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천 대회전

슈퍼스탈리온 작성일 09.05.25 22:3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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奉天 大會戰(대회전), -러일전쟁의 분수령

1905년 3월 1일 러일 전쟁의 최후의 대규모 지상군 전투인 봉천(奉天 : 펑텐, 현재의 선양瀋陽)회전이 시작되었다. 러일 전쟁은 한 해 전인 1904년 2월 10일 일본의 선전포고로 시작되었다. 일본군은 압록강에서 러시아군을 격파하고 만주로 진출했으며 전쟁 준비가 부족했던 러시아군은 요양(뤄양-遼陽) 전투에서 패배하는 등 밀리는 형국이었다.

  일본군이 해가 바뀐 이 해 1월 막대한 희생을 낸 끝에 여순(뤼순-旅順)공략에 성공하자 일본군 만주군 총사령부는 뤼순의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 군을 포함한 전 병력을 집중시켰다. 러시아군을 일거에 섬멸함으로써 전국(戰局)을 결정하려고 한 것이다. 일본군이 집결시킨 총병력은 5개 군 25만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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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러시아군도 봉천(奉天)에 총병력 32만 명을 집결시켰다. 러시아군은 11개 군으로 3개 병단을 구성하였다.

  대치하던 양군은 마침내 3월 1일 전투를 개시했다. 그리하여 총 57만명이 움집하는 봉천 대회전(大廻戰)이 시작된 것이며, 만주에 대한 주도권역시 봉천 대회전의 승패에 달려 있게 되었다.

 

 

1905년 1월, 일본군은 여순을 간신히 점령한 3군을 뒤로한 채 동청철도 남만주 지선을 따라 전력을 북상시키고 있었다. 1월 25일, 만주지구 러시아군 총사령관 쿠로파트킨 대장은 헤이커우타이에서 러시아 1·2·3군으로 맹공을 퍼부어 일본군을 위기에 빠뜨렸으나 결정타를 날리는 데는 실패하고 봉천 남방의 방어선으로 퇴각했다. 쿠로파트킨은 결전을 회피하고 일본군을 만주 깊숙이 끌어들여 고사시킬 요량이었다.

 러시아군은 2월 말에 다시 일본 2군에 대한 역습을 기도했다. 그러나 1·11사단으로 편성된 일본 압록강군이 좌익을 파고들자 방어로 전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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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를 엿본 일본 만주군 총사령관 오야마 대장은 북상하는 3군이 러시아군 우익으로 진출해 후위를 위협하는 동안 중앙에서 총공세를 펴 봉천을 함락시킬 계획을 세웠다.

 37만 병력의 러시아군에 대해 25만 일본군은 1000여 문의 야포를 동원, 2월 25일 정면 공격을 개시했다

 

하지만 중앙 공격이 지지부진하자 오야마는 3군의 선전을 기대했으나 3군도 여순 전투의 후유증으로 병력이 3만8000명에 불과했고, 러시아군의 역습에 허덕이며 한계에 봉착했다.
 그런데 쿠로파트킨 대장은 이때 치명적인 오판을 내렸다. 여순 전투의 주역 일본 3군의 전력을 10만 수준으로 과대평가하고 러시아군의 핵심 보급선인 동청철도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3월 6일, 러시아군은 봉천 방어선에서 병력을 빼내어 일본 3군 전면으로 증원하기 시작했다. 이어 9일에는 봉천까지 포기하고 하얼빈 방향의 티에링에 새로운 방어선을 수립하라는 전면 퇴각 명령이 내려진다. 
 이렇게 하여 일본군은  단 하루만에 봉천에 입성할 수 있었다. 즉 전투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러시아군의 퇴각으로 인한 부수적인 결과였던 것이다.
  일본군은 1905년 3월 10일 봉천에 입성했으나 그간 발생한 사상자만 해도 7만5000명이나 되었다.

 일본은 3월 10일을 육군 기념일로 제정할 만큼 봉천 전투의 표면적 승리에 고무됐으나 실상은 훨씬 참담했다. 러시아군의 손실은 4만여 명의 포로를 제외하면 사상자 5만 정도로 오히려 양호했으며, 쿠로파트킨의 원래 의도대로 일본군은 보급과 충원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이 회전 결과 일본은 전력의 한계를 느껴 이후 대규모 작전을 기획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앞서 지적하였듯이 쿠로파트긴의 장기전 구상은, 당시 불안정한 재정 러시아의 사정을 고려해 볼 때 적절치 못한 전략이었다.
 이 전쟁에서 러시아 군이 숫적 우세를 바탕으로 좀더 밀어부첬다면, 일본군을 만주방면에서 밀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상 전투에서 일본군이 패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일본군은 1905년에서 1907년 사이 일어난 1차 러시아 혁명운동에 힘입어, 전세를 역전 시킬 수 있었다. 만주 주둔 러시아 군이 정면대결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동안, 결국 러시아 혁명이 심화되어 제정 러시아는 부득이 군대를 철 수 시킬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일본군으로서는 마치 원제국이 일본을 침범하였을 때 처럼 천운을 얻어 최종 승리를 한 셈이었다

 

 

 

 

자료제공 :두산백과사전 중에서...

 

 

 

삼 가 고 인 의 명 복 을 진 심 으 로 빕 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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