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21 보병전투장갑차는 지난해 11월 30일 육군20사단 사자대대에 처음으로 야전 배치돼 12월 14일부터 첫 야전
훈련을 가졌다.
양산형으로 출고된 K-21이 최종 시험평가 중 40mm 기관포의 위력을 과시하고 있다. <박흥배 기자>
본지는 인기 기획연재 기사였던 국방과학연구소(ADD)의 국산 무기체계 개발 비화 시리즈 ‘철모에서 미사일까지’를 새롭게 연재합니다. ‘철모에서 미사일까지’는 2001년 10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5년여간 매주 1회 연재됐습니다.
이 기간 동안 현재 우리 군의 주력 장비로 자리하고 있는 공군기본훈련기 KT-1, 단거리 지대공유도무기 천마, 155㎜ 신형자주포 K-9, ‘전방감시용 열상장비(TOD)’, 텅스텐중합금 관통자, 소형 잠수함 ‘돌고래’, 그리고 중·경어뢰 ‘백상어·청상어’의 개발 이야기를 다뤄왔습니다.
이어 휴대용 대공유도무기 ‘신궁’이 본지의 자매지인 월간 ‘국방저널’에 2007년 3월부터 11월까지 6회에 걸쳐 연재되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연재를 통해 우리 국산 무기체계의 우수한 성능은 물론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진의 숨은 노력과 애환을 드러내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제 새롭게 연재의 문을 여는 무기체계는 세계 최고의 성능을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K-21 보병전투장갑차입니다.
현재 야전에서 병력수송용 장갑차로 활약하고 있는 K200의 개발 이야기를 포함해 K-21의 개발과정부터 전력화에 이르기까지의 연구개발 스토리를 다룰 예정입니다. 편집자
지난해 11월 30일. 이날은 K-21 보병전투장갑차(IFV:Infantry Fighting Vehicle)가 육군20사단 사자대대에 첫 배치되는 날이었다. 11월 초에 체계종합업체인 두산 DST로부터 K-21이 곧 출고와 함께 전력화가 이뤄진다는 소식을 듣고 나름 이날을 꽤나 고대해 왔다. 야전 전투부대에 취재를 가 본지가 얼마만인가. 1년도 훨씬 넘는다.
어둠은 물러갔지만, 잔뜩 흐린 날씨. 비가 내렸는지 바닥은 젖어 있고 안개마저 잔뜩 끼어 스산하다. “왜 이런 무기들은 연말이 다 돼서야 야전에 배치되는지 몰라. 원래 사업 기간이 그리 짜여져서 그런지 몰라도 따뜻하고 좋은 날로 잡을 수는 없나.”
씨익 웃어 가며 달리던 후배 기자가 갑자기 외친다. ‘아, 저기요!’ 약간 왼쪽으로 시선을 주니 반대편 차로 주유소 옆에 K-21을 실은 긴 트레일러 차량이 멈춰 서 있다. 눈이 번쩍 뜨이는데 그 순간, 급정거할 수 없는 차는 이미 그 곁을 스치고 말았다.
K200 첫 배치 이후 25년 만에
돌이켜 보면, 우리가 개발한 첫 장갑차 K200이 이 육군20사단의 한 기계화보병대대에 처음 배치된 것이 1984년 12월 28·29일이다. K-21이 배치되는 이날로부터 꼭 25년에서 한 달이 모자란다. 그날은 어땠을까. K200 개발 이야기를 다룬 단행본 ‘우리가 만든 장갑차 - 개발에서 수출까지’에는 이때 분위기를 이렇게 적고 있다.
“20사단으로서는 한국 초유의 국산 장갑차를 처음 맞이한다는 기대에 들떠 있었다. 12월 28일 세밑의 찬바람은 귓불을 때렸다. 차량이 야간에 도착해 하차를 하는 데에도 여간 우여곡절을 겪지 않았다. 적절한 하차 장비가 준비되지 않았던지라, 하차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튿날 연병장에 보기 좋게 도열된 장갑차 앞에서 민병돈 장군(당시 20사단장)은 장갑차 개발이 지니고 있는 역사적 의미와 특히 최초로 전방(현장)에 배치된 납품 당일 날의 역사적 의미를 또한 강조했다.”
