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방어선에서 국군이 고전하자 미국정부에서는 한국의 정부요인 및 피난민을 합친 약 60만명의 인원을 배에 태워서 서사모아 제도에 위치한 어느 섬에
이주 시키고 망명정부를 세우려고 했던 계획이 실제로 존재했었다.
제주도는 식수가 부족하고 땅이 척박하다고 하여 고려대상이 아니었고 이승만이 요청했던 일본의 경우는 반일감정 및 일본 내 좌익세력의 테러우려가 있었다
일본 망명정부에 대해서는 상당히 적극적이었고 계획도 나름 철저했었지만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서사모아 제도 망명정부에 대해서는 국군 고위 장교 및 그 가족 , 정부인사 및 그 가족을 우선시 했으며 한국군 약 몇개사단을 주축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민간인은 서사모아의 섬에서 정착하고 군인들은 일본 및 UN과 연합하여 아시아 방위에 이용한다는 내용
실제로 낙동강 교두보 전투중 영천전투에서 국군 8사단이 2개 사단급으로 강화된 북괴 15사단에 밀려 영천을 잠시 빼앗기자 국군본부와 UN군 사령부를 대구에서 부산으로 옮기고 저 계획을 세웠다던데… 다행이 아군 8사단과 배속 받은 여러 부대들의 활약으로 다시 영천을 탈환하고 인천상륙작전이 개시되자 폐기… 다시 중공군이 내려오자 다시 살아났다 사라졌다는 최악의 작전이라던…