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한다.
남방한계선에서 비무장 지대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출입문인 '통문'
이곳을 지키는 것 역시 소초원들의 중요한 임무였다.
통문에 설치된 여러개의 열쇠만큼이나 이곳을 지키는 병사들의 얼굴에도 굳검함이 배어 있었다.
경계근무 중 근무자들이 잠시 쉬기 위해 머무른다는 한 대기초소 안을 들여다 보았다.
서너 평 남짓의 좁은 공간.
몇권의 책, 조그만 냉장고, 그리고 벽에 걸린 작은 거울 뿐인 곳이었지만
그곳은 고된 경계근무 중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이다.
소대장에게 근무신고를 마치고 간이 탄약고에서 꺼낸 실탄을 받아들면서부터
비로소 그들의 본격적인 하루가 시작되는 셈이다.
각자의 근무지로 투입되기 전 서로의 무사 임무수행을 위해
동료들을 껴안아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60도에 이르는 경사각, 수백 개의 돌계단이 빼곡히 들어선 그들의 순찰로.
이 험준한 지역을 새벽까지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에 새삼 그들의 노로가 느껴졌다.
한 경계 근무자의 왼손이 늘 철책에 붙어 있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GOP 밤은 남북의 군사적 대치상황과는 별개로 고요하기만 했다.
바람에 미동조차 없는 어느 대공초소,
그 위로 알알이 들어찬 별 만큼이나
그 곳을 지키는 그들의 두 눈은 24시간 빛나고 있었다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거쳐온 곳,
어쩌면 우리의 아들들이 또 바톤을 이어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분단국가 임에도 이렇게 평온한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여지껏 그들의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오늘도 GOP 155 마일을 그들 손에 맡긴다.
부대의 애칭처럼 늘 '승리'하는 영광이 그들과 함께 하기를 기원하며....
[출처 글 / 사진 : 한국국방안보포럼(KODEF) 손민석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