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틱함대의 출항 - 한반도를 향하여

슈퍼스탈리온 작성일 09.05.27 20:3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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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틱함대의 출항 - 한반도를 향하여

 1904년 2월 10일 공식적으로 시작된 러일전쟁에서 일본은 연이은 승리를 하며, 초반 유리한 전황을 이끌어 나갔다.
 하지만 2월 8일 제물포 해전에서 선전포고도 없이 제물포에서 러시아 함 2척을 격파한데 이어, 2월 9일에는 여순항마저 기습공격하여 3척의 함대를 격파하였다. 물론 이정도의 피해가 러시아해군 전체의 전력으로 볼 때 대단한 것은 아니었지만, 일본은 이 기습전을 통해 한반도 서해안에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고, 대러시라에 대해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충전시켜 주기 충분하였다.  


 일본은 기습공격의 승리에 힘입어 여순을 점령 정박중이던 러시아 함대를 대파시켰고, 뒤이어 봉천대회전에서 승리하여 요동일대를 장악하게 되었다.
 이렇게 육지와 바다에서 러시아는 이따라 패배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전황은 러시아에게 결코 분리하지 않았다. 그것은 바로 러시아가 자랑하고 있는 최강의 발틱함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발틱함대만 출항한다면, 단숨에 대한해협을 장악하여 요동일대의 일본군과 일본본토와의 연결고리를 완벽하게 차단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마치 1592년의 임진왜란 처럼, 일본은 육지에 고립되어 결국 항복하게 되고 말것이다.

 발틱함대는 제정러시아 해군의 주력함대로 러시아에서 가장 역사가 오랜 함대이다. 러시아와 스웨덴 사이에 벌어진 북방전쟁(1700-21) 당시 표트르 1세가 창설하였으며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발트해 최강 함대가 되었다. 1904년에는 페테르부르크에 해군공창이 설치되어 수병과 하사관도 양성하게 되었다. 표트르1세가 죽은 뒤 함대건설은 한동안 중단되었으나, 1960년대에 들어 다시 강화되어 18세기말 러시아는 영국과 프랑스에 이어 함대수에서 세계 제3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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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 발틱함대가 불리한 러일전쟁의 양상을 바뀌기 위해 한반도를 향해 출항해야 되었다. 폴란드 북편 발트해에서 출발하여,유럽대륙을 빙돌아 지중해를 건너 다시 이집트 운하를 통과해야만 했다. 

전황이 불리함을 느낀 러시아 니콜라이황제는 북해에 주둔중이던 발틱함대의 동해 파견을 위해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게 해달라고 운하 운영권을 가지고 있었던 영국 에게 요청했다

 

 

1904년 10월 14일 봉쇄된 여순을 구출하기 위해 발트 함대가 발트 해의 리바우 항을 떠났다. 함대 사령관은 56세의 로제스트벤스키(Рожественский) 해군중장이었다. 그러나 휘하의 사병들은 대부분 발트 지방의 농민 중에서 징집한 자들로 훈련이 미비했고, 장교들도 대부분 실전 경험이 없었다.
발트 함대는 모두 42척으로 구성되었는데 대부분 아주 오래 된 것이었고 4척의 전함과 4척의 순양함만이 갗 취역한 새 군함이었다. 한꺼번에 출항하지는 않았고 1,2,3 진으로 나누어 시차를 두고 출항했다.  

그런데1902년 영-일동맹을 맺은 바 있는 영국은 니콜라이 황제의  요청을 거절했고, 그리하여 발틱함대는 가뜩이나 먼 항해에, 아프리카 해안을 완전히 일주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 히망봉을 경유해야만 했다

무려 1만8000마일(2만 8800km)을 달리는 지구 한바퀴를 일주하는 것과 맞먹는 대항해의 시작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장장 7개월이나 걸리는 대 원정은 러시아 해군은 물론이고 세계 그 어느나라도 경험해 보지못한, 그야말로 세계 해전 역사상 전무후무한 최장거리의 항해였다

1905년 1월 초 발트 함대는 마다가스카르 섬의 서쪽에 위치한 작은 섬인 노시베 섬에 기항하였는데 이 곳에 머무는 동안 여순 요새가 함락되었다는 비보를 들었다. 발트 함대는 블라디보스톡으로 가라는 새로운 명령을 받았다. 그런데 발트 함대는 군함의 연료인 석탄 문제로 2개월이나 노시베 섬에 머물러야 했다.

당시 발트 함대가 항해 중 소요한 석탄은 독일의 함부르크-아메리카 석탄선과의 전세계약을 통해 공급받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발트 함대가 노시베 섬에 머무는 동안 계약 만료가 되었다. 독일이 계약 연장에 비협조적으로 나와서 2개월을 섬에서 허비해야 했다. 열대의 더위와 익숙하지 않은 음식, 그리고 풍토병을 견디던 발트 함대 장병들에게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다.


또3월 중순 발트 함대는 노시베 섬에서 출항하여 4월 8일 말라카 해협에 도달하였다. 4월 14일에는 인도차이나 반도의 캄란 항에 기항하였다. 캄란 항에서 다시 석탄 등을 보급 받은 발트 함대는 5월 9일 3진이 도착하여 총 38척으로 늘어났다. 이어 캄란 항에서 96km 북쪽에 위치한 반퐁 항에 다시 기항하였다. 



 1905년 4월 발틱함대는 인도차이나 반도의 캄란만에 도착하게 되었지만 이미 뤼순항의 극동함대는 일본에 함락 당한 후 였고, 장병들의 사기는 떨어질 대로 떨어져 있었다. 처음에 극독함대가 합류하여 일본해군을 제압한다는 계획은 항해도중에 완전 무의로 끝나고 말았다.

 그리고 이미 오랜 항해로 지쳐있었던 발틱함대로서는 볼라디보스톡으로 가는 최단항로인 대한해협을 선택하는 것외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전열을 가다듬은 발틱함대는 배의 연료로 쓰이는 석탄을 보충하고 불필요한 보조 함선을 상하이로 들여보낸 후 1905년 5월 14일 블라디보스토크로 항진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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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제공 : 두산백과사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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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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