사자대대 입구로 들어섰다. 사자대대임을 알리는 대형 안내판에는 K-200장갑차가 대문짝만하게 그려져 있다. 이제 이것부터 바꿔 세워야 할 듯싶다. 근처에는 두산DST 관계자도 카메라를 든 채 K-21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어제( 지난해 11월 29일) 오후 3시에 창원에서 출발해 조금전 7시쯤 근처에 도착했다”고 들려줬다. 트레일러가 연병장까지 곧바로 갈 수 없어 K-21을 중간에 하차시켜서 가야 한단다. 큰 도로에서 대대로 오는 길을 보니 25년 전에 겪었던 하차 우여곡절이 비슷하게나마 재현될 판이다.
역시 그러했다. 세 대의 트레일러가 저 멀리에 멈춰 선 채 오지를 않는다. 2차선 도로 한쪽으로 아주 붙이다시피 했는데 버스 한 대가 그 옆으로 지나가느라 온갖 애를 다 쓴다.
K-21을 하차시키고, 트레일러를 돌릴 곳이 마땅치 않아 대대 정문 앞으로 왔다. 이 공간도 충분치 않아 보이는데 트레일러는 신묘하게 방향을 전환한다. 그렇게 K-21 몇 대가 계속 하차하고 트레일러가 돌기를 반복했다.
감회와 각오가 새롭다
연병장에 도열한 K-21에 장병들이 기관총을 올리고 앞 가슴 부분에 사단 마크도 붙인다(함께 도색돼 오지는 않았다). 통신 안테나도 달고 빨갛고 노란 수기를 달자 비로소 40mm 기관포를 앞세운 K-21다운 ‘포스’가 살아난다. 단단하고 날렵하고 또 듬직해 보인다.
그런데 대대 장병들은 “(K-21이) 드디어 왔다”는 표정이지만 남다른 감흥, 그러니까 K-200 때의 ‘역사적 의미’ 같은 들뜬 분위기를 찾기 힘들다. 이유인 즉 간단했다. 1년 6개월여 동안의 K-21 시험평가가 대대에서 진행된 탓에 이미 K-21과는 이미 친숙한 상태라는 것이다. 싱겁다 싶었는데, 원영록(중사) 정비반장이 준비된 듯한 멘트를 날려준다. 하지만 사단 마크가 붙은 K-21을 영내에서 보니 이제 ‘내 장비, 우리 장비’라는 생각에 감회와 각오가 새롭다.
조종수 이경민 병장은 조종수답게 “K-21은 힘찬 파워와 변속기가 자동이라는 점이 매력”이라며 “최강 K-21의 첫 조종수라는 점에 가슴 뿌듯하다”고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K-21을 인수하기 위한 행사는 간소하게 치러졌다. 20사단장을 비롯해 예하 여단장·대대장 등 주요간부들과 엄항석(예비역 육군소장) 두산DST 대표이사를 비롯한 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엄 대표이사는“잘 운용해 달라”고 당부했고 20사단장은 “최고의 무기를 개발한 연구진 등에 감사한다”며 “육군 전투력 발전에 기여하겠다”고 화답했다.
K-21을 처음으로 인수한 주성빈(중령) 사자대대장은 “첨단장비가 복합된 K-21의 성능이 십분 발휘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고 특히 “최강의 창(槍)끝 전투력이 발휘될 수 있도록 실전적인 교육훈련을 이끌어 가겠다”고 다짐했다.
개발기간만 7년 6개월 걸려
이렇게 세계 최강급의 K-21이 탄생하고 야전에 첫 배치되기까지는 얼마나 걸렸을까. 국방과학연구소(ADD)가 ‘한국형 차기보병전투장갑차(Korean Next Infantry Fighting Vehicle)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K-21을 야심차게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 1999년 12월. 시험평가를 거쳐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아 개발 완료를 보고한 것이 2007년 6월 29일이었다. 순수 연구개발 기간만 7년 6개월이 걸렸고 양산(量産)을 거쳐 야전 장병들의 품에 안기기까지 총 10년이 소요됐다. 하지만 ADD가 K-21을 구상한 시기는 그 보다 10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하고, 그에 앞서 K-200장갑차도 살펴봐야 한다.
출처: 국방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