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日政 때 조선인 징병 1기 해당자로 금년에 86세가 됩니다. 우리 세대의 해는 이미 저물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그나마 앞으로 얼마 안 있어 모두 사라질 겁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들의 세대는 영원히 침묵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꼭 해두고 싶은 말을 지금부터 하겠습니다.
일본 자살 특공대 神風 대원이었던 경남 사천시 출신 탁경현씨가 1945년 5월 11일 비행기를 몰고 오키나와 섬에 정박 중이던 미군 함대를 향해 돌진, 자폭하여 생을 마감했던 바로 그날, 저는 당시 대전에 있었던 일본군 제224부대 병영 안에서 징집된 육군 일등병으로 폭약상자를 등에 메고 적군의 전차 밑으로 뛰어들어 자폭하는 훈련을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만일 전쟁이 몇 달만 더 끌었더라면 저는 아마 어느 전선엔가 보내져서 훈련받은 그대로 인간 지뢰가 되어 적군의 전차 밑으로 뛰어들어 죽었을 것입니다. 그랬더라면 저와 탁경현씨는 지금 똑같이 반민족행위자라는 말을 듣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탁경현씨가 죽은 후 석 달 만에 우리나라는 해방이 되었습니다. 그 해방은 우리가 싸워서 얻은 성과가 아니고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상황의 돌변에 의하여 저절로 주어진 요행이었습니다. 어쨌든 그 해방 덕분으로 그때까지 살아남았던 저는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와 6·25전쟁 때 경찰전투요원으로 참전하였습니다. 지금은 국가유공자로 대우받으면서 안락하게 살고 있습니다. 반면 그때 죽었던 탁경현씨는 일본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 반민족행위자라 하여, 외로운 넋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조차 같은 동족들에 의하여 거부당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불공평합니다. 살아서 국가유공자 행세를 하고 있는 제가 죄스럽고 부끄럽습니다.
탁경현씨와 저는 나이도 그 당시 20대 전반으로 같은 세대였습니다. 저희들 세대는 태어나면서부터 일본 국민이었습니다. 그것도 무기력하게 나라를 잃은 선대들의 원죄를 물려받아 병역의무가 없는 대신 참정권이 없어 일본인들로부터 온갖 차별을 받는 열등한 2등 국민이었습니다. 그 서러움은 젖먹이 나이 때부터 일본에서 자라난 저에게는 더욱 직접적으로 피부에 와 닿았습니다.
같은 동족 어른들 사이에서 '조선 독립'이라는 속삭임이 간혹 어렴풋이 들리긴 했지만, 그것은 시궁창에서 살고 있는 소녀가 꿈속에서 신데렐라를 보는 것만큼이나 현실성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었고, 이어서 조선인에게도 병역의무가 주어져 저 자신이 징집 1기에 해당되게 되었습니다. 사실이지 두려웠습니다. 죽는 게 무서웠습니다.
그런데 그 무렵부터 저희들을 대하는 일본인들의 태도에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바로 대놓고 '朝鮮人' 하고 민족을 卑下하여 부르던 그들이 그 말을 쓰는 것을 스스로 금기시하게 되고, 대신 지역을 말하는 '半島人'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저에게 "너희들에게도 곧 참정권이 주어져서 우리들과 같은 권리행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일본인 친구가 늘어났습니다.
저는 저희들에게 주어진 병역 의무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즉 우리들이 전쟁터에 나가서 죽는 대가로 뒤에 남은 동족들의 지위가 크게 향상되리라는 것을 믿게 된 것입니다. 저에게는 징집 영장이 바로 오지 않고 본적지 면사무소에 와서 영장을 받아 입대하라는 면장으로부터의 전보가 전달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난생 처음 보는 고향 면을 찾아가 하룻밤을 자고 이튿날 국민학교 교정에서 열린 환송행사에 다른 입대 장정들과 함께 참석하였습니다. 많은 고향 어른들이 저희들의 장도를 격려해주셨고, 고향 후배인 학생들이 손에 손에 깃발을 들고 흔들면서 환송을 해주었습니다. 저희들은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당당하게 입대하였습니다. 기왕에 죽을 바엔 일본인 병사들보다 더 용감하게 죽어서 조선 젊은이의 기개를 보여주려고 하였습니다. 어리석었을 지는 몰라도 사악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상이 반민족행위자인 저의 변명의 전부입니다.
고향에서 제가 보았던 환송행사가 사실은 일본의 강압에 의해 이루어진 거짓 행사였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모두 내 탓은 아니고 남 탓이었을까요? 우리들 가운데 어느 한 사람도 나라 잃은 선대들의 원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서 이제는 구차스러운 변명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다만, 지금 반민족행위 시비에 휘말리고 있는 세대의 대부분이 어떻게 되어서이든 간에 잃었던 나라를 되찾고 6·25전쟁에서 나라를 지켜냈고 오늘의 대한민국 위상을 이루는 데 기초를 닦은 세대이기도 하다는 것만은 기억해주십시오.
이번에 만들어진 '친일인명사전'인가에는 일본군에 복무했던 사람들 가운데 일정 계급 이상의 장교는 넣고, 그 이하의 저와 같은 사병들은 개처럼 강제로 끌려갔던 보잘 것 없는 희생자라 해서 너그럽게 용서하여 이름을 뺐다더군요. 그렇다면 그 명부에 등재된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질 능력이 있는 완전한 인격을 갖추었고, 이름이 빠진 저희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질 능력조차 없는 책임무능력자란 말입니까? 이건 우리 세대 전체에 대한 모독입니다. 넣으려면 계급의 고하를 막론하고 다 넣어야 했습니다. 군인은 장교건 사병이건 넓은 의미에서 모두가 병사입니다. 임무를 위해 내던지는 목숨의 무게는 모두 같으니까요.
계급 고하를 막론하고 당시의 일본군인이었던 자를 모두 반민족행위자 명부에 넣었더라면 우리들의 마음은 차라리 편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면죄부 뒤에 숨고 싶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덧붙이겠습니다. 6·25전쟁 중에 다부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나라를 백척간두에서 지켜낸 자랑스러운 국민적 영웅을 일본군 하급장교였다는 이유로 반민족행위자로 규정지은 것은 마치 그가 한때 로마의 관리였다는 전력을 들어 저 위대한 성자인 바울을 악마로 몰아세우는 것과 다른 것입니까? 지금에 와서 과거의 역사를 심판하여 단죄하려는 사람들은 좀 더 폭넓고 열린 마음으로 사리를 판단하였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자료제공 : 조선일보 / 우수용씨 인터뷰